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스포트라이트 뒤에서 펼쳐지는 제작발표회의 날 선 신경전들
첫 방송을 앞둔 새 드라마, 예능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일까? 당연히 홍보일 것이다. 그리고 ‘신상 프로그램 홍보의 꽃’으로 불리는 건 바로 제작발표회다.
제작발표회는 첫 방송에 앞서 ‘0회’라고 불릴 정도로 방송가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방송 첫 몇 회 안에 성패가 좌우되는 만큼 사전 이슈 몰이에 가장 적합한데다, 제작발표회 개최 시 동시간대 수백 개(포토뉴스, 동영상 포함)의 기사가 쏟아지며 주목을 받기 때문이다. 주인공들의 포부와 시청률 공약 등 프로그램을 둘러싼 다양한 화젯거리들이 나오는 곳도 다름 아닌 제작발표회장이다.
실제로 제작발표회 당일 수백 건의 기사가 전송되면 국내 주요 포털사이트에서는 앞 다퉈 이를 다루는 동시에 별도 섹션을 만들어 노출시킨다. 제작발표회장 무대에서 포즈를 취하는 여배우의 모습은 언제나 연예 뉴스 첫 머리를 장식하며, 프로그램 제목이나 주연 배우 이름은 실시간 검색어에 오른다. 아울러, 네티즌들은 이를 각종 SNS에 공유하며 이슈를 확대 재생산시킨다.
그렇기에, 제작발표회는 언제나 화려하다. 제작발표회 행사 당일엔 수십 개의 국내 연예 매체가 몰리며, 한류 스타가 출연하는 경우엔 해외 매체들까지 참석하는데다 국내외 팬들까지 몰려 인산인해를 이룬다.
행사가 시작되면 화려함은 극에 달한다. 주최측에서는 엑기스만을 모은 영상을 상영해 시선을 끌기 시작하고, 뒤를 이어 포토타임을 위해 화려한 의상을 입은 연예인들이 단상 위에 오른다. 카메라 플래시는 섬광처럼 연신 터지고, 이 사진들은 포털 섹션 메인 섹션을 장식한다.
하지만, 뜨거운 제작발표회 무대 뒤에서 서늘한 신경전이 벌어지기도 한다. 제작발표회의 화려한 막이 오르기까지 속이 썩다 못해 문드러지는 관계자들도 많다. 또, 제작발표회장에서 겉으론 웃고 있지만 웃는 게 웃는 게 아닌 사람들도 있다. 이 ‘기 싸움’을 몇 가지 유형별로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 방송사 vs 방송사
먼저, 제작발표회 개최를 두고 방송사 간 벌이는 눈치싸움이다. 특히 월화드라마 수목드라마는 회차가 비슷해 각 방송사마다 시작 시기와 종영 시기가 비슷하다. 그런 만큼 비슷한 시기에 첫 방송되는 맞수 드라마들끼리는 제작발표회 개최일을 두고 탐색전을 펼친다.
작품성에 자신 있거나 톱스타가 대거 출연하는 대작이면 눈치 보지 않고 자신 있게 먼저 밀어붙이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엔 물밑 정보전이 펼쳐진다. 제작발표회가 겹쳤을 경우 행여 이슈 대결에서 밀리면 불리한 조건을 안은 채 첫 방송을 맞아하기 때문이다. 이에 각 방송사들은 친한 기자들에게 상대방 동향을 묻거나, 외주제작사 혹은 작가들에게도 정보를 구한다.
#. 연예인 vs 연예인
방송사가 타 방송사와 신경전을 펼치는 것처럼 연예인들끼리도 기 싸움을 벌이는 경우가 있다. 방송사 간의 기 싸움이 외부인들과의 싸움이라면 연예인들 간 기 싸움은 동일 작품에 출연하는 내부인들 끼리의 싸움이다. 우선 제작발표회를 앞두고 출연진 스케줄을 사전 조율하는 것부터 난관에 부딪히는 경우다. 그래도 이런 경우는 그나마 낫다.
제작발표회 당일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속에 펼쳐지는 기 싸움은 그야말로 방송 관계자들을 초긴장 상태로 만든다. 특히 주연 배우들 사이의 기 싸움, 소위 ‘1번 주연’들 간의 기싸움, 그리고 ‘1번 주연’과 서브 주연들 간의 기 싸움은 제작발표회의 숨겨진 백미(?)다. 배우들은 행사장 입장순서, 포토타임 시 무대에 올라가는 순서, 포토 월에 붙는 프로그램 포스터 내의 이름 표기 순서 등으로 자존심 대결을 펼친다.
대승적으로 양보하는 경우는 그나마 다행이지만, 한 발의 물러섬도 없는 경우엔 방송사측과 해당 연예인의 매니저들은 진땀을 흘린다. 자신의 요구가 관철되지 않을 경우 제작발표회 시작 때까지 입장을 거부하는 연예인도 있다. 또한, 다른 배우들보다 더 예쁘게 멋있게 나와야 된다는 이유로 의상 선정, 헤어 메이크업에 지나치게 공을 들이다 행사장에 늦게 도착하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 행사를 시작하려는 방송사측과 기다려달라는 주연 배우측의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한다.
#. 연예인 vs 기자
연예인의 신경전은 동료 연예인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제작발표회장에서 만난 연예인과 기자들이 신경전을 벌이는 경우도 있다. 프로그램을 홍보하는 자리인 만큼 대부분의 제작발표회는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된다. 배우들도 작품에 임하는 각오에 대해 다부지게 말하기도 하고, 시청률 이색 공약으로 분위기를 띄우기도 한다. 연예인들은 재치 있는 멘트로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며 주목을 받으니 좋고, 기자들도 기사거리가 넘쳐나니 좋다.
하지만, 참석한 연예인 가운데 스캔들에 휘말리거나 구설수에 오르는 경우는 얘기가 달라진다. 연예인측에서는 기자들의 질문에 부담을 느낀 나머지 제작발표회 불참을 선언하는 경우도 있고, 홍보를 위해 방송사측에서 잘 달래서 참석시키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엔 행사 전 연예인과 방송사가 ‘프로그램 관련 질문만 받고 사적인 질문은 받지 않겠다’고 협의 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방송사측에서는 행사 시작 직후 이를 공지하며 기자들에게 양해를 구한다.
하지만, 기자들은 합의 과정에 기자들은 없었으며, 연예인이라면 공인과 다름없는 유명인이기 때문에 다소 불편하더라도 팬들이 궁금해 하는 걸 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기자들은 작품에 들어가면 연예인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없는 만큼, 제작발표회장에서 제약 없는 질의응답 시간을 가지기를 원한다. 반면 연예인들은 연예인이기 이전에 한 개인으로서 사생활은 보호 받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질의응답 시간에 연예인들의 바람과는 달리 ‘문제의 질문’이 들어오는 경우도 있다. 간혹 쿨한 성격의 연예인들은 질문에 속 시원히 대답하거나, 질의응답 시간 이전 자신의 입장을 정리해 발표하면서 질문을 원천 차단하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대답 거절로 인해 연예인과 기자간의 날 선 분위기가 연출된다.
이럴 경우, 주위에 있는 방송사 홍보팀, 혹은 매니저들이 사태 수습에 나선다. 중재자들은 가급적 프로그램 관련 질문만 해달라고 거듭 호소하지만 냉랭해진 분위기를 바꾸기엔 역부족이다. 실제로, 일부 홍보팀 직원의 경우 연예인이 내심 껄끄러운 질문에도 대답해주기를 바라는 경우도 있다. 대작인 경우는 크게 상관없지만, 크게 관심을 가질 만한 작품이 아니거나 상대 방송사 프로그램이 대작일 경우 이슈몰이를 위해 내심 대답을 해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 기자 vs 기자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제작발표회에서는 그 누구나 신경전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기자들을 둘러싼 기 싸움도 당연히 펼쳐진다. 우선 제작발표회 입구에서 신경전이 펼쳐진다. 해당 방송사 출입매체와 비 출입매체 간 입장 실랑이다. 공간은 한정적이고 매체는 너무 많다보니 방송사 홍보팀이나 외주 홍보사 등에서는 일부 매체를 걸러낸다.
가장 큰 기준점은 바로 출입 매체인지 여부다. 주최측에서는 출입 매체 기자들을 우선시 하고, 이 때문에 비 출입 매체를 중심으로 차별 논란이 일어난다. 일부 매체에서는 ‘왜 똑같은 기자인데 차별하느냐’며 입장 시도를 강행하기도 하고, 주최측에서 이를 제지하면서 소동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1차 관문을 통과한 출입 매체 사이에서는 신경전이 없을까? 물론 아니다. 출입 기자들 사이에서도 경쟁이 불붙는 건 마찬가지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제작발표회는 이슈가 되기 때문에 주요 포털에서는 연예 메인 기사로 다룬다.
하지만, 동시간대 비슷한 내용과 발언을 두고 기사를 작성하기 때문에 각 매체에서는 포털 메인을 차지하기 위해 조금이라도 빨리 기사를 쓰려고 경쟁한다. 가끔 제작발표회 생중계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질의응답 시간에 질문은 없고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만 요란하게 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렇게 현장에서 포털 메인 ‘물을 먹은’ 기자들에게 데스크는 휴대폰 혹은 메신저로 질책을 쏟아내고, 혼난 기자들은 만회하기 위한 기사를 작성하기 위해 키보드를 더욱 가열차게 두드린다.
#.사진 vs 동영상
사진기자들 간의 신경전도 있다. 메인에 걸릴 포토뉴스를 생산해내려면 좋은 자리는 필수다. 이에 과거 제작발표회엔 일부 기자들이 자신과 친한 동료들을 위해 제작발표장에 일찍 도착해 명함을 여러 장 붙여놓으며 좋은 자리를 선점하기도 했다.
이에 사진기자들끼리 자리싸움을 하거나 언성을 높이는 경우도 발생했다. 이 때문에 요즘엔 도착한 순서대로 번호표를 부여해 입장시키거나, 줄을 세운 뒤 순서대로 입장시키고 있다. 자리도 1인 1석으로 제한했다.
또한, 사진기자와 동영상 기자 간의 기 싸움도 펼쳐진다. 사진기자는 주로 제작발표회장 앞쪽에, 동영상 카메라 기자는 뒤쪽에 자리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사진 촬영을 위해 사진 기자들이 일어서는 경우 동영상 카메라 앵글 안에 사진 기자 뒤통수가 들어온다. 이에 동영상 기자들은 앉아달라고 하고, 사진 기자들은 정당한 취재인데 왜 뭐라고 하느냐며 맞서기도 한다.
이처럼 화려함의 극치인 제작발표회 이면엔 숨 막히는 긴장감이 도사리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 신경전의 승자는 없고, 모두가 패자로 남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왕 하는 제발(제작발표회)이여, 제발 평화롭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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