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들
지금 이 글은 자기 괴멸에 가득 찬 글쓰기를 통해 삶의 활력을 찾고자 하는 나만의 발버둥임을 미리 언급한다. 인생 40줄에 접어들면서 이제 곧 맞이하게 될 인생의 위기에 대한 대처법이기도 하다. 한참 울고 나면 기분이 좋아지듯, 스스로의 끝없는 부정을 통해 나를 긍정하고 싶어 하는 욕구의 발현일 수 있겠다. 심지어 우는 데 돈도 안 든다. 나름의 자가 심리치료로써 가장 저렵하고 효과적인 방식일 수 있겠다. 그러니 실컷 울게 내버려 두자.
나는 지금 잘 살고 있는 걸까...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 앉아 혼자 심연에 빠지곤 할 때 불쑥불쑥 찾아오는 질문이다.
나는 지금 잘 살고 있는 걸까?
이상과 현실의 간극에서 오는 괴리감
나의 이상세계에서 나는 좋은 엄마이자 남편과 즐거운 대화를 나누는 아내이고 시부모님과도 적당히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이런저런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는 현명한 며느리이다. 조용한 시골 전원주택에서 살면서 돈도 벌고, 여유도 즐기며, 딸이 그토록 갖고 싶어 하는 애완견을 키우며 살고 있다. 대출금도 다 갚고 사무실 1층에는 카페를 만들고 2, 3층에는 게스트하우스를 만들어 주말에는 공연도 하며, 친구들과 바비큐파티를 하며 하하 호호 살고 있다. 가끔 찾아오는 외국인 관광객들과 외국어로 소통하며 나의 잘남을 간간히 뽐내기도 한다. 나름 일에 있어서 명성도 쌓아 어려운 시절에 대한 추억을 회고하며 인터뷰를 하거나, 사람들 앞에서 강연을 하기도 한다. '공부, 그까짓 것 안 해도 된다'며 쿨하게 교육받은 아이들은 어느새 명문대를 나와 나름의 커리어를 쌓고 있다. 자신의 성공은 모두 엄마 덕이라는 이야기를 빼놓지 않는다.
하지만 현실 속의 나는 뭔지 모르게 항상 바쁜 엄마이고, 한번 꼬이면 상처 내려고 덤벼드는 아내이고, 시부모님과 독대할만한 자리는 피해 가며 뭔가 말을 건넨다 싶으면 못 들은 척 응수하는 못된 며느리이다. 시댁에 얹혀살면서 일은 벌여놓고 돈만 계속 들이붓고 있으며 딸이 그토록 갖고 싶어 하는 애완견을 지금은 키울 수 없다며 설득 중이다. 어떻게 하면 대출을 더 받을 수 있을까 궁리 중이며 허름한 골목길에 위치한 2층 사무실의 정리 안된 짐들을 보며 월세 걱정, 월급 걱정에 매일을 보내는 중이다. 좀 더 일에 미쳐야 하는데 일 때문에 희생하고 싶지는 않고, 불행하게 인생을 마감했던 해방 전후의 인텔리 여성도 되고 싶지는 않다는 아이러니에 빠져있다. 방치된 아이들은 하루종일 핸드폰에 빠져있기 일쑤이며 벌써부터 자기는 대학을 가지 않겠다고 선언을 한다. 숙제 때문에 징징대는 아이에게 '신데렐라 코스프레'하지 말라며 비꼬자 아이는 화가 나 엄마를 원망하며 소리를 질러댄다.
나의 끝없는 우울함의 가장 깊은 곳에는 아마도 내가 살고 싶어 하는 이상세계에 대한 너무나도 구체적인 그림이 있어서인지도 모른다. 아주 피나는 노력을 하지 않는 한, 거기에다가 운이 좋지 않은 한 내가 바라던 이상 세계가 현실로 떡하니 다가올 날은 없을 테니 말이다. 그러니 이 지경으로 살 게 한 남편이 원망스럽고, 세상이 원망스럽고, 부모가 원망스럽다. 나 말고 행복한 모든 이들이 원망스럽다. 미워하고, 원망하다 보니 사는 게 도통 즐겁지가 않다. 혼자 비련의 여주인공이 된 양 극단적인 생각도 잠시 스쳐간다. 영원히 끝이 나지 않을 우울증의 세계로 입문할 듯하다.
하루하루를 버티고 또 내일을 걱정하며 쳇바퀴 속에서 제자리를 맴돈다. 과연 나는 앞으로 나가고 있기는 한 걸까. 생각보다 현실은 그리 스릴이 넘치지도 드라마틱하지도 않다. 어느 날 눈을 뜨고 났더니 유명해지는 일은 없다.(적어도 나에게는) 학교를 저주하며 수학 30점 시험지를 들고 오는 딸이 갑자기 한국의 교육시스템을 찬양하며 모든 학부모들이 부러워할 모범생이 되지는 않는다. 남편의 연봉이 어느 날 갑자기 1억을 찍을 리도 만무하며 나의 가치를 알아보고 여기저기 러브콜이 쏟아질 리도 없다. '인생에 반전이 없는 것이 반전'이라는 누군가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럼에도 막장드라마 같은 반전의 짜릿함
그렇다고 매회 놀라운 페이스로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주인공이 죽었다 살아나고, 숨겨놓은 아이가 등장하며, 갑작스레 시한부 인생 판정을 받는 드라마 속에 사는 것도 사실 감내하기 벅찬 일일 것이다. 그럼에도 돌이켜보면 아침 드라마만큼 드라마틱한 것이 또 인생이다. 다만 전개되는 속도가 대단히 느릴 뿐이다.
어린 시절 좁은 방구석에 혼자 누워 상상만 하던 내가 어느새 외국물도 좀 먹게 됐다. 과연 연애는 할까 싶었던 내가 어느새 아이 둘을 낳았다. 진통의 간격이 3분, 2분, 1분으로 조여 오는 것을 보며 이제 곧 죽겠다 싶었는데 출산이라는 두 글자가 어느덧 추억이 됐다. 전혀 생각도 못했던 주변인 둘이 어느 날 사랑에 빠지고 행복해한다. 어느 날 아침 갑작스러운 전화로 지인의 부고를 듣는다. 산 사람은 또 그렇게 살아간다. 그저 평범하게 살아오던 가정주부였던 철없던 막내이모가 나이 오십이 다 되어 강연을 하고, 사람들에게 용기를 준다. 어느 날 남편은 래퍼가 되어 있다.
또 언제 반전이 될지 모를 순간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