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저들의 세상을 위해
“Loser takes it all~”
적어도 내 귀엔 그렇게 들렸다. 야근이라는 명목 하에 ‘천하제일 PPT 경연 대회’ 출품작을 만들고, ‘회의 문화 개선을 위한 회의’에 회의를 느낀 채 무거운 발걸음으로 대중교통도 끊긴 황량한 빌딩 숲을 빠져나와 집으로 돌아가던 길. 겨우 잡은 택시에 몸을 뉘인 채 늦은 시간까지 많은 차들로 자유롭지 못했던 자유로 위에서 하루를 마감하던 그 찰나, 택시 안에서는 아바의 ‘Winner takes it all’이 흘러나왔다.
승자가 모든 것을 차지한다는 말이 와 닿지 않아서일까, 아니면 믿고 싶지 않아서일까. 나는 위너(Winners) 부분을 애써 루저(Loser)로 바꿔 들었다. 불과 몇 분 전까지 회사를 위너로 만들기 위해 내 소중한 저녁 휴식시간도, 가족 지인과 숨결을 나눌 시간도, 내 열정도, 체력도 모두 잃어버린(lose) 루저가 되었기 때문이다.
흔히, 사회생활은 정글과도 같아 약육강식, 승자독식의 세상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승자는 잃는 것 하나 없이 모든 걸 다 가질까? 승자가 되고 나면 잃었던 것들을 되찾을 수 있을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승자가 다 가질 수는 없다. 금수저들조차 피를 나눈 형제끼리 재산 싸움을 하고, 모든 걸 손에 넣고 쥐락펴락 하는 권력자들은 하다 못해 인성을 잃은 채 반 사회적 인물로 전락하지 않나.
무엇보다 중요한 건, 한국사회에서 정해놓은 위너의 개념은 너무도 명확하고 일방적이라는 것이었다. 돈 권력 지위 학벌 인맥 따위의 것들 말이다. 그 승자의 아이템을 얻기 위해 잃는 것은 너무 많았다.
아이러니하게도, 돈이 많은 위너가 되기 위해선 돈이 들었고, 인맥을 거느린 위너가 되기 위해선 인맥들을 밟고 올라가야 했다. 그렇게 첫 관문을 통과하면, 권력과 지위를 얻기 위해 이미 그것을 차지한 사람들의 비위를 맞춰야 한다. 회장님, 사장님, 국장님을 입을 달면서 말이다.
그렇게 머리를 조아리려 해도 정작 그들은 나를 볼 수 없었다. 그들은 가까운 미래도 내다보지 못하는 ‘회 장님’이고, 나의 노력과 열정을 자기 공으로 가로채며 내 시야를 가로막는 ‘사 장님’이고, 꼰대정신로 잔뜩 무장한 채 근로 의욕을 꺾는 ‘국 장님’이기 때문이다.
결국 내가 가진 많은 것을 잃어야만 위너가 될 수 있었다. 그래서 굳이 사회가 정해놓은 위너가 되지 않기로 했다. 아니 세속적인 관점에서의 루저가 되기로 했다. 승자가 되지못한 패배자(loser)의 변명이라고 하겠지만, 내 인생의 주인인 내 자신이 괜찮다고 하는데 무슨 상관이랴.
위너는 모든 걸 가질 수 없다. 손에 쥘 수 있는 용량의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손에 쥐고 있는 것들 중 몇 개를 놓아야 원하는 걸 손에 넣을 수 있다. 하지만 루저는 당장은 아니더라도 원하는 걸 손에 쥘 가능성이 있다. 그렇기에 루즈(lose)는 '잃다'는 뜻을 품고 있고, 한국어 표기가 완벽히 같은 루즈(loose)도 뜻 ‘힘 빼고 편안하게 있는 상태’, ‘몸에 꽉 조이지 않고 여유있게’라는 뜻으로 사용되었을 것이리라.
그래서 난 내 몸을 꽉 조이고 있는 위너라는 허울좋은 정장을 벗고 루즈핏의 티셔츠를 입기로 했다. 그 티셔츠엔 이왕이면 이런 문구가 적혀 있으면 좋겠다.
‘Loser takes it 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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