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휴직일기

220506

테니스 선수가 된 아내

by 잘코사니
팔 관절과 손목에 무리한 힘이 주어져 팔꿈치 관절 주위에 생기는 통증으로, 테니스를 즐기는 사람들에게 자주 일어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


오늘 아내는 정형외과에서 ‘테니스 엘보’ 진단을 받았다. 아내는 테니스를 쳐본 적이 없다. 유사한 운동으로는 배드민턴을 약 10년 전에 쳐본 것이 마지막이라고 한다. 테니스에 문외한이었던 아내는 고된 육아와 가사노동 끝에, 경기에서 한 점도 내지 못한 채 안타까운 부상으로 쓰러진 테니스 선수가 되어버렸다.


사실 아내가 팔꿈치 고통을 호소한 건 일 년이 다 되었다. 정형외과를 이미 몇 군데 가보기도 했고, 주사와 물리치료 등을 받아보기도 했다. 하지만 의사들의 공통된 진단은, “쓰지 않아야 낫습니다”였다. “아기가 있어서 쓰지 않기가 어려워요”라는 아내의 말에 해결책을 내놓은 의사는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한동안 병원에도 가지 않고 고통을 참으며 지낸 아내에게 이제 내가 휴직했으니 가서 진료도 받고, 꾸준히 치료를 받아보자고 반강제로 끌고 간 병원이었다. 의사는 아내의 팔꿈치 상태는 테니스 엘보 중에서도 꽤 심한 경우라는 진단과 함께 역시나 쓰지 않아야 낫는다고 했다. 같은 레퍼토리로 ‘아기가 있어서...’를 말하니 그럼 일단 급한 불부터 끄자며 주사 두 방을 놓아주었다.


관절이 성한 엄마는 별로 없을 거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아내는, 적어도 내가 보기엔 한참 상위권이다. 원체 부지런한 성격에 도은이에 대한 책임감도 강해 그 흔한 이유식 한 번 사먹이거나 기성품을 활용한 적이 없다. 백일 이후로 계속 잠자리로 말썽인 도은이를 돌보느라 맘 편히 잠든 날이 거의 없고, 아기 때 안아주지 않으면 언제 안아주냐며 도은이가 찡찡댈 때면 늘 번쩍번쩍 안아주곤 한다. 그러면서도 아직까지 도은이에게 짜증 한 번 낸 적이 없으니 말 다 했다. 그 와중에도 남편 해먹인다고 결혼 후 매일같이 찌개를 끓이고 밑반찬을 만들고 있다. 주변 모두가 적당히 쉬엄쉬엄 하라며 말려봤지만, 고집쟁이라서 말을 듣지 않았고 결국 비운의 테니스 선수가 되어버리고 만 것이다.


2-3일 아플 거라는 주사를 맞고 아내는 정말 팔을 움직일 수조차 없다며, 당분간 팔 하나가 없는 사람이나 마찬가지라며 웃었다. 같이 웃어주지 못했다. 아내가 안타까울 뿐이었다. 한편으로는 솔직히 매사에 너무 열심인 아내에게 조금 화가 나기도 했다. 본인의 몸이 이 지경이 될 정도로 육아를 하는 건 결코 도은이를 위한 일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아내는 그저 자신은 내 아이에게 최선을 다하고 싶을 뿐이라고 했다. 맞다. 아내가 잘못한 것이 뭐가 있겠는가. 그 부담을 조금 더 덜지 못한 내가 더 문제라면 문제다.


테니스 선수는 아이에 대한 너무나 큰 사랑(love)으로, 한 점도 내지 못한 채(love) 테니스 엘보를 부여잡고 쓰러지고 말았다. 그런 선수의 재활을 위해 남편이 휴직을 하였고, 그녀의 또 다른 오른팔이 되어 성공적인 재기를 돕기로 다짐하였다. 머지않아, 그녀의 호쾌한 백핸드를 다시 볼 수 있으리라.

건강하자



오늘의 도은

- 식빵 수세미 득템 : 아내가 병원 진료를 받는 동안 장을 봐오라고 심부름을 시켰다. 절대 카트에 타지 않겠다는 도은을 들쳐 메고 계산대 앞에 섰을 때, 물건 하나가 떨어졌고 별 수 없이 도은이를 잠깐 내려놔야 했다. 바로 그때 계산대 옆에서 식빵 모양의 수세미를 발견한 도은이는 “빵! 빵!”을 외치며 수세미를 부여잡았고, 정신이 혼미해진 나는 계획에 없던 수세미를 구매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도은이는, 차에 타자마자 수세미를 집어던지고 다시는 관심을 주지 않았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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