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의 모든 것
일단 나가서 써라.
최근 나는 대만에서 한달살이를 끝내고 돌아왔다. 누군가 나에게 한달살이의 가장 큰 수확이 뭐였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이렇게 답하겠다. 관광을 실컷 한 것도, 타국의 낯섦에 설레었던 것도 아닌, '내가 어떻게 하면 글을 쓴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라고.
항상 바쁘다는 핑계로 글을 쓰는 것에도, 읽는 것에도 게을렀다. 일을 하고 있으니 이 정도 핑계는 타당한 것이 아니겠냐며 항상 나를 설득했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일을 하지 않을 때도 글 쓸 시간은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한달살이는 본격적인 글쓰기를 위한 시간을 갖기로 했다. 작년 한 해 동안 파절이되도록 일을 했더니 창작욕이 마구 솟구쳤다. 뭐든 쓰고 싶고, 써야만 했다.
'집안일과 아이들에 대한 모든 책임감을 벗어던지고 나면 글 쓸 시간들이 남아돌 거야. 창작욕에 불타올라 밤낮을 잊고 글을 쓰리라!'
앗. 그런데 왜 이렇게 시간이 없지?
인생에는 일이라고 쳐주지 않는 할 일들이 꽤 많다. 시간이 남아돌거라 생각한 대만에서의 일상도 빠르게 흘러갔다. 오전에는 잠깐 스마트폰을 켜놓고 뉴스를 보고 외국어 공부를 하고 급한 일들을 처리한다. 그러다 보면 점심이다. 인생 최대 고민인 오늘은 뭐 먹지를 생각히며 주변 식당을 폭풍 검색한 후 끼니를 해결한다. 점심을 먹고 나면 또 그렇게 노골노골할 수가 없다. 가볍게 산책까지 하고 나면, 그래 잠깐 쉬어줘야지. 애지간히 쉬었으니 슬슬 글을 써야지 마음을 먹지만 노트북을 들고 밖으로 나서는 건 쉽지 않다. 나가기 싫다는 '나'를 어르고 달랜다. 그렇게 더 쉬고 싶어 하는 나와 옥신각신 하다 보면 어느새 오후 2~3시가 된다. 카페에 자리를 잡고 다음 허기가 찾아올 때까지 글을 쓴다. 6시가 되기 전에 어김없이 신호가 오고, 그렇게 저녁을 먹고, 숙소로 돌아온다. 분명 오후에 결심하길, '저녁에는 꼭 돌아가서 글을 더 쓸 거야'라고 하지만 막상 돌아오면 퍼지기 일쑤다. 가족들과 잠시 통화를 하고 보면 밤 10시다. 왜? 벌써?! 밤늦게 글 쓰는 건 너무 감상적이니 오늘은 여기까지 하기로 합의를 본 후, OTT로 영화나 드라마를 시청한다. 글의 영감을 받기 위함이라는 핑계를 대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시간이 남아돌거라 생각한 한달살이를 정산해 보니, 부끄럽게도 위의 일과가 나의 글쓰기의 최선의 패턴이었다. 글 쓰는 시간이 고작 3시간이라니!!! 창작에 목말랐다면서?! 누군가는 나의 게으름이 문제라고 지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꽤 성실하고 부지런한 사람이다. 문제는 글쓰기 이외에 다른 일에도 성실하다는 점이다. 게다가, 의외로 나의 몸은 그만의 자율성을 가지고 있어 내 의지처럼 쉽게 움직여주지는 않는다. 이 사실을 깨달은 것만도 큰 성과일 수 있겠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깨달음은 바로 "일단 나가서 쓰자"였다. 너무나도 자명해 이렇게 단호하게 말하는 것이 우스울 정도로, 나의 몸은 그렇게 설계되어 있었다. 집에서는 글이 써지지 않는 걸로. 보기와는 달리 예민한 성격 탓에 글 쓰는 중간에 누군가가 말을 시키면 엄청 날카로워진다. 그리고 무엇보다 집은 정말 쉬는 공간으로 남겨두어야 했다. 그래야 숙제 같은 글쓰기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서 쉴 생각에 행복할 수 있으니까. 집에 있는 컴퓨터를 보고, '아, 오늘 글 더 써야 하는데'라는 죄책감을 갖지 않아도 되니까.
불행 중 다행은 비록 3시간의 글쓰기지만 나름 알찬 글쓰기를 한다는 것이다. 한번 몰입하면 화장실도 안 가고 미친 듯이 질주하는 스타일이라 3시간 후에는 녹초가 된다. 그래도 일단 나가면 내가 뭐든 쓰더라는 자기 확신이 생겼다. 뭘 쓸지 모르겠다는 막막함에 글에 손을 대기가 어려웠는데, 글을 쓰겠다고 앉아있으니 글감들이 찾아온다. 글이라는 건 참 신기하다. 다음 소재 거리를 언제나 물고 온다. 그리고 오늘 글을 쓰다 막히면, 내일의 내가, 또는 내일 모레의 내가 해결해 준다.
매번 집 밖을 나서기 전이면 나 자신과 한바탕 실랑이를 벌이곤 했는데, 이제는 믿음이 생겼다. 일단 나가면 내가 뭐든 쓰고는 있더라는. 몇 시간 후의 나에게 감사해질 것이라는. 그리고 오늘의 고민은 미래의 내가 해결해 줄 것이라는. 그러니 고민에 매몰되지 않아도 됨을.
그러니 감히 글쓰기의 모든 것이라고 칭해본다. 일단 나가서 쓰자. 그래서 오늘도 나는 일단 나와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