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함께하는 매 수업은 새로운 도전이자 새로운 배움의 시작
#. 퇴근 vs 퇴사
2년전, 지금껏 살아오면서 해온 수많은 결정 중 가장 힘들고 어려운 결정을 했다. 그 결정은 앞으로 남은 내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결정이었다.
‘퇴근할까 퇴사할까’...
스물 여섯, 한창 패기넘치던 시절 시작해 마흔 셋이 될 때까지 내 이름 석 자보다 더 많이 불렸던 기자. 기자는 내 청춘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지난 16년의 세월, 김 기자라는 직함을 내려놓고 다시 내 이름 석 자를 가지고 새로운 시작을 하기로 결심했다.
사표를 가슴에 품었을 때 내 젊은 날이 송두리째 도려내지는 것 같은 아픔을 느끼기도 했지만, 성취는 없고 소모만이 남는 이 길을 계속 가는 게 맞는 것일까 의구심이 들어 퇴근 대신 퇴사를 선택했다.
인생 1막의 커튼을 내리고 인생 2막의 커튼을 올리기 전 인터미션 시간.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했고 새로운 시작을 하는 만큼, 한 번 도전해보지 않고 죽으면 평생 후회할 일을 하자고 결심했다. 그것은 작가였다. 글쓰기를 좋아했고, 글을 쓰며 먹고 살아왔고, 앞으로도 계속 하고싶으면서 그나마 내가 할 수 있는 일 중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막막하던 순간, 내 자신을 먼저 돌아봤다. 앞으로 하고싶은 것부터 사소한 일상의 순간 하나까지 기록해나갔다. 그렇게 ‘퇴사’, ‘제 2의 인생’, ‘어른들의 꿈’을 주제로 글쓰기는 시작되었고 마침내 내 마음 속 고민이었던 ‘퇴근할까 퇴사할까’는 책 제목이 되어 세상 빛을 보게 되었다.
#. 사원증 vs 방문증
출간 후 백방으로 뛰어다니면서 홍보를 시작했다. 그러다 기자 시절 가장 마지막에 몸을 담았던, 퇴근과 퇴사 사이에서 고민하다 퇴사를 선택한 회사까지 오게 되었다.
정문을 통과하자마자 달라진 위상(?)을 체감했다. 사원증을 목에 걸고 방송사 이곳 저곳을 누비던 나는 방문증을 끊고 로비에서 사람들을 기다리게 되었다. 하지만 사원증을 목에 건 그들이 부럽지는 않았다. 회사 밖 세상에서 더 자유로이 다닐 수 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옛 직장동료들을 만났다. 여러 이야기들이 오고갔다. 작가의 길이 홀로 외로이 글과 싸우는 길로 빠질 수 있다는 말을 곱씹으면서 글과 싸우기보다는 글과 친하게 지낼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보게 되었다.
쓰는 것에 그치지 않고 글과 함께 호흡하고 남들과 글이라는 공통분모 아래 함께 하고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그러면서 새로운 목표도 생겼다. 글쓰기 강사였다.
기자에서 작가로의 도전, 그리고 작가에서 강사로의 또 다른 도전. 퇴사 후 도전은 삶의 동력이자 엔돌핀이기 되어주는 것임을 알기에 이 도전을 기꺼이 즐기기로 했다.
새로운 시작을 위해 출발선에 서는 일은 더이상 괴롭지 않았다. 출발선은 앞으로 내 인생에 또 어떤 일들이 펼쳐질까 기분좋은 설렘을 한 가득 주는 곳이기 때문이다. 다만, 어떤 강사가 될 것인지에 대한 결정이 남았다. 그러다 우연찮게 아이들이 내 시선에 들어왔다.
#. 딩크족 vs 아이들
‘아이들을 가르쳐보면 어떨까’
우연히 든 생각이 운명이 된 것일까? 순간적으로 든 생각이 다시 한 번 날 새로운 도전으로 이끌었다. 사실, 내가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었다. 난 아이들과는 거리가 먼 딩크족이기 때문이다.
부부중심의 결혼생활을 원한데다, 부모로서의 책임감과 의무감의 무게를 짊어지기 싫어서 택한 딩크족. 게다가 난 아이들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 편이었다. 공공장소에서 시끄럽게 떠들면서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보면 눈쌀을 찌푸렸고, 그래서 노키즈존을 선호하던 게 나였다.
육아의 경험도 없고, 아이들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심지어 아이를 그닥 달가워하지 않던 사람이 아이들을 가르치겠다니 실로 엄청난 도전이었다. 글쓰기 지도사 겸 NIE(Newspaper in Education) 자격증을 따기 위해 코피까지 쏟으며 열공했다. 자격증을 따고 나서 기초부터 하나하나 가르치기에 적합한 초등학생을 주요 대상으로 정했다.
유튜브, SNS, 게임 등 직관적이고 즉각적인 콘텐츠와 친숙한만큼 아이들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을 굉장히 지루해했다. 핸드폰을 손에 쥔 자세는 자연스러웠지만, 책을 손에 쥔 자세는 불편했다. 어떻게 해서라도 설득을 하고 수업을 이끌어나가야 했다.
일단 초등학생들의 눈높이에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그런데 그들만의 언어세계는 굉장히 독특했다. 줄임말이나 인터넷 신조어는 물론, 지역별로 학교별로 쓰는 언어들이 따로 있었다. 도전 속 또 다른 도전이었다. 그렇게 그들만의 언어세계와 리액션을 체득해나갔고 하나 둘씩 대화로 풀어나갔다.
그렇게 난 글쓰기 강사에 이어 아이들과 교감하는 사람으로 또 다른 시작을 하고 있다. 아직 딩크족에서 전향할 생각은 없지만 아이들이 좋아지려 한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매 수업이 새로운 도전이고, 또한 새로운 배움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퇴근할까 퇴사할까’를 집필하며 맨 마지막에 썼던 문장이 다시금 떠오른다. 끝은 END가 아니라 또 다른 시작과 도전을 의미하는 AND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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