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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매일 단상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자기 서사의 당황스러움에 대하여

by 김나물

이런 저런 일로 인터뷰를 하고 다닐 기회가 적잖이 있었던 나는, 얼마전에 또 다른 인터뷰를 진행하게 되었다. 본격적인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 의례적으로 진행하듯 자기 소개를 부탁했다..


"자기 소개 좀 부탁드립니다"


무얼 말해야 하느냐며 당황한 인터뷰이의 대답에 나 역시 적잖이 당황했다. 일단, 사과를 드린 후 인터뷰 취지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장황하게 풀어놓았다. 보통 통상 의례적으로 묻는 이 질문에 이렇게나 당황한 모습을 본 적은 처음이었다.


그래서 인터뷰를 끝내고 난 이후에 그때 겪었던 나와 인터뷰이의 당황함을 풀어보기로 했다. 왜 그때 그분은 자기소개에 당황하였을까.


물론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할 수 있다. 우선 인터뷰에 대한 사전 지식이 전무했다. 친한 지인에 의해 이끌려온 인터뷰이. 인터뷰에 대한 사전 정보가 충분치 않은 상황에서 모든 것이 낯설었을텐데 갑자기 훅 들어오는 자기소개 질문이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혹은 그저 설문조사를 한다고 생각하고, 객관식 유형의 질문을 생각하고 왔는데, 처음부터 주관식 질문이 시작되어 당황했을 수도 있었겠다. 아니면 애써 시간을 내서 왔더니 마치 자신이 여길 자발적으로 온 것 같이 '자기 어필'을 해야하는 어색한 순간으로 느꼈을 수도 있다. 그들의 긴장감을 충분히 덜어내고 시작하지 못한 인터뷰어로서의 나의 잘못일 수 있다.


자기 소개, 그 참을 수 없는 당황스러움


하지만 이런 저런 이유를 떠나, 많은 경우 인터뷰를 시작할 때 의례 던지는 자기소개를 부탁하는 것은 너무도 흔한 일이다. 비단 인터뷰를 떠나 자기 소개를 해달라는 질문은 어딜 가나 흔히 듣는 질문이다. 새로운 자리에 초대를 받았을 때, 직장을 구할 때,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때, 사람들은 질문한다. "자기 소개를 좀 부탁드립니다" 지금껏 여러 인터뷰를 진행해오면서 처음 인터뷰의 물꼬를 틀기에도 좋은 질문이기도 했다.


물론 가장 어려운 것이 자기소개이다. 모든 취준생들이 자기소개를 앞에 두고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는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요약할 지 몰라 난감해 한다. 오랜시간 작가로 활동해온 지인 역시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 중 하나가 자기소개라고 이야기를 할 정도이니 비단 소수가 겪는 어려움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 어떤 글보다 자기 소개 100자~200자를 쓰는 것이 더 어렵다. 나의 수많은 인생을 어찌 그 짧은 글로 표현할 수 있을까.


자기 서사에 대한 경험의 부재


다시 우리의 당황함으로 넘어와서. 그분은 왜 당황했을까. 나는 그 이유를 자기 서사에 대한 경험의 부재에서 찾는다. 내가 이전까지 만났던 인터뷰이들은 대체로 음악인, 학생, 교수, 지역 유지 등이었다. 직업적으로 자신의 강한 정체성을 어필해야 하는 이들은 자기소개 요구에 거리낌없이 대답을 하곤 했다. 때로는 직업을 내세우며, 나이를 내세우며. 자기 서사의 가장 극적인 순간을 내세우며. 물어보지도 않은 질문에 자신의 주변인들을 소위 잘나가는 직업군으로 소개하는 누군가처럼. (물론 이날 당황했던 분과 같은 직업군에 있던 분 역시 "뭐에 대해 이야기하면 될까요?"라고 이야기 한 후 대답을 해주자 바로 대답을 이어갔던 일도 있긴 했다. (하지만 이전에 사무직 팀장으로 꽤 일을 하셨다니 자기소개에 익숙했을 수도)


보잘 것 없는 존재의 서사


하지만 보잘것 없는 육체노동자의 자기소개가 뭐 별거 있겠어요?가 그 분의 당황스러움이었을까. 문제는 그런 걸 아무도 물어보지 않았고, 물어볼 필요도, 알 필요도 없었다는 데 있다. 그저 육체가 건강해보이면 그걸로 족하다. 눈에 보이는 신체 건강함 이외에 정신의 건강함을(마음의 상태를) 체크할 만큼의 자기소개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아무도 나의 존재에 대해서 궁금해하지 않는 것에 익숙해졌을지도 모른다.


순간 자기소개를 요청받는 순간마저도 특권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스쳐간다. 심지어 직장을 위해 면접을 간 그 곳에서도, 갑과 을이 분명한 곳에서도 나의 서사를 궁금해 한다. 또한 그러한 상황에 자주 놓이는 것 역시 특권일 수 있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하지만 육체 노동의 현장에서는 그 누구도 그들의 서사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자신의 학력과 직업을 밝히자마자 대화에서 외면당했다는 어느 지인의 황당한 기억처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존재를 알리는 일은 중요하다. 그러니 거리낌없이 자기를 소개해라. 어느 청소년노동자가 내 건 "우리도 사람이다."의 현수막 문구처럼. 나의 존재를 알리자.


"저기요. 제 소개 좀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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