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의 기쁨, 그보다 더 큰 남이 사주는 기쁨
아내와 나는 물질적인 삶을 대하는 태도가 많이 다르다. 아내는 아마도 전생에 조선 후기 실학자였으리라 쉽게 유추할 수 있을 정도로 실사구시와 미니멀리즘적인 소비를 추구한다. 아내는 본인이 처한 상황과 주어진 조건에 입각해 물질의 효용과 대체재의 여부, 향후 가치의 감가상각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소비한다. 즉, 웬만한 것은 소비하지 않고, 필요한 소비만 합리적으로 한다. 반면 나는 맥시멀리스트까지는 아니지만 가능성에 투자하는 위험추구형 소비자다. 내가 이 물건을 언젠가 어떤 식으로든 활용할 일말의 가능성을 발굴해내어 소비할 명분을 찾아내고 결국 소비하고야 마는 나는, 침체된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화폐가 돌아야 하고 그러려면 부지런한 소비가 필수라고 생각하는 친자본주의적 인간인 것이다.
결혼생활 동안 이런 서로의 차이를 알게 되었지만, 그 차이를 좁히고 맞춰나가는 것이 크게 어렵지는 않았다. 경제권이 아주 자연스럽게 아내에게 갔으니, 자연스레 아내의 소비패턴으로 맞춰지는 것이 너무나도 자연스러워 나도 원래 미니멀리스트가 아니었나 싶을 정도다. 하지만 깊은 내면의 친자본주의적 인간이 종종 묻지마 소비를 종용하고는 하는데, 그래서 오늘 같은 일이 종종 벌어지곤 한다.
향후 십수 년 간 고통받겠지만 도은이가 아직 세상 물정을 모르는 덕에 올해만큼은 무탈하게 지나갈 어린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우리는 특별히 선물을 해줄 생각은 없고, 도은이 통장에 용돈 얼마를 넣어줄까 정도만 고민하고 있었다. 하지만 조부모님들 마음은 그렇지 않아서 도은이 선물을 사주고 싶어 하셨다. 그리고 양가 어머니들 모두 아내가 도은이에게 주방놀이 장난감을 사주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고 계셨다. 다만, 아내는 앞에 쓴 것처럼 소비에 신중하기 때문에 도은이가 주방놀이에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할 가능성에 대비해 당근마켓으로 사주고 싶어 했다.
장모님은 그게 얼마나 하겠냐며 주방놀이 장난감을 사주겠다고 하셨지만, 아내의 만류에 막혔다. 아내의 그런 성격이 어디서 왔겠는가. 장모님도 아내의 그런 합리적인 생각과 소비패턴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계셨다. 그러던 와중에 우리 엄마도 주방놀이를 사주겠다고 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링크를 보냈다. 아내의 합리적인 고민은 아내만의 것일 뿐, 나와는 상관없었다. 내 돈으로 사는 것도 아닌데 도대체 무얼 고민한단 말인가. 장모님이 아내에게 막힌 것까지 확인된 상황이어서 더더욱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전에 없던 친절함까지 샘솟아 제품명과 구입처까지 상세하게 엄마에게 보내드렸다. 그리고 오늘, 엄마는 주방놀이를 우리집까지 배송해주었다.
다행히 도은이는 주방놀이 장난감을 즐거워하는 것 같다(현재까지는). 또 다행히도, 아내도 그런 도은이를 보며 내가 마음대로 엄마에게 도은이 선물을 요청했던 것을 이해해주었다. 그리고 아내는 주방놀이 장난감 조립이 너무 즐거웠던 것이 분명했다. 도은이 점심까지 나에게 맡기고, 한 시간 여를 혼자서 뚝딱뚝딱 장난감 조립에 매진했다. 덕분에 모녀가 모두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나도 즐거웠다. 엄마 돈으로 도은이 선물도 사주고, 아내에게 생색도 냈다(단호한 결단력! 빠른 일처리!).
우리 세 가족 모두 즐거웠던, 휴직 2일 차가 지나간다.
오늘의 도은
- 엄마가 같이 사 온, 주방놀이만큼이나 도은이를 사로잡은 강아지 인형 : 부모님이 사는 시골에 ‘바디’라는 이름의 개를 키우는데, 도은이가 놀러 가서 무척이나 인상이 깊었는지 보이는 모든 개들을 바디라고 부른다. 그 얘기를 했더니 엄마가 도은이만 한 강아지 인형을 같이 사 왔는데, 보자마자 “바디! 바디!” 하며 좋아했더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