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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r T Sep 23. 2019

내가 ‘간헐적 SNS 단식’에 나선 이유

꾸미지 않은 진심만으로 소통하고 싶어 작은 반항(?) 시작

SNS 없이 살기 50일 프로젝트!      



최근 내 자신을 위해 스스로 약속을 한 것이 있다. 바로 SNS 없이 50일 동안 살아보는 것이다. 이른바 ‘간헐적 SNS 단식’.      



이 ‘간헐적 SNS 단식’은 회원탈퇴나 휴면계정 전환을 하지 않고 앱을 지운 채 50일 동안 살아보는 것이다. ‘나 외롭다. 나 좀 봐줘’라는 역설적인 호소도 아니고, 쿨한 척 부려보는 허세는 더더욱 아니다. 남들에게 보이기 위한 겉멋들린 잠수를 타는 것도 아니고, 하고 있는 일들이 있어 잠수를 탈 수도 없다. 전화와 깨톡도 여전히 열려있고 이메일 체크도 수시로 한다. 브런치도 열어두며 소통 창구로 활용할 예정이다. 다만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트위터 등 SNS만 잠시 앱을 지우고 의도적으로 사용하지 않겠다는 얘기다.      



모든 일은 인간관계가 가장 힘들다고 한다. 물리적인 일은 내 노력과 의지에 따라 완전해결이 가능하거나 일의 양과 스트레스의 강도를 줄일 수 있다. 하지만 인간관계는 다르다. 나만 잘한다고, 나만 노력한다고 될 일은 아니다. 상대방이 변하지 않는다면, 그건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다. 



SNS도 마찬가지다. 요즘 내 의지와 관계없이 관계의 피로를 느끼는 경우가 늘어났다. 내가 그동안 SNS를 했던 가장 큰 이유는 자주 보지 못하거나 바빠서 만나지 못한 사람들의 근황을 파악하고, 따뜻한 인사를 주고받기 위함이었다. 동시에 ‘나는 요즘 이렇게 살고 있다’는 내 비주얼 일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사회관계망’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SNS의 태생과 속성은 숨길 수 없는 것 같다. 이구동성 ‘내 만족’이라는 명분으로 SNS를 하지만 내용이나 사진은 남들 보라고 올리는 경우가 많았다. 따뜻한 안부 인사말이 오고 가던 자리엔 ‘내가 이렇게 잘나가고 있다’만 남았고, 골치 아픈 이야기, 마음속 진심 대신 ‘내가 꾸며낼 수 있는 최고의 모습’만 올리는 것이 암묵적인 룰이 되어갔다.      



친한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이런저런 사는 얘기를 주저리주저리 털어놓는 용도를 기대했던 나 조차 어느 순간 SNS의 암묵적 룰에 동화되고 말았다. 최근 브런치에 올린 글이 폭발적인 조회 수를 기록하자 그래프를 캡처해서 SNS에 올린 내 모습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재빨리 글과 사진을 내렸다.     



SNS에서 관계를 맺고 있던 사람들도 스트레스를 줬다. 자주 소통하자며 먼저 나를 팔로우하고 맞팔하자고 제안한 사람들 중 몇몇은 스리슬쩍 나를 언팔한 것. 그저 자신의 팔로워 숫자를 늘리기 위해 나를 이용한 것이었다. 괘씸한 마음에 귀찮음을 무릎쓰고 일일이 팔로워 팔로우 명단을 대조해 그런 사람들을 색출, 언팔해나갔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나를 씩씩대고 있는 내 모습을 보고 놀랐고, '이게 뭐라고 내가 스트레스를 받나' 싶어 언팔자 색출도 그만뒀다.



과도한 광고/홍보 콘텐츠도 피로감을 더했다. 언젠가부터 SNS는 홍보 마케팅의 장으로 변해버렸다. 내가 팔로우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닌, 그 사람이 만든 만든 상품과 콘텐츠에 대한 홍보만 넘쳐났다. 광고/홍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보기 싫었다. 영화시작을 기다리며 극장에 앉아있는데 상영시간을 훌쩍 넘겨서까지 끈임없이 광고만 보는 그런 기분이었다. 나 역시 작가이자 강사인만큼 내 책을 알리고, 내 자신을 한껏 꾸며 수시로 적극적으로 홍보해야 하거늘 '꼭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SNS에서 돌아가는 광고/홍보 매커니즘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잘 나가고 예쁜 소위 '인싸'들은 SNS 홍보효과를 톡톡히 보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았다. 내 지인 중에는 후자가 더 많았다. 자신이 만든 콘텐츠를 SNS에 열심히 홍보하는 분들이 있었지만, 조회 수나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을 다는 사람의 수가 '인플루언서'에 비해 현저히 떨어졌다. 콘텐츠나 상품의 질이 결코 떨어지지 않는데도 말이다.



그저 남들보다 화려하지 않아서, 예쁘고 잘생기지 않아서 주목을 받지 못했다. 어떻게든 주목을 받아보고자 노력하는 모습이 안쓰러웠고, 그 분들의 진가를 몰라주는 사람들이 원망스러웠다. 오프라인에서 벌어지는 '외모지상주의'가 SNS에서는 더욱 즉각적이고 극단적으로 일어났다. 인플루언서들의 잘못은 아니지만, 적어도 나에게 그들은 인'플루'언서였다. 마음의 고열을 동반하는 감기 바이러스 같은.    


  

광고/홍보성 콘텐츠 이외에 이른바 '토막치기'식 무차별 업로드도 피로감을 더했다. 지인 중엔 SNS 중독자들도 있었는데, 예를 들어 그 SNS 중독자가 해외 여행을 가면 내 피드가 그의 해외여행기로 점령당하는 식이었다. 인천공항에서 여권에 행선지가 적힌 보딩패스를 끼워 촬영한 사진, 비행기 안에서 찍은 구름 사진, 기내식 사진, 현지 공항에 내려서 찍은 사진, 호텔 외관과 방 사진, 끼니 때마다 먹은 음식들과 디저트 사진, 주요 여행지 사진, 쇼핑한 장소와 구매한 물품들 사진에 이르기까지 하루에도 수십 장의 현지 사진이 내 피드에 고스란히 노출되었다. 다른 사람의 소식을 접하려면 한참이나 스크롤을 내려야했다.

   


'관종' 콘텐츠도 짜증을 불러일으켰다. 내 팔로워과 페친들이 정체불명의 가짜뉴스를 스크랩하고 자극적 콘텐츠에 좋아요를 누르면 나 역시 그 콘텐츠들에 고스란히 노출됐다. 트위터는 내로남불러, 정치병 말기 허세 종자들에 점령당한지 오래고, 페이스북엔 악의적이고 자극적인 가짜뉴스가 스크랩을 통해 확산되었다. 트렌드는 시시각각 변했고, 사람들은 '요즘 SNS에선 이게 유행'이라는 것에 몰려들어 우후죽순 비슷한 콘텐츠를 쏟아냈다. 사람들이 몰려 더이상 튀지 못하게 된 사람들은 '떡밥'을 더욱 강화하며 미친 짓도 마다하지 않았다. SNS를 피해 유튜브로 넘어왔지만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SNS에 대한 피로감이 쌓이자 나도 변했다. 일상에서 질투심 따위는 거의 느끼지 않았던 나는 SNS에서는 질투심이라는 감정을 가지게 되었고, 이런 감정들이 반복되자 극심한 회의감과 피로감이 몰려왔다. 매 번 좋은 곳에서 값비싼 식사를 하고, 해외여행을 다니는 사람들을 보며 '저 사람들은 대체 일은 언제 하나'라며 그들을 부러워했다. '난 죽어라 일만 하다 어쩌다 한 번 해외여행을 가는데, 그들은 무슨 복을 타고나서 매일같이 화려한 삶을 살까'라며 박탈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면서 '그들도 분명 슬픈 일도 있을 것이고, 고민 거리도 있을텐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여주고 싶은 것만 한껏 꾸며 보여주는 사람들을 보니 안쓰러운 마음도 들었지만, 이내 그들과 멀어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들과 나는 한데 어우러질 수 없는 다른 종족 같았다. 끼리끼리 논다고 했던가. 속내를 털어놓을 정도로 친하거나 마음 맞는 사람들은 SNS를 자주 하지 않았다.



그래서 결심했다. 잠시만 SNS를 쉬어보기로. 보여주고 싶은 정제된 모습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주고, 남의 모습을 보기로. 팔로워와 조회 수가 인기의 척도, 더 나아가 성공한 인생의 척도가 되는 그 가당치 않은 룰을 거부해보기로.     



그렇게 시대에 뒤떨어지게 살기로 결심하고 SNS 앱을 지웠다. 소식이 뜸해지면 친한 사람들이 깨톡으로, 전화로 연락을 해올 것이다. 나 역시 내 SNS 계정에 뜬 사람이 아닌, 내 가슴과 머리에서 떠오른 사람에게 연락을 할 것이다. 몇 명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렇게 난 그들과 직접 만나 눈과 눈을 부딪히고, 술잔을 부딪히며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고 싶다. SNS에서는 볼 수 없었던 진정성 있는 이야기들, 진짜 속마음들을 주고받으며 SNS에서 그렇게 공허하게 외치던 ‘소통’을 하고 싶다. 



오직 SNS에서만 관계를 맺으려는 사람, ‘내가 이렇게 잘나간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나를 수많을 팔로워 중 하나로 취급하는 사람, 내가 SNS에서 사라지는 것과 때를 같이해 내 존재를 지우는 사람은 나 역시 지워버리고 싶다. 퇴사를 하면서 SNS로 관계 맺던 사람들 중 일부가 나를 정리했다. 그리고 아마 간헐적 SNS 단식에 들어가면 나를 버릴 사람들이 또 늘어날 것이다. 기자 시절보다 팔로워들도 많이 줄어든 마당에 아쉬울 것도 없다. 되려 옥석을 다시 한 번 고를 수 있으니 감사한 일이다.    



그렇게 난 SNS 없이 살기 50일 프로젝트 시작했다. 하지만 프로젝트 이후에도 난 변함없이 살 것이다. 여행도 다니고 미식투어도 하면서. 다만 내 일상의 기록을 남들의 평가수단으로 전락시키고 싶지 않다. 남들을 의식하기도 싫다.   


   

대 SNS의 시대, 50일 후 그동안의 삶이 너무 불편했다면 재충전하면서 머리를 식히고 돌아왔다고 생각하고 다시 어쩔 수 없이 ‘살기 위해’ SNS를 할 것이다. 남들처럼 천연덕스럽게 나와 내 콘텐츠를 홍보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50일이 좋으면 ‘50일 받고, 50일을 더해’ SNS 간헐적 단식 기간을 100일로 연장할 수 있다. 그리고 그 100일은 365일이 될 수도 있다. 아니면 다이어터들처럼 비정기적으로 한 번씩 ‘간헐적 SNS 단식 50일 프로젝트’를 할 수도 있다.



이 간헐적 단식은 내 마음을 더 건강하게 해 줄까, 불필요한 인간관계 다이어트를 도와줄까, 아니면 ‘마음의 영양실조’에 걸리게 할까. 어쨌든 의미 있는 실험은 시작되었다.     




Copyright(C) Sep.2019 by Writer T.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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