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지 않는 무례함에 대해 ‘We will rock you’를...
이 글엔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한 장면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스포일러는 없지만 영화를 안 보신 분들 중 단 한 씬이라도 언급되는 게 싫으신 분들은 유의해주시기 바랍니다.
전설의 록밴드 ‘퀸’, 그리고 천재 보컬이자 괴짜였던 프레디 머큐리의 이야기를 다뤄 화제를 모으고 있는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우리에게 생소한 ‘퀸’의 다양한 이야깃거리들과 명곡 퍼레이드는 눈과 귀를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유독 손가락에 박힌 가시처럼 아주 작지만 불편하게 만드는 한 장면이 있었다. 파격적인 곡 ‘보헤미안 랩소디’를 담은 새 앨범 출시 기자회견 장면이었다. 영화 속 기자회견에 참석한 기자들은 프레디 머큐리의 사생활에 미친 듯이 집착했다.
‘인도 이민자 출신인 보수적인 아버지가 당신을 자랑스러워하느냐’라는 무례한 질문은 물론, ‘구강구조가 특이한 데 교정할 계획은 없느냐’는 인신공격도 이어졌다. 그의 사생활, 심지어 섹스라이프에 대한 노골적인 질문들도 나왔다. 새 앨범 발표 기자회견인 만큼 사적인 질문대신 음악과 관련된 질문을 해달라는 몇 차례 간곡한 요청에도 불구하고 기자들은 프레디 머큐리 사생활에 대한 질문을 이어갔다. 아니, 그건 질문을 가장한 공세였다.
비록 그가 괴짜이긴 해도, 또 양성애자였어도 범죄를 저지른 건 아니었다. 그저 남들과는 다른 사람이었을 뿐이다. 하지만 기자들은 조리돌림에 가까운 질문 세례로 프레디 머큐리를 모욕했다. 마치 그를 심판할 자격이라도 얻은 듯 말이다.
기자들의 무례한 질문 세례 근저엔 ‘팬들이 궁금해한다’는 그들만의 이유가 있었다. ‘팬들의 궁금증을 대신 물어보고 해소해준다’는 그들만의 논리도, 그리고 그것을 방패막이 삼아 취재원에게 최소한의 예의도 존중도 보이지 않는 태도는 우리네 기자들과 너무도 닮아 있었다. 한 마디로 ‘기레기즘’이었다. 이런 현상에 동서고금이 따로 없다는 점도 신기했고, 그런 만큼 불편한 감정도 영화 내내 지속되었다.
그렇다면, 독자들은 스타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속속들이 궁금해 할까?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가 사생활 침해를 당하더라도 궁금증을 해소하고 싶어하는 것일까? 자신의 궁금증이 스타의 사생활 침해보다 더 중요하다면 그 사람은 진정한 팬이 맞을까? 팬들의 궁금증은 정당한 국민의 알권리에 속할까?
팬들이 스타들의 사생활을 궁금해 하더라도, 스타들은 연예인이기 이전에 존중받아야할 하나의 인격체다. 그러므로 팬들의 궁금증보다는 사생활이 우선이다. 물론 예외도 있다. 국회의원 장관 지자체장 등 국민의 녹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 다시 말해 공인들의 경우다. 국민들의 대표자이기 때문에 도덕성과 준법성을 갖춰야 하고 국민들은 그들의 실체를 분명히 알 권리가 있다. 어느 정도 사생활을 침해당하더라도 취재의 정당성이 부여되는 것이다.
하지만, 연예인은 경우가 다르다. 음주운전 도박 마약 불륜 등 비도덕적인 행위를 할 경우는 예외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사생활은 존중받아야 한다. 연예인은 유명인이지 공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자들은 ‘연예인=공인’이라는 논리를 앞세워 사생활 침해를 무릎 쓰고 취재를 감행한다. 청춘 남녀 연예인의 데이트 현장에, 지인들 축복 속에 조용히 치르고 싶은 결혼식에, 가족들과 함께 떠난 휴가지에 기자들은 ‘동행’ 한다. 팬들이 원한다는 명목 하에.
그런데, 팬들이 정말 스타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궁금해 하는지도 불확실하다. 팬들이 궁금해 한다고 해도 사생활 침해의 문제가 따르지만, 궁금해 하지 않는다면 더 큰 문제다. 팬들을 팔아 취재를 감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작 팬들은 내가 좋아하는 스타의 사생활 침해를 원하지 않지만, 기자들은 독자들이 원한다며 ‘기레기즘’의 정점을 찍는다.
실제로 스타들의 사생활에 관련된 기사 댓글엔 꼭 그렇게까지 해야 되느냐는 비판이 많다. 팬 카페나 커뮤니티에서도 기자들의 취재 행태를 질타하는 여론이 더 많다. 하지만 기자들은 무모한 취재를 멈추지 않는다. 스타들의 인권을 짓밟는 취재는 인쇄 매체 부수 증대와 온라인 매체 조회 수 증가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결국 이 ‘기레기즘’의 승자는 연예 매체와 기자들뿐이다. 그렇기에 앞으로도 기자들과 연예 매체들이 ‘기레기즘’을 멈출 생각은 없는 것 같다. 프레디 머큐리가 무례한 질문을 던지는 기자들에게 일침을 가했듯이, 이젠 팬들과 독자들도 발을 구르고 손뼉을 치면서 쿵쿵짝 박자를 맞추고 그들에게 이렇게 외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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