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첫 에세이 출간을 통해 ‘하면 된다’ 재발견
#. 세상에서 제일 싫은 ‘하면 된다’
기록적인 폭염이 연일 계속되던 1994년 여름, 숨 막히던 날씨만큼이나 나를 짓누르던 건 교실 벽에 걸려있는 급훈 ‘하면 된다’였다.
고 3 교실에 가장 어울릴만한 급훈이었지만, ‘하면 된다’는 말이 주는 위압감이 싫었다. 교실 안엔 대학 진학을 포기한 친구들도 있었고, 열심히 한 만큼 성적이 오르지 않아 원하는 대학교에 진학하지 못하는 친구들도 분명 있었으니 말이다. 특히 ‘하면 된다’는 열심히 공부를 하지 않을 경우 넌 반드시 실패한 인생을 살게 될 것이라는 무언의 협박이자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의 명대사 ‘대학 못가면 뭔 줄 알아? 잉여인간이야 잉여인간. 인간 떨거지 되는 거야’와 같은 일맥상통하는 말이기도 했다.
그렇게 그 뜨거웠던 고 3의 여름을 더욱 달궜던 급훈에서 벗어나 대학 생활을 만끽했다. 하지만 그 찬란했던 캠퍼스의 낭만도 잠시, 곧 입대를 해야 했다. 무사히 6주간의 훈련소 생활을 마친 뒤 자대에 배치 받아 신고식을 했다. 그런데 경례 구호가 무려 ‘단결! 하면 된다’ 였다. 전 군에서 가장 많이 쓰는 ‘충성’에서 ‘단결’로 바뀐 것도 혼란스러운데 뒤에 사족으로 ‘그 말’이 따라붙었다.
군 생활은 내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시기를 바친 것도 모자라 허름한 막사에 구금된 채 질 낮은 식사와 잠자리를 제공받는 생활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 열악한 여건을 이겨내기 위해 국가는 개인에게 인내심을 강요했고, 이는 ‘하면 된다’라는 말로 치환되었다.
군 제대 후 사회에 나와서도 마찬가지. 몇 차례 이직을 경험했지만 회사마다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상사가 ‘하면 된다’라는 말을 자주 하는 것이었다. 그 말의 핵심은 대게는 ‘박봉에 근무 여건도 열악하고, 취재하기 힘든 여건이지만 기자정신을 발휘해서 꾹 참고 열심히 일하라’는 말을 한 마디로 줄인 것이었다.
혹은 ‘하면 된다’는 CEO가 툭 던져본 말이지만 CEO에게 잘 보이기 위해 아부하는 임원들이 그 말의 의중을 임의대로 해석해서 수하 직원들에게 ‘되던 안 되던 하고 보라’는 명령이자, 무능한 리더가 막다른 골목으로 이끌어도 토 달지 말고 일단 참고 일하라는 말이기도 했다.
#. 세상에서 제일 좋은 ‘하면 된다’
그렇게, ‘하면 된다’에 짓눌린 채 지내던 나는 반격을 준비했다. 모든 일에 무조건 ‘하면 된다’는 자세를 보일 필요도 없고, 또 세상엔 ‘해도 안 되는 일’이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반격의 신호탄은 퇴사였다. 퇴사 후 할 일들을 적어놓고 일을 하니 회사 생활도 견딜만했다. 그렇게 위시리스트 제일 위 칸에 적어 넣은 것이 바로 출간이었다.
때마침 다양한 연령과 직군의 사람이 모인 ‘보통 직장인의 위대한 글쓰기’라는 수업을 듣고 있었다. 서로의 글을 읽고 피드백을 해주며 기쁨을 나누고 서로를 격려했다. 그렇게 타인의 삶을 관통한 글을 통해 인생을 배워나가던 사람들은 한 달 짜리 과정을 아쉬워하며 글쓰기 모임을 이어갔다. 총 네 명이 뜻을 함께 했다. 글쓰기 모임이 연장된 후, 첫 오프모임 때 모임의 방향성에 대한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왔고 그 때 잠자고 있던 출간이라는 꿈이 꿈틀거렸다.
이 사람들이라면 함께 해도 좋을 것 같다, 이 사람들이라면 내 부족한 면을 채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공동 출간 제의를 했다. 모두 출간에 대한 욕구는 있었기에 바로 의견 일치를 봤다. 다만, 그동안 자유 주제와 분량으로 쓰던 글 대신 공동의 주제를 정해야 했기에, 핵심 키워드 하나를 정하고 그 아래 옴니버스식으로 글을 써보자고 제안했다.
일단 자신부터 돌아보기 시작했다. 두 명은 육아휴직 중이었고, 한 명은 커리어에 대한 고민을, 그리고 나는 퇴사를 고민 중이었다. 그렇게 작년 봄부터 ‘퇴사’, ‘제 2의 인생’, ‘어른들의 꿈’을 주제로 글쓰기는 시작되었다. 터지는 꽃망울과 함께 마음속에 쌓아두었던 이야기들이 글을 통해 팡팡 터졌다. 진도도 쭉쭉 나갔고, 상호 피드백을 통해 수정 보완을 하며 신바람을 냈다.
하지만, 날씨가 더워지면서 육아휴직을 했던 두 명의 작가가 복직을 하고, 커리어를 고민하던 작가는 부서를 옮겼다. 난 퇴사 날짜를 잡았고, 책상 서랍 속에 넣어두었던 사표를 꺼내들던 시기였다. 정신없는 나날들이 이어지면서 공동출간 프로젝트는 정체되었다. 이미 글을 다 써놓고 퇴고를 거듭하는 상황이라 진도도 나가지 않았고 새로 글을 쓰는 것 만큼 신나지도 않았다.
이도 저도 아닌 상황이 너무 싫었다. 공동출간을 먼저 제안한 만큼 책임감이 컸고, 리더를 자청해서 프로젝트를 이끌어 온 만큼 어떤 식으로든 결론을 내고 싶었다. 써놓은 글들이 너무 아까웠기 때문이다. 용기를 내어 프로젝트 진행, 아니 존속 여부부터 물었다. 이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 반겨주는 작가도 있었고,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듯 한 자극을 받은 작가도 있었다.
다행히 공동출간 프로젝트는 지속되었다. 찬바람이 불고 저마다 회사생활에 적응해나가면서 프로젝트도 탄력을 받았다. 나도 자유의 몸이 되었다. 동시에 가장 큰 난관인 출판사 섭외가 남았다. 평범한 회사원들로 구성된 이름 모를 신인작가의 글에 선뜻 응해 줄 출판사가 있을 지 걱정부터 앞섰다.
먼저 출간을 경험한 사람들을 만나 자문을 구하고 조언을 들었다. 시행착오를 최소화하기 위함이었다. 역할을 분담해 홍보문과 카드뉴스를 만들고, 브런치 공동매거진을 열었다.(참고: 보통 어른들의 낯선 이야기)
다행히 한 출판사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출간해보자는 제의였다. 출판사와 미팅 날짜를 잡고, 출간 계약 시 눈여겨봐야 할 점들에 대해 서로 정보를 공유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나간 미팅자리, 좋은 조건으로 작가들의 요구사항을 수용해주신 편집장님 덕분에 그 자리에서 계약을 했다.
그렇게 추운 겨울을 지나 또 한 번의 봄, 공동 저자들이 만난 지 1년 만에 책은 세상 빛을 보게 되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힘들 때 마다 되뇐 말은 바로 ‘하면 된다’였다. 글을 쓰다 지칠 때에도, 퇴고를 하면서 똑같은 글을 몇 번씩 보면서 지겨워질 때마다 ‘하면 된다’를 중얼거렸고, 지친 기색을 보인 공동 저자들에게도 같은 말을 전했다. 이제 ‘하면 된다’는 내게는 마법같은 말, 세상에서 제일 좋은 말이 되었다.
#. 퇴근하든 퇴사하든... 모두 근사한 일
그렇게 최종 원고가 취합되고, 표지 디자인 시안 콘셉트까지 결정되었다. 책 제목과 부제를 정하고 인쇄만 남았다. 어떤 제목이 좋을까 고심했다. ‘퇴사’가 핵심 키워드였는데, 평소 동음이의어를 활용한 제목을 좋아해 퇴사를 중심으로 여러 단어들을 나열해봤다.
그렇게 내 레이더망에 걸린 게 바로 퇴근이었다. 퇴사라는 단어를 가장 많이 떠올리는 시간 중 하나가 바로 퇴근할 때이기 때문이다. ‘아 정말 더러워서 못해먹겠네. 내가 이놈의 회사 그만두고 말지’라는 생각을 하는 때도 바로 퇴근하면서 회사 문을 나설 때이지 않은가. 그렇게 개인의 고민이자, 개인들의 고민이 모인 우리 사회의 고민이자 화두 ‘퇴근할까, 퇴사할까’라는 제목을 제출했다.
이후 책 표지부터 제목, 본문 내용까지 모두 결정되면서 출간에도 속도가 붙었다. 2019년 4월 1일 만우절에 거짓말처럼 우리의 책은 인쇄가 되어 세상 밖으로 나왔다. 모니터 안에서만 보던 그 텍스트 파일이 멋진 연보랏빛 책이 되어 내 곁에 온 것이다.
퇴근과 퇴사, 극과 극의 의미지만 ‘근’과 ‘사’ 한 글자 차이다. 그리고 이 글자를 모아보면 ‘근사’가 된다. 절대 만나서 화해할 수 없을 것 같은 두 글자를 강제로 모으고 악수를 시켜보니 ‘근사’한 일이 되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퇴근과 퇴사는 ‘근사치’에 있는 단어다. 어떤 선택을 하던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은, 모진 세상을 살아내는 여러분들은 그 자체로 ‘근사한’ 사람이니까. 앞으로 내 인생엔 또 어떤 ‘근사한’ 일이 생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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