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에도 여전히 다름은 틀림의 동의어
퇴사 후 마음에 맞는 분들과 의기투합, 공동집필 끝에 생애 첫 책 ‘퇴근할까 퇴사할까’를 출간했다.(출간기를 보시려면 클릭) 4명의 작가가 참여한 만큼 교집합을 찾아야했는데, 당시 모두 직장인 혹은 퇴사예정자라 ‘퇴사’를 키워드로 자신들의 이야기를 풀어나가기로 했다.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때마침 퇴사가 우리 사회 화두로 떠올랐다. 그 덕에 주요 서점에서 ‘주목받는 신간’, ‘탐나는 책’ 등에 선정되었고, 잠시지만 베스트셀러 매대에 진입하는 감격을 누리기도 했다. 유명 라디오프로그램에서도 언급되었고, 뉴스에 출연해 인터뷰도 했다. 한 가지 공통점은 ‘퇴사 열풍’이라는 주제 아래 우리책이 소개된 것이었다.
하지만 ‘퇴근할까 퇴사할까’는 퇴사를 종용하는 책이 아니다. 오히려 즉흥적이거나 홧김 퇴사를 방지하고자 하는 책이다. 퇴근과 퇴사, 서로 대척점에 있는 의미지만 다른 두 글자 모아보면 ‘근사’가 되고, 어떤 선택을 하든 근사한 삶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 쓴 책이다. 홍보효과는 누렸지만,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알려지는 것 같아 당황스럽기도 했다.
이처럼, 퇴사 열풍이 불면서 퇴사를 주제로 한 콘텐츠들이 넘쳐났다. 퇴사 후 차를 새로 뽑고 자신의 길을 걷는 사람을 부러워하는 눈으로 바라보는 직장동료들의 씁쓸한 심정을 담은 자동차 광고까지 등장해 인기를 모을 정도다.
퇴사 열풍은 ‘야, 인생 한번 뿐인데 까짓거 퇴사해’, ‘과감히 회사를 박차고 나와 네 꿈을 펼쳐라’라는 결론으로 귀결되고 있다. 퇴사에 대한 다양한 시각이 왜곡되고 퇴사를 종용하는 한 가지 결론으로 치닫는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퇴사를 안한 사람(혹은 못한 사람)은 겁쟁이’라고 치부하는 분위기다. 개인사정으로 회사를 그만두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이것 저것 따져봤지만 참고 회사를 다니는게 퇴사보다 더 나은 삶이라 그냥 다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퇴사 열풍은 그들을 용기없는 사람, 비굴한 사람으로 만들어버리고 있다.
나 역시 그런 경험이 있었다. 2002년, 당시 언론고시 준비생이던 나는 면접과 취재 실기 시험을 위해 언론사들이 모여있는 광화문과 시청앞 일대를 누비고 다녔다.그 땐 월드컵 열기가 한창 뜨거웠을 때였다. 사람들은 저마다 빨간 티셔츠를 입고 ‘대~한민국!’을 외쳤고 나는 붉은 바다 위 검은 점처럼 짙은 양복 차림의 이방인으로 도심을 누볐다.
월드컵 역사상 첫 승리, 그리고 조별리그 통과, 내친김에 16강 8강 4강까지... 붉은 물결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 물결에 동참할 수 없던 내 현실이 아쉬웠다. 다만 내 인생과 미래가 걸린 문제라 축구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솔직히 그 물결에 동참하고 싶지도 않았다. 나와 동떨어진 감정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위에선 왜 길거리 응원을 안하느냐고 의아해 했다. 일생 한 번의 기회를 놓치는 게 안타까워서라면 그나마 이해할 수 있다. 마치 내가 애국하지 않는 사람, 매국노인양 대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월드컵 길거리 응원을 권유한 게 아니라 종용한 것이었다.
시간이 20여년이나 흘렀지만, 이런 분위기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어떤 현상이 나타나고 그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그것은 곧 대세가 되어버린다. 그 흐름에 동참하지 못하는 사람은 생각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 틀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된다. 대열에서 열외하는 사람, 대열과 반대 방향으로 나아가는 사람은 용납되지 않는다.
나아지고는 있다고 해도 여전히 한국사회에서 다름은 틀림의 동의어다. 종용하는 세상의 종말이 왔으면 한다. 종용없는 세상을 종용하고 싶다.
Copyright(C) Feb.2020 by Writer T.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