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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r T May 08. 2019

연예기자와 향응 ②: 그 매체는 왜 입을 다물었을까?

김영란법 시행 후 ‘변종 향응’ 등장... 사탕인 줄 알고 문 것은 재갈

기자가 기사를 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일에 대한 대가로 회사로부터 급여도 받는다. 하지만 회사의 급여가 아닌 외부로부터 돈을 받고 기사를 쓰는 것도 당연한 것일까? 


지난 글 ‘연예기자와 향응 ①: 해외출장은 왜 자취를 감췄을까?’(링크참조)를 통해 해외출장으로 대변되는 연예기자들의 향응에 대해 살펴봤다.



사실 정, 재계 등 소위 ‘돈줄’이 빵빵한 분야를 취재하는 기자에 비해 연예 기자의 향응이 상대적으로 초라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김영란법(정식명칭: 부정 청탁 및 금품 수수 금지에 관한 법률) 시행 이후 공짜 해외 출장은 사라졌어도 여전히 향응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 결혼식 축가 부를 가수 섭외해주세요, 저렴하게


김영란법 시행 이후 연예 매체를 둘러싸고 변종 향응이 등장했다. 향응이라기보다는 커넥션에 가깝긴 하지만 타 분야에 비해 상대적으로 향응이 적은 만큼 업계 특성상 향응으로 봐도 무방할 것 같다.



일부 연예 매체와 일부 연예인 소속사를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는 신종 향응은 바로 ‘돈 받고 기사쓰기’다. 드라마 예능 혹은 영화에 출연하는 배우들, 새 앨범을 낸 가수들을 대상으로 홍보 기사를 써주고 기사 한 건당 얼마씩 받는 것이다. 대가를 받고 기사를 게재하는 것은 김영란법 위반이기 때문에, 매체에 광고를 해주고 기사와 교환하는 방법을 쓴다. 경우에 따라서는 데스크가 직접 금품을 수수하는 경우도 있다.



보통 연예 매체에서 소속사에 먼저 제안하는 경우가 많은데, 소속사에서는 대놓고 향응을 제공할 수 없기에 간접적인 향응 제공 차원에서 이 제안을 받아들이는 경우가 있다. 아니면, 소속사에서 자신들에게 우호적인 언론사에 먼저 제안하기도 한다.



또한, 취재 목적으로 제공되는 프레스석에 기자가 아닌 기자의 지인을 앉히고 편의를 봐주는 향응도 존재했다.(주: 보통 기자가 먼저 지인의 좌석을 부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공연 콘서트의 프레스석 역시 김영란법 시행 이후 문제가 되면서, 프레스석 이외의 일반석을 제공하기도 한다. 영화의 경우, 일반시사회에 기자 지인의 좌석을 확보해주기도 한다.



이밖에 직접 금품을 수수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실상 향응과 다름없는 행위들도 행해진다. 신문사의 경우 연예인 소속사나 홍보사에 자신의 매체 정기구독을 요청하는 경우도 있고, 자사 행사나 이벤트에 소속 연예인을 게스트를 불러달라고 요청하기도 한다. 일반인들처럼 행사비를 정가 전액 지불한다면 문제될 것이 없지만, 무료 혹은 기준 가격보다 저렴하게 해 줄 것을 요구하기 때문에 문제의 소지가 있다.



#. 명절 선물은 집으로


그나마 회사 차원의 요청은 좀 나은 편이다. 기자들이 개인적인 일로 요청하는 경우도 많다. 연예인 소속사나 홍보사에서 개인적인 친분을 바탕으로 자발적으로 먼저 기자를 챙긴다면 문제될 것이 없으나, 기자가 먼저 요청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매체 고위층의 자녀가 연예인의 팬일 경우, 개인적인 만남과 함께 기념촬영과 싸인을 요구하기도 한다. 기자들도 본인 혹은 지인 결혼식에 연예인 사회나 축가를 무료 혹은 할인된 가격으로 요청하기도 하며, 부모님 회갑이나 자녀 돌잔치 등 개인 경조사에 초대하기도 한다.(주: 밥이나 먹고 가라고 초대하지만, 초대받은 입장에서는 축의금을 내지 않을 수 없다).



한편, 기자들 자신은 향응이라고 느끼지 못하지만, 일반적인 시각으로 볼 때 향응인 경우도 있다. 식사 접대, 명절 선물 제공 등이 그것이다. 취재와 직접적인 상관이 없지만 기자들은 ‘취재원 관리’라는 명목으로 연예인 소속사 혹은 홍보사 직원들과 식사 자리를 갖는다. 이 경우 식사비는 연예인 소속사나 홍보사 등에서 지불한다. 술 한 잔 할 경우 술값은 물론 대리기사비나 택시비를 쥐어주기도 한다. 



식사 접대의 경우 밥을 얻어먹었기 때문에 기자가 커피를 사던지, 아니면 이번에 얻어먹었기 때문에 다음에 밥을 산다면 문제될 것은 없다. 하지만 매 번 접대를 받는 기자들도 많고, 식사 후 커피 한 잔 사는 경우가 없는 기자들도 많다. 연예인 소속사나 홍보사에서 밥을 사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명절 선물도 마찬가지다. 일부 기자들은 명절 선물은 당연히 받는 것으로 생각하기도 하고, 심지어 회사로 선물을 보낼 경우 들고 가기 무거우니 집으로 보내라고 떳떳하게 요구하기도 한다.



#. 공공재의 사유화, 향응의 출발점


일부에서는 그동안 행해져온 ‘관례’를 향응으로 둔갑시켰다고 것 반발하기도 하고, 취재원과 기자 사이에 사람 사는 ‘정’ 없이 너무 팍팍한 것 아니냐고 하소연하기도 한다.



하지만, 냉정히 생각해보자. 기자(記者)는 말 그대로 기록하는 사람이다. 호의적인 기사냐 부정적인 기사냐를 차치하고, 기자라면 기사를 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기사를 써서 게재하는 행위를 두고 금품이 오고가야할 이유는 전혀 없다. 식사 접대나 명절 선물, 개인적인 경조사 부탁 등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기사를 써서 네들 홍보해주는 데, 네들이 누리는 홍보 효과를 생각하면 이 정도 답례는 받아도 되는 것 아니냐’는 생각으로 기자들은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시키고 있다.



과연 그럴까? 언론 매체를 ‘공공재’라고도 한다. 즉 언론 보도는 공공성 공익성을 띄어야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위의 말대로라면, 기자들은 언론이라는 공공재를 개인 이익을 위해 사유화해서 이용하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기자로서 당연히 가져야 할 사명감과 직업정신은 특권 의식이 되어 버렸다.



이 특권 의식이 ‘변종 향응’으로 이어지고 있는 게 지금 연예 매체들을 둘러싼 현실이고, 이 때문에 연예인 소속사와 홍보사들도 벙어리 냉가슴만 앓고 있다. 기사를 대가로 금품을 요구하거나, 회사 혹은 개인차원의 경조사를 부탁했을 때 이를 거절하면 부정적인 기사를 쏟아내며 보복할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기자들의 부탁을 들어주는 경우가 많다.



#. 향응에 있어서는 경쟁보다 공생


얻어먹는 걸 너무도 당연히 여기는 기자들이 꽤 많기에 연예인 소속사나 홍보사에서는 난감해하는 경우도 많다. ‘회사 법카’로 접대한다고 해도 매 월 혹은 매 분기 홍보비는 정해져 있다. 그런데 매체들이 워낙 많다보니 ‘공급’이 ‘수요’에 못 미친다. 특히 어느 매체와 밥 먹었다는 정보(?)와 입소문도 빠른데다, 소외된 매체들이 반발할 경우 후폭풍을 감당하기 어려워 대부분의 매체를 다 챙겨야 한다. 그렇게 회사에서 홍보비를 다 써서 개인 신용카드로 식사비를 지불하는 홍보인도 있었다.



재미있는 건, 기자들이 기사를 놓고는 서로 경쟁하지만 향응 정보는 공유하고 챙겨준다는 점이다. 기사가 될 만한 정보를 공유했을 경우, 단독이나 1보 기사를 놓친다면 자신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수 있지만 향응 정보의 경우는 아무런 피해가 없기 때문이다. 오히셔 서로 서로 몰랐던 정보들을 주고받으면서 다 같이 향응을 누리는 ‘공생’, ‘협업’ 관계가 형성되는 것이다. 지난 ‘연예기자와 향응 ①: 해외출장은 왜 자취를 감췄을까?’편에서 살펴본 해외출장 정보가 그러했고, 돈 받고 기사쓰기, 식사 접대 등은 현재 진행형이다.



문제는, 아직도 타 분야에 비해 향응규모가 훨씬 작으니 도덕적으로 더 낫다고 생각하는 기자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도덕적 해이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변종 향응’으로 인해 언론이 제 구실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금품을 받고 홍보성 기사를 써주는 경우 단순 홍보에 그치면 그나마 낫다. 중요한 건, 이런 밀월 관계가 형성되면 금품을 제공하는 측에서 연예 매체에 재갈을 물릴 수 있다는 점이다. 향응이 당장은 달콤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약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특정 소속사와 커넥션이 있는 매체의 경우, 해당 소속사 연예인이 마약 성추행 등 물의를 일으켰을 때 보도를 최대한 자제하거나 소속사의 변명을 전폭적으로 반영하면서 여론을 돌리려고 애쓰기도 한다. 혹은 동정론을 담은 기사나 칼럼 등을 게재하며 물타기를 시도하기도 한다.



향응. 국어사전에서는 ‘특별히 융숭하게 대접함’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런데 특별히 융숭한 대접을 받으려면 그런 자격을 갖추는 것이 먼저 아닐까? 현재 일부 연예 매체들이 입 속에 넣고 있는 건 달콤한 사탕이 아니라 재갈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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