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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매일 단상

기괴한 사과

단상들

by 김나물

"본격적으로 음악을 해 보면 어떻겠니..."


엄마는 불현듯 말을 꺼냈다. 아들이 글을 좀 쓴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고, 들리는 말에 의하면 음악적인 재능도 있는 듯 하니 음악에 본격적으로 자신의 삶을 맡겨보라는 말이었다. 추측컨대, 매일 아들을 위해 기도하는 엄마의 간절하고 오래된 기도에 대한 응답이었을 수 있겠다.


'엄마가 먼저 음악을 하라고 하니 열려있는 분이네요', '아이를 굉장히 존중해 주는 엄마인가 봐요'라며 미소 지을 수도 있겠다.


그런데 이 말이 괴이하게 들리는 것은 매력적인 10대 반항아 아들을 둔 엄마가 하는 말이 아니라, 곧 팔순을 바라보는 엄마가 오십이 다 되는 아들에게 건네는 말이기 때문이다.


엄마는 항상 호언장담했다. 어떻게 내가 그들의 인생에서 옳은 결단을 내려주었는지. 엄마는 종종 어린 시절 수영을 좋아하던 조카의 꿈을 접게 한 이야기를 자랑삼아 이야기하곤 했다. 세월이 훌쩍 지나, 키가 크지 않은 그 조카를 보며 그때 수영선수가 되려던 조카를 말렸던 일이 얼마나 옳았던가를. 모두가 엄마의 말을 따랐고, 엄마의 결정은 언제나 옳았다.


그런 엄마에게는 글 꽤나 쓰는 어린 아들이 있었다. 아들은 어렸을 때부터 책 읽기와 글쓰기를 좋아했다.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문학 동아리에서 작가의 꿈을 키워갔나 보다. 문학 동아리 선생님에게 격하게 칭찬을 받았던 이야기, 누나를 위해 대필한 작품을 대학교수님이 칭찬한 이야기는 아들의 영광을 잊지 못하는 엄마의 오래된 레퍼토리 중 하나이다.


그런 아들의 꿈을 엄마가 어떻게 말렸는지 나는 자세히 알지 못한다. 다만, 어렴풋이 들은 바에 의하면 아들은 자신의 글을 모아 책을 만들어주겠다는 엄마의 약속을 철석같이 믿으며 자신의 책이 출판되기를 오매불망 기다린 듯하다. 물론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아들은 이후 작가의 삶과는 먼 학과를 나와, 글쓰기와는 먼 일을 직업 삼아 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기도를 하던 중 아들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이 선명하게 떠올랐을까.


몇십 년이 지나 때늦은 약속을 떠올린 듯, 늙은 엄마는 아들에게 책을 출판하라고 말했다. 아들이 열을 올리며 성을 내는 모습을 보니 그때의 엄마와 아들이 어떠했을지 어렴풋이 짐작은 간다.


왜 그때 나의 꿈을 짓밟았냐는 서러움. 왜 그때 나를 응원하지 않았냐는 원망스러움. 나는 지금 잘 살고 있는데 끊임없이 너의 인생은 실패했으니 다른 길을 찾아보라는 엄마의 애처로움이 아들에게는 사무치게 잔인했나 보다. 미안하다는 그 말이 그렇게 목에 메일까….


이제 오십이 된 아들과 팔십을 바라보는 엄마


이제 아들은 일하는 틈틈이 혼자 음악을 만든다. 그리고 그 꿈을 엄마와는 나누지 않는다. 어쩌면 엄마는 그 꿈을 나누고 싶어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너무나도 뒤늦게. 기괴한 사과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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