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로 치환시키려는 글의 가치들, 과도한 경쟁에 대한 불만과 우려
최근 브런치에서 자주 목격되는 글들이 있다. ‘구독자 수 늘리는 비법’, ‘조회 수 올리는 꿀팁’, ‘브런치 메인에 글 거는 방법’ 등 브런치 이용 전략에 대한 글들이다. ‘아, 브런치 너마저...’라는 탄식과 함께 ‘브런치, 너만은 제발!’이라는 반발심도 들었다. 이미 오프라인에서 우리는 숫자에 치이고 서열과 등수에 치이고 있기 때문이다.
SNS, 유튜브를 둘러싸고 팔로워와 구독자 증가 비법이라고 주장하는 콘텐츠들이 범람한 것은 이미 오래전 일이다. 오프라인에서 온라인/모바일로, 올드미디어에서 뉴미디어로, 그리고 SNS로 세상살이와 트렌드의 무게중심이 이동하자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새로운 스타들도 탄생했다. 고소득을 올리며 전업한 사람들도 늘어났다. 그러자 팔로워와 조회 수 등 ‘숫자’를 올리기 위한 저마다의 노하우(?)들이 우후죽순 쏟아졌고 온라인 세상도 이내 치열한 경쟁 사회가 되었다. 학교 회사 등 오프라인에서의 치열한 경쟁도 모자라 온 세상이 경쟁으로 뒤덮였다.
속도에 뒤처지면 안 된다는 무언의 압박은 멀미를 일으켰고, 트렌드세터가 되기 위해 더 강하게 더 자극적으로 만든 관종 콘텐츠엔 피로감이 몰려들었다. 부작용들을 우려했지만 뒤를 돌아보거나 반성하는 이는 거의 없었고, 오히려 살아남기 위해 ‘약을 더 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하지만 브런치만은 달랐다. 다소 느리더라도 천천히 내 생각을 곱씹고 글로 풀어 공유하는 곳이었다. 피드백 역시 느리지만 진중하고 사려 깊었다. 따뜻한 온기가 남은 몇 안 되는 곳, 소위 아날로그 감성이 남아있는 곳이었다. 경쟁 없는 곳 함께 걷는 곳이었다.
그런데 구독자가 늘고, 출간을 하고 유명해진 작가들이 생기면서 브런치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바로 ‘구독자 수와 조회 수 늘리기 비법’ 같은 글들이 올라오기 시작한 것이다. 고생해서 어렵게 구독자를 늘린 작가가 다른 작가들을 돕기 위한 순수한 마음으로 자신만의 노하우를 공개한 경우도 있었고, ‘나는 이렇게 기록적인 조회 수를 찍었다’, ‘몇 만 구독자를 모았다’고 자랑하고 싶어 올린 글도 있었다.
그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내가 그런 글을 평가할 권리는 더더욱 없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아쉬운 점이 있다.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점이기도 하다. 브런치마저 SNS 유튜브처럼 숫자를 위한 경쟁의 장이 되고, 스피드와 트렌드가 주요 덕목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각양각색 삶의 빛깔이 묻어나오는 글 대신 먹히는 글, 메인에 걸릴만한 소재, 클릭유도 잘되는 글이 도배되고 브런치를 집어삼킬까 드는 우려다. SNS에서 느낀 피로감을 브런치에서도 느낄 수 있다는 우려다.
‘보기 싫으면, 안 보면 그만이지 왜 굳이 이런 글을 쓰느냐’고 할 수 있다. 맞는 말이다. 나 역시 그런 글들은 브런치 메인에 뜨더라도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다. 하지만 내가 우려하는 건 그런 글들이 늘어나고 동조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브런치 생태계가 변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다. 숫자가 우선시 되는 생태계가 조성된다면 원인제공자들은 더이상 ‘네가 싫으면 안 보면 되지’라고 말할 자격이 없다.
‘조회 수가 높고 구독자가 많아져서 주목을 받고, 이게 발판이 되어 출간기회를 잡으면 좋은 것이지, 넌 그런 기회가 오면 거부할 것이냐?’라고 반문할 수도 있다. 물론 아니다. 브런치 작가라면 누구나 꿈꾸는 그 상황을 마다할 이유는 없다. 다만 인위적인 ‘스킬’을 써서 유명해지기보다는 더디고 반응이 없더라도 글에 내 진심을 담아 차곡차곡 쌓고, 그게 언젠가 빛을 보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구독자도 얼마없는 자의 치졸한 변명이자 자기위안이라고 치부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난 숫자를 바라보고 브런치를 시작한 사람이 아니다. 욱해서 올리는 글도 아니다. 여러 번 고심 끝에 이 글을 올린다. 그동안 난 써야만 하는 글, 즉 ‘글 노동’을 16년 하며 지친 사람이기 때문이다. 쓰고 싶은 글을 자유롭게 마음껏 쓰고 싶어 퇴사까지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조회 수와 메인 섹션 장식에 지친 사람이고, 글의 숨겨진 가치가 숫자로 치환되는 게 싫은 사람이다. 그래서 브런치에서 라이킷, 공유횟수, 일일 조회 수 그래프까지 친절하게 제공해주지만 잘 보지 않는다.
이곳 브런치에선 노동이 아닌 창작을, 써야만 하는 글이 아닌 쓰고 싶은 글을 위해 자판을 두드리고 싶다. 다행히 브런치는 아직 숫자 놀음에 물들지 않았다. 이곳에 글을 쓰려면 소정의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아이디를 만든 즉시 관종 짓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필터링이 되기에 관종 짓을 하는 작가도 없다. 그러하기에 지금의 브런치는 더없이 소중하다.
브런치 운영진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 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브런치가 그런 글에 동조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브런치의 초심, 브런치가 추구하는 방향이 훼손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브런치팀 작가소개란에는
라고 되어있다. 물론 내가 공들여 쓴 글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것처럼 좋은 건 없다. 아무도 봐주지 않아 공허한 메아리가 되는 것만큼 속상한 것도 없다. 분명 그건 맞는 말이다.
다만 브런치 공간마저도 지나친 경쟁 사회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서로가 서로의 숫자를 넘기 위해 초심을 잃고, 유행 트렌드에 억지로 내 글을 끼워 맞추고, 클릭을 유도하기 위해 무리수를 두고, 클릭한 독자가 실망하고, 승자와 패자가 나뉘고, 패자가 질투와 시기, 부러움과 박탈감을 느끼고, 그런 과정 속에서 글이 노동이 되는 그런 황폐한 곳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브런치 작가가 된 이유는 저마다 다르다. 브런치에 글을 쓰는 목적도 이유도 다 다르다. 그래서 누군가는 브런치에서 단물 뽑을 게 없나 빨대를 들고 다니고, 누군가는 출간을 위해 글을 쓰고, 또 누군가는 아무런 계산 없이 순수히 글을 쓰고 읽으며 즐긴다. 하지만 작가들의 목적이 달라도 독자들의 마음은 비슷할 것이다. 글을 통해 공감하고 소통하고 따뜻한 온기와 위로를 주고받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의 가슴 속에 다 있을 것이다.
그러기에 주제넘은 줄 알지만 감히 당부의 말씀을 남기고자 한다. 브런치는 제발 그냥 좀 놔두자고. 브런치마저 물들면 그 때는 너무 늦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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