War라밸을 치러야 하는 워라밸은 가짜다
워라밸…
‘일과 삶의 균형(Work&Life Balance)’의 줄임말인 워라밸은 단순 신조어를 넘어 올 해 트렌드를 반영하는 단어이자 시대를 관통하는 키워드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아마 올 연말 ‘올해의 10대 뉴스’를 뽑을 때 워라밸 열풍은 한 자리를 차지할 것이고, 올 해의 사자성어에 어렵고 낯선 한자어 대신 ‘워어라밸’을 선정해도 큰 무리는 없을 것 같다.
그렇다. 살기 팍팍한 이천 십팔년, 워라밸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현실에서 자연스럽게 일과 삶의 균형을 찾기 어렵기에 우리는 스스로 일과 삶의 균형을 위해 나섰다. 정치권에 적극적으로 압력을 넣거나 청원을 하고, 눈치보지 않고 휴가와 휴직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주위에서도 ‘제주도에서 1년 살기’, ‘도쿄에서 한 달 살기’, ‘배낭 메고 지구 한 바퀴’를 몸소 실천하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하지만, 한정된 자원과 넘치는 인구라는 ‘라밸’(Label)을 달고 있는 이 나라에서 경쟁은 우리의 숙명 아니겠는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워라밸 역시 경쟁이 되버렸다. 아니 경쟁을 넘어선 전쟁, War라밸이 되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당장 오늘 저녁 정시 퇴근을 위해 동료들과 직장상사의 눈치를 살피고 어느 타이밍에 나갈 것인가 고민한다. 또한 징검다리 연휴, 명절, 연말 등 몫 좋은 날짜에 휴가를 내기 위해 저마다 눈치 작전을 펼친다. '샌드위치 데이' 휴가를 선점하기 위해 내 동료들은 모두 적군이 되고, 날짜 조정을 하면서 한바탕 전쟁을 치른다.
회사에서의 War라밸에서 승리를 거둔 다음에도 전쟁은 계속된다. 성수기에는 숙박 항공 예약을 위한 전쟁이 치러지고, 국내 여행인 경우 교통체증과의 전쟁, 휴가지 업소 바가지 요금과의 전쟁을 이겨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일과의 균형을 맞춰 줄 ‘휴식’이 주어진다.
휴식을 얻기 위해 치르는, 일과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억지로 참여하는 이 War라밸은 진정한 의미의 워라밸이 아닐 지도 모른다. 특히 '워라밸'을 한 때의 유행인양 마케팅에 동원하고, 유권자 표를 얻기 위해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고 포장하고 강요하는 워라밸은 가짜다.
선거 직전 네 발로 기어다니며 ‘표를 주시면 저녁이 있는 삶, 일과 휴식의 균형이 있는 삶을 보장하겠다’고 외치지만, 당선 직후 직립보행을 하면서 ‘공약? 아몰랑’을 시전하는 정치인들의 워라밸은 가짜다. 주 52시간 근로시간단축을 두고 시기상조, 혹은 배부른 소리라고 하는 기업체가 기업 이미지 제고를 위해 동원하는 워라밸도 가짜다. 그리고 이런 걸 꼼꼼히 체크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쓰는 언론의 워라밸도 가짜다.
가짜 워라밸을 위해 War라밸을 치러야 할 이유는 없다. 이 모든 속박으로부터 벗어나는 게 진정한 워라밸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워라밸이라는 상품을 고를 때에는
“워워, 라밸부터 확인하라고. 진짜인지 가짜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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