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과성적 C가 비타민C가 되기까지...
#. C8
“Writer T씨, 당신은 C등급입니다”
그건 회사가 나에게 마지막으로 준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다. 크리스마스를 한 달도 채 남겨놓지 않았던, 그 해 고과가 통보되던 날 내 고과란엔 짧고 명료하게 C라고 적혀 있었다.
그건 학창시절 성적표보다도 더 끔찍한 것이었다. 성적표야 선생님과 부모님께 잠시 혼나는 종이쪼가리라면, 고과통지표는 다음 해 승진, 급여 인상분 등을 빼앗아가는 차압 딱지였다.
그나마 성적표가 내 노력과 비례한 결과를 알려주는 비교적 정직한 놈이라면, 고과는 거짓말쟁이다.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아니, 결과보다도 과정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상대평가’라는 명목 하에 누군가는 노력 여부와 관계없이 C를 받을 수 밖에 없었다. 그 상대평가라는 줄 세우기가 노력과 성과물이 아닌 정치질의 순서라면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결국, 그 여파는 올 해 고스란히 이어졌다. 지난 해 일들은 다 잊고 올 해 새 마음, 새 뜻으로 일하자는 독려(?)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왔지만 작년의 결과와 책임을 고스란히 짊어지고 가야 할 나는 그렇게 Cool 할 수 없었다. 고과 좋은 직원들의 안도 섞인 한숨 사이로 내 장탄식을 묻어두었다. 더 큰 문제는 작년과 크게 달라지지 않는, 아니 작년 만도 못하게 흘러가는 올 해였다. 암담했다. “아, 이천십팔년”이라는 말을 달고 살 수 밖에 없었다.
‘대체 왜 사람을 쇠고기 등급 나누듯 A, B, C로 나누는 것인가’, ‘효율성을 위해 등급화 한다지만 그 등급들이 과연 직원들의 결과물을 오롯이 평가할 수 있을 정도로 효율적인가’, ‘거 이왕이면 A주지, 나도 운동 안하고 일만 해서 마블링이 아름답게 낀 투뿔 A 몸매인데’ 등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 CC
그런데, 생각해보면 “넌 C등급”이라는 말이 낯설지는 않다. 전에도 이미 C등급을 받아 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몇 년 전 회사 후배가 결혼정보회사의 문제점을 파헤쳐 보겠다며 아이템을 낸 적이 있었는데, 결혼정보업체 몇 군데의 신랑신부 평가표를 받아서 셀프 채점을 해본 적이 있었다.
학벌, 직업, 연봉 등 각 항목마다 점수를 매길 수 있었고, 난 당연히 100점 만점에 70점대 점수를 기록하며 C등급을 받았다. 아마도 혈액형 분류법이 더 세분화 돼서, 현재 존재하는 혈액형 이외의 다른 유형이 있었다면 난 분명히 C형이었을 것이다. 다른 항목에서는 그나마 선방했는데 결정적으로 배점이 가장 높은 ‘부모님의 재력’에서 낙제점을 받았다.
부모님 두 분 다 6070연배에서 고학력에 속하는 대학교를 졸업하셨고, 열심히 성실히 앞만 보고 사신 분들이었다. 하지만 벌어놓은 재산이 결혼정보업체 기준치에 모자란다는 이유로, 자식에게 물려 줄 재산이 없다는 이유로 낙제점을 받은 것이다. 대학교 졸업하고 취업 잘 해서 16년간 월급쟁이 생활 잘 하고, 결혼생활 잘 할 정도의 능력치를 가진 아들로 키워놓으셨으면 아주 많은 것을 남겨주신 게 아닌가?
부모님 평생의 삶이 단지 지금 현재 수중에 있는 돈 몇 푼으로 평가되는 것도 우습고, 내 노력과 의지와 상관 없이 부모님의 재력에 따라 내 등급이 달라진다는 현실은 더욱 우스웠다. 그리고 회사에서의 내 등급과 결혼시장에서의 내 등급은 내 의지와 상관 없이 외부 요인에 의해 좌지우지 된다는 공통점도 소름 끼칠 정도로 무서웠다.
내가 내 마음대로 정할 수도 없는 등급은 대체 누가 정한다는 말인가, 그리고 그 등급은 왜 그 사람의 정체성을 대변해야 하는가. 가족 지인들에게 A등급인 사람도 고과가 C면, C등급의 인간인가?
그나마 한 가지 다행인 건 와이프도 결혼정보업체 기준으로 C등급이었다. 어느 한 쪽이 억울할(?) 일은 없었다. 우리 두 사람은 그 잘나신 채점표를 들고 한참을 씹고 뜯고 맛보고 즐겼다. 비록 캠퍼스커플도 컴퍼니커플도 아니었지만, 우리 부부는 CC였다.
#. C27
그 CC와 C27이라는 회사 앞 치즈케이크 전문점에 들른 적이 있었다. 업체 홍보는 아니지만 굳이 이 장소를 꺼낸 이유는, 의미 있는 선언을 한 장소이기 때문이다.
C등급 통보를 받고 한 달여 뒤 동지애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던 동짓날, 그 날 따라 일이 꼬이려는 지 점심 약속도 취소됐다. 나가서 밥 먹기도 귀찮아 Cup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려던 그 순간 CC에게서 연락이 왔다. 볼 일이 있어 회사 근처에 들렀는데 시간되면 차나 한 잔 하자는 것.
그렇게 달달한 Cheese Cake를 앞에 두고 달달하지 않은 이야기를 건넸다. 마음 속에 늘 담아두었던 이야기, 틈날 때 조금씩 꺼내 본 이야기지만 이 날 만큼은 진지하게 꽤 많은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물론, 이야기의 주제는 퇴사였다. 평소 내 고민이 무엇인지, 회사 생활은 어떤지 잘 알기에 그리 놀라는 눈치는 아니었지만 퇴사 시기, 퇴사 후 계획 등에 대해서 꽤 구체적인 이야기들이 오고 갔다. 그동안 “나 퇴사할까?”라고 이야기했다면, 이 날 만큼은 “나 퇴사할게”라고 이야기했다.
순간의 감정이나 ‘욱’하는 게 아닌 것임을 알기에 CC는 내 ‘C27 선언문’을 순순히 받아들이고 그 자체로 존중해줬다. 27살부터 시작한 이 일을 그만두겠다고 선포한 것, 그래서 C27은 단순 업소명 이상의 의미로 다가왔다.
#. Vitamin C
‘C27 선언문’을 통해 난 작가가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앞으로의 결과는 모르겠지만 인생에 있어서의 가장 큰 도전이자 전환점이었다. 다만 앞으로 어떤 작가가 될 것인가는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금기된 것들에 과감히 도전하며 논란의(Controversial) 중심에 선 작가가 될 것인가, 독자들에게 힐링과 편안한(Comfortable) 느낌을 주는 작가가 될 것인가, 용기를 북돋아주며(Cheer) 희망찬 글을 전파하는 작가가 될 것인가, 아니면 셋 다 하면서 다양하게 변신하는 작가가 될 것인가 여전히 고민 중이다.
하지만, 이것 하나는 확실하다. 어떤 색깔을 지닌 작가가 되던 독자들에게 비타민 C같은 작가가 되고 싶다. 때로는 시큼하게, 때로는 달콤하게 다양한 맛을 내며 삶의 활력과 자극을 주는 작가가 되고 싶은 것만은 변함없다.
봄이다. 겨우내 얼었던 땅을 뚫고 새싹이 올라오듯이, 훗날을 생각하며 좋은 기운 가득 담긴 씨(C)를 뿌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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