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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r T Aug 06. 2018

패션 테러리스트

Fashion보다 중요한 건 Passion!


“자, 올 해의 패션 테러리스트는... 바로...” 


“네, 축하합니다. Writer T!” 



자칭 한 해의 노고를 ‘치하’하고 새로운 한 해도 잘해보자는 ‘격려’가 오가는 송년회장. 폭탄주나 돌리는 구태의연한 송년회를 탈피해보자고 송년회 한 달 전부터 무려 ‘송년회 TF’가 가동되고 각종 ‘재미있는’ 수상자들을 선정해 사기를 고취시키자는 ‘이벤트’도 마련되었다. 



시상 부문은 실로 다양했는데, 그 중 ‘꽝’의 개념 혹은 한 번 ‘웃어나 보자’고 만든 부문이 바로 패션 테러리스트 상이었다. 송년회가 지루해질 무렵 이 시상식이 진행되었고, 패션 테러리스트상 수상자를 발표하겠다는 사회자의 말에 모두들 긴장한 눈빛으로 ‘나만 아니면 돼’를 되뇌는 것 같았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이 내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들은 패셔니스타라는 꽃이 되었다. 그렇게 장내는 웃음소리와 안도의 한숨으로 뒤덮혔다.  



그래, 사실 난 옷을 못 입는 축에 속할지도 모른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외모를 멋있게 꾸미는 데 큰 관심이 없다. 나도 한 때는 멋 부리는 데 관심있던 시절이 있었다. 두발 자유화 이전에 중 고교 시절을 보내서인지, 머리를 기르고 헤어스타일에 한껏 힘을 주고 다니던 시절도 있었다. 그런데 내면의 가꿈 없는 외모 가꾸기는 부질없다는 걸 머지 않아 깨닫게 되었다. 또,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으면서 퇴화 할 수밖에 없는 외모에 투자한다는 것도 비효율적인 일이라 생각했다. 그저 내가 만족할 정도로만, 남들이 보기에 눈살 찌푸려지지 않을 정도로만 하고 다니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내가 조폭 아저씨, 혹은 동네 양아치들에게서나 볼법한 굵직한 금빛 체인 목걸이를 하고 다니는 것도 아니고, 용 한 마리가 온 몸을 휘감고 승천하는 문신을 새긴 것도 아니었다. 짧은 반바지 사이로 다리 털이 슝슝 삐져나오는 것도 아니고, 머리를 감지 않아 기름진 채 서로 엉켜 붙은 헤어스타일로 다닌 것도 아니지 않은가. 



특히,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결혼을 한 뒤, 이것저것 신경쓸 것도 많아지고 돈 쓸 일도 많아지면서 외모 가꾸기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와이프가 자기 옷은 인터넷 쇼핑몰에서 싼 값에 사서 입더라도, 남편 옷만큼은 때때로 잘 챙겨주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그런 와이프의 성의가 무시당하는 것 같아 송년회 잘하고 왔냐는 질문에 짧게 “응”이라고만 대답할 뿐이었다. 



난 내 패션에 ‘테러리스트’라는 무시무시한 수식어가 따라붙는 이유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패션이라는 것 자체가 정답이 정해져 있지도 않은 것이고, 지극히 주관적인 영역 아닌가. 일부의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을 객관화(?) 시켜서 수상자를 선정하는 것도 웃겼고, 이를 웃음거리 삼아 왁자지껄하게 웃고 떠들며 감정을 배설해내는 것도 넌센스였다. 



특정인을 타깃으로 삼아 웃음거리로 만들며 즐기는 문화는 폭탄주보다 더 폭력적이었다. 그 자리에서 정색이라도 하면 ‘거, 이 사람 다같이 한 번 웃고 말면 되는 거지. 뭘 그리 예민하게 굴어’라는 반응이 되돌아올 뻔했다. 그렇다고 속으로 삭이자니 그들이 정한 패션 테러리스트를 인정하는 꼴이 되버리는 것 같아 난감했다. 



지난 밤 일을 마음 속에 담아두면 그야말로 속 좁은 인간이 되는 상황. 찰나의 재미를 위해 누군가는 희생양이 되는 촌극. 결국 패션(fashion Terrorist) 테러리스트 따위의 짓거리들을 꾸미는 자들이야말로 애사심을, 동료애를, 그리고 일에 대한 열정을 저하시키는 패션 테러리스트(Passion Terrorist)일 것이다. 



그렇게 그들은 언제 패션(Passion) 테러라도 했냐는듯, 다음날 아무렇지 않은 듯 쿨내 나게 일하기 시작했고, 그들의 머리 위로 겉모습(fashion)보다는 내면(Passion)을 중요시한다는 회사의 비전 겸 인재상이 유난히 더 빛나고 있었다.  



“열정을 가지고, 동료애를 발휘하며 진취적으로 일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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