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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매일 단상

담백하기, 그 어려움

자아 과잉에 취한 자의 고백

by 김나물

이전에 진행했던 작은 글쓰기 모임에서의 일이다. 언제나 모임이 시작되면 의례 하는 자기소개가 진행되었고, 우리는 자기소개를 글로 옮기기로 했다.


나는 활발한 겉모습과는 달리 사적인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는 편이다. 어디서든 불쑥 자신의 사생활을 아무렇지도 않게 풀어놓는 사람을 보면 그들의 천역 덕스러움이 부럽고 마냥 신기할 따름이다. 아니 내심 깔보는 마음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나 혼자만 즐겁고, 나 혼자만 감동받고, 나 혼자만 슬프지. 그걸 누가 공감해?? 실은 모두 듣고 싶지 않은데 공감하는 척하는 것뿐이야' 그렇게 생각하니 나의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를 펼쳐내는 순간이 나에게는 그렇게 부끄럽고, 오글거리는 순간으로 다가왔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이번 글쓰기 모임은 달랐다. 글은 솔직해야 한다고... 다 털어놔야 한다고 생각해서 그런가. 평소 술 한 방울 입에 안 대다가 폭주하는 사람처럼 나는 '나라는 자아'에 한껏 취했다. 평소 자신의 주량이 얼마인지, 자신의 주사가 어떤 것인지, 혹은 주사가 있는지 없는지 조차도 알지 못하는 사람처럼 한껏 자아에 취한 나는 내일의 부끄러움을 잊은 채 질주했다.


글 속에서 나는 온갖 어려움 끝에 모든 일이 술술 풀리는 만사형통의 대운을 가진 사람이 되어 있었으며, 실은 이런저런 일이 잘 풀리지 않아 마음속에 열등감과 분노가 가득 찼으면서도 소소한 일상에 행복을 느끼는 세상 통달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야말로 이때다 싶어 나라는 자아 과잉에 취해 MSG를 마구 뿌려댔다.


마침 나의 소개가 끝나고 옆 사람이 입을 열었다.


'저는 그냥 담백하게 썼어요'


아... 이 담백함의 어려움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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