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작가미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Writer T Sep 16. 2019

퇴사 1주년, 기념해도 되겠지?

봄날로 시작한 인생 2막, 무더위도 한파도 오면 어떠리...


‘사계절이 와, 그리고 또 떠나. 내 겨울을 주고 또 여름도 주었던~’(태연 사계 中)     

‘그렇게도 기다린 봄은 오지만 나는 어쩌면 여기 너 없는 겨울에 갇힌 채 살아~’(MC the MAX 사계 中)     

‘빨간 꽃 노란 꽃 꽃밭 가득 피어도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노찾사 사계 中) 


          

오늘은 퇴사한 지 꼭 1년 되는 날이다. 대학교 졸업 후 패기 넘치게 시작했던 인생 1막의 실패를 받아들이고, 새롭게 인생 2막을 열기 위해 던진 사표가 수리되고 사내 인사발령란에 내 이름이 등장한 그 날로부터 1년. 이 날 라디오에서는 ‘사계’라는 제목을 가진 ‘동명이곡’이 잇따라 흐르고 있었다.  

    


사계, 즉 뚜렷한 개성을 지닌 각기 다른 네 개의 계절이 존재하고, 그 계절들이 한 바퀴를 도는 기간은 1년이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1년’에 대한 의미부여를 많이 하는 것 같다. 돌잔치가 그렇고, 결혼 1주년이 그렇다. 과거엔 기근 질병 등으로 신생아들이 첫 1년을 살아내기 벅찼다. 그래서 태어나자마자 먹는 한국식 나이 한 살 대신, 만 1년 된 시점에 돌잔치를 열어준 것 같다. 세상 가장 큰 고통이라는 출산의 고통도 모자라 출산 후 그 숨 막히는 1년을 잘 버티고 키워낸 산모에 대한 노고의 의미도 있을테고. 결혼 1주년도 마찬가지. 결혼 초기에 이혼하는 커플이 많은데, 서로 사랑하고 양보하며 잘 맞춰왔다는 의미로 결혼 1주년엔 서로 선물도 주고받고 기념 여행을 떠나는 커플도 많다.     



사계절을 지내면서 때로는 화산처럼 뜨겁고, 때로는 얼음장같이 차갑고, 그리고 그 얼음장이 갈라지며 향기로운 봄꽃이 피고, 화려함을 한껏 뽐내던 알록달록한 낙엽들이 비실비실 떨어지는 광경들, 그 희로애락의 광경들을 인생에서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특히 자신이 의미를 부여한 시점 이후 1년간의 인생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계절의 변화를 느끼듯 각자 처한 상황들, 일 그리고 사람들과의 교류에서도 싸우고 화해하고 보듬고 극복하며 사계절의 변화와 닮은 과정이 있기에 1주년은 더욱 의미가 깊을 것이다. 그래서 앞서 언급한 ‘사계’라는 노래의 주제는 전부 제각각이지만 깊은 울림을 주는 것이리라.       



나 역시 퇴사 1주년 맞았다. 회사에서 난 실패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내 인생 전체가 실패했다고 인정할 수 없었다. 날 실패자라고 낙인찍은 곳에서 시간만 더 축내고 있다면 실패자의 나날을 이어갔을 것이고, 그것이야말로 실패한 인생이었을 것이다. 실패여부는 내가 결정한다며 회사 문을 박차고 나왔다. 하고 싶은 게 없고 꿈이 없는 게 문제지, 꿈과 미래 계획에 섰기 때문에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이직이 아닌 거친 벌판으로 나오기 위한 퇴사라 그런지 지난 1년간의 삶은 더 드라마틱했던 것 같다. 그야말로 뜨겁다가 이내 차가워지는 계절의 변화를 온 몸으로 겪었다. 지난 1년간 나는 책을 내고 작가가 되었으며, 내가 해온 일을 바탕으로 나만의 콘텐츠를 더해 강단에 섰으며,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업계 후배들에게 멘토가 되어주는 삶을 살고 있다. 또한, 아이들의 글쓰기 및 NIE(Newspaper in Education) 선생님으로 변신했다. 사표가 수리된 직후 ‘향후 1년간은 아무 생각 하지 않고 푹 쉬고 놀아야지’라고 결심했지만, 평생을 함께 했던 글마저 놓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 담담히 글을 꾸준히 썼고, 그것이 바탕이 되어 N잡러의 삶을 살고 있다.     



나를 수식하는 단어가 늘어난만큼, 삶도 더 다이나믹해졌다. 회사를 다니던 시절처럼 다달이 정해진 액수의 돈이 통장에 찍히진 않는다. 메어있지 않은 몸이라 바쁠 땐 직장생활 할 때보다 훨씬 더 바빴고, 일이 없을 땐 백수와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았다. 평소 나를 엄청 위해주는 것 같이 행동하고, 의리와 우정을 강조하던 사람들이 떠나갔다. 반면, 한 발 떨어져서 나를 지켜보던 사람들이 다가와 어깨를 두드려주기도 했다. 명절 때마다 귀찮을 정도로 문자와 깨톡을 받았고 그들에게 의무적으로 답장을 하는 것도 부담이었는데, 거짓말처럼 이번 추석 연휴엔 그런 연락이 싹 사라졌다. 4초간 씁쓸했지만 그런 속박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하니 연휴 4일 내내 기뻤다.



나쁜 일이 있을 땐 전보다 100배는 힘들었다. 하지만 좋은 일이 있을 때는 전보다 1,000배 즐거웠다. 그래서 사람들이 퇴사 후의 삶에 대해 물어보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지난 1년 동안 남는 장사를 했다고 말한다. 지난 1년, 이전과 확연히 달라진 점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내가 주도적으로 미래를 그릴 수 있는 삶이라는 점이다. 다만 그 대가로 어쩌면 평생 불확실성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      



지난 1년이 봄이었다고 해도, 앞으로 계속 봄날만 찾아오리라는 보장은 없다. 무더위에 지칠 수도 있을 것이고, 한파에 몸을 움츠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이미 다 겪어본 계절인 것을. 




Copyright(C) Sep.2019 by Writer T. All rights reserved. 


매거진의 이전글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X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