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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r T Oct 10. 2018

연예인 인터뷰 기사는 왜 비슷비슷할까?

자승자박 인과응보 연예매체 인터뷰 史


‘뭐야, 몇 시간 전에 읽은 것과 비슷하네. ㅇㅇ(기자이름)야, 베낀 거야?’



영화 개봉을 앞둔 어느 톱스타 인터뷰 기사에 달린 댓글이다. 업계에 몸담았던 사람으로서 위의 질문에 대해 답을 한다면 당연히 ‘No’다.



물론, 조회 수를 올리기 위해 남의 기사를 베끼거나 비슷하게 재구성해 전송하는 기자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매체에서는 남의 기사를 베끼는 것을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자기 이름을 걸고 일선 취재 현장을 누비는 기자들은 대놓고 남의 기사를 베끼지는 않는다. 상도의에 어긋날 뿐 아니라 얼마나 창피한 일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저 네티즌의 지적은 잘못된 것일까? 그것 역시 내 대답은 ‘No’다. 최근 연예인 인터뷰는 공장에서 균일하게 찍어낸 제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비슷하다.



매체마다 비슷비슷한 제목과 내용의 인터뷰 기사를 내놓았고 심지어 인터뷰이(연예인)의 일부 멘트도 똑같았지만, 베끼지는 않은 아이러니한 상황. 어떻게 된 것일까?




찾아오는 인터뷰에서 찾아가는 인터뷰로

멘트와 사진을 ‘공유’... 비슷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


이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 그동안 진행되어온 연예매체의 연예인 인터뷰 역사를 간략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과거엔 연예 매체가 그리 많지 않았다. 이에 연예인들이 2~3일 정도 날을 잡아 각 매체를 돌며 인터뷰를 진행했다. 한 마디로 ‘(연예인이) 찾아오는 인터뷰’였다. 물론, 연예부 데스크와 기자들 눈 밖에 나지 않게 직접 매체 사무실을 방문해 ‘잘 부탁드린다’는 인사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싸인을 해주는 것도 ‘찾아오는 인터뷰’ 목적 중 하나였다.



기자들의 특권 의식은 차치하고라도, 과거엔 연예인과 기자 사이의 1:1 인터뷰 환경이 조성될 수 있었다. 그렇기에 각 매체와 기자만의 인터뷰 기사 색채도 있었고, 이 매체에서 볼 수 없었던 내용과 멘트를 다른 매체에서 볼 수 있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연예인 입장에서 2~3일 동안 매일 아침 일찍부터 머리손질과 메이크업을 받고 서울 전역을 누비며 하루 종일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고역이었을 것이다. 매체 방문 인터뷰는 한계에 다다랐고 그 대안으로 나온 것이 ‘(연예인을) 찾아가는 인터뷰’였다. 1:1 인터뷰 기조는 유지하되 연예인이 각 매체를 돌며 기자를 만나는 것이 아니라, 매체 기자들이 연예인이 있는 곳으로 찾아와서 인터뷰를 하는 것이었다.



장소는 주로 삼청동이나 강남의 카페였고, 시간은 오전 10~11시, 11~12시, 오후2~3시, 3~4시 이런 식으로 한 시간 단위로 쪼개서 운영되었다. 중고등학교 수업시간표를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이후, 지면에 비해 상대적으로 돈이 덜 들어가고, 포털사이트에서 연예 섹션이 각광을 받기 시작하면서 온라인 매체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이에 연예인 인터뷰는 ‘라운딩 인터뷰’로 다시 한 번 변화를 맞았다. 라운딩 인터뷰는 쉽게 생각해서 ‘1:다수’ 인터뷰다. 기존 ‘기자가 찾아가는’ 인터뷰 형식은 변함이 없지만 1:1이 아닌 한 명의 연예인이 여러 명의 기자와 함께 인터뷰를 하는 것이다.



인터뷰의 효율성을 위해 매체 개수에 제한을 둔다면, 인터뷰에 빠져 ‘물 먹은’ 매체들에게 미운털이 박힐 것은 자명하다. 인터뷰에 물먹은 기자들 중 뒤끝 있는 기자들이 두고두고 부정적인 기사를 쏟아낸다면 득보다 실이 더 클 것이다. 그렇기에 고육지책으로 모든 매체를 아우르는 1:다수 인터뷰 형식인 ‘라운딩 인터뷰’가 등장하게 된 것이다.



같은 날 같은 시간대에 함께 인터뷰를 진행하는 기자들은 연예인의 멘트를 ‘공유’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또한 내 질문은 더 이상 나만의 질문도 아니다. 내가 질문하고 그 질문에 대해 연예인이 답을 하면 함께 인터뷰에 참여한 모든 기자들이 질문과 답을 다 같이 공유할 수밖에 없었다.



인터뷰 사진도 매체별 개별 촬영 대신 소속사나 홍보사에서 사진을 제공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사진 촬영을 위해 연예인이 매일 아침 일찍 미용실을 찾는 수고를 덜기 위함이었다.



이에 각 매체들은 제공받은 똑같은 사진을 걸고, 똑같은 멘트를 인용한 인터뷰 기사를 쏟아내게 되었고, 독자들은 그렇게 비슷비슷한 기사들을 읽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원인 제공은 기자들이, 피해는 독자들이...

‘기사의 꽃’ 인터뷰는 그렇게 시들어간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비슷비슷한 인터뷰 기사를 양산하게 된 가장 큰 원인은 매체들과 기자들 자신에게 있다. 연예매체 인터뷰史는 신경전과 실랑이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기 때문이다.



과거 ‘찾아오는 인터뷰’가 진행되던 시절, 인터뷰 순서를 두고 종종 실랑이이 벌어졌다. 방문 순서가 늦으면 그만큼 인터뷰 기사가 늦게 나가기 때문에 각 매체 기자들은 서로 자신의 매체에 먼저 들어오라고 요구했다. 순번이 늦으면 앞으로 부정적인 기사를 내갰다며 으름장을 놓는 기자들도 있었다.



순번 문제가 불거지자 인터뷰를 주관하는 연예인 소속사나 홍보사에서는 모든 매체 인터뷰 종료 시까지 엠바고(약속된 시점까지 기사를 내보내지 않는 일)를 정하기도 했다. 남보다 먼저 남보다 빨리 기사를 내고 싶어 하는 기자들 성에 찰 리 없었지만.



이후, 찾아오는 인터뷰에서 찾아가는 인터뷰로의 전환도 만만치 않았다. '네들 홍보해주겠다는 데, 왜 내가 찾아가야 하냐', '건방지게 (감히 기자님께) 이리저리 오라고 요구하냐. 네들이 기어들어와야지'라는 반응도 많았다.



찾아가는 인터뷰가 자리를 잡았음에도 그 수많은 매체들은 저마다 자신들을 먼저 위해달라며 아우성을 쳤다. 결국 모든 매체와 기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아니 불만을 최소화할 수 있는 라운딩 인터뷰가 대안으로 떠오를 수밖에 없었고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이 라운딩 인터뷰로 인한 복제품 같은 기사의 피해는 결국 기사를 읽는 독자들과 네티즌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가고 있다. 앞으로 우후죽순 창간된 매체들이 정리되거나, 기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이 문제를 고민하지 않는 한 독자들은 앞으로도 비슷비슷한 기사를 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숨겨진 피해자들도 있다. 바로 라운딩 인터뷰 체제 이후 입사하게 된 후배 기자들이다. 이들은 그저 연예인을 만나 열심히 취재하고 질문하고 기사를 쓴 것밖에는 없다. 하지만 선배들이 조성해놓은 취재환경 때문에 이들은 공장에서 찍어낸 듯 비슷비슷한 기사를 양산하는 ‘기레기’라는 오명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중요한 건 찾아오는 인터뷰냐, 찾아가는 인터뷰냐도 아니고 1:1이냐 라운딩이냐도 아니다. 기자로서, 매체에 몸담고 있는 일원으로서 가장 중요한 건 기사에 대한 고민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나아질 것 같지 않다. 아니, 오히려 더 악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매체마다 기사가 비슷해지는 문제에 대한 고민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여전히 일부 선배기자들과 데스크들은 이런 현실을 개탄하고 자성하기보다는 과거에 했던 기싸움을 다시 펼칠 기세다.



극히 일부지만 몇몇 매체와 일부 기자들은 엠바고 없는 라운딩 인터뷰 진행 시 첫 날 첫 시간에 넣어주지 않으면 보이콧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한다. 그렇게 첫 날 첫 시간에 투입된 기자는 데스크로부터 인터뷰가 아닌 속보 기사를 지시받는다. 메인 인터뷰 이외의 낙수거리를 맛보기로 먼저 게재하는 게 아니라 주요 멘트를 속보성 스트레이트로 처리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포털사이트 연예 섹션 메인 기사로 채택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속보 기사를 쓰기 위해 투입된 기자들은 인터뷰이에게 질문을 던지고 답을 들으며 취재를 하는 대신 기사 송고를 준비하는 모습을 보인다. 아예 속보를 위해 기사 뼈대를 갖춰서 오는 경우도 있다. 아래와 같이 말이다. 그들은 멘트로 처리할 따옴표만 비워놓고 다른 기자들이 질문하기만을 기다린다. 그렇게 인터뷰를 기자회견으로 바꿔버린 기자들은 ‘1빠’로 기사를 송고하고 다음 취재 장소로 향한다.




속보성 기사 송고를 위해 미리 준비를 해오는 기자들. 위와 같이 기사의 뼈대를 구성해온 후 인터뷰이의 멘트를 집어넣고 실시간으로 전송한다. 인터뷰지만 심도있는 대화가 불가능하다.



취재 기사의 꽃이라는 인터뷰. 적어도 대한민국 연예 매체에서 인터뷰라는 꽃은 그렇게 시들어가고 있다. 꽃이 진 뒤에야 봄이었음을 깨닫는 우를 범하지 않기 바랄 뿐이다.



Copyright(C) Oct.2018 by Writer T.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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