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휴직일기

220507

같지만 다른 하루

by 잘코사니

요즘 도은이를 중심으로 하루 일과를 간단히 나열하자면 이렇다. 아침 8시경에 눈을 뜨고, 생떼를 부리다가 8시 30분쯤에야 침대를 나선다. 9시를 전후해 아침을 먹고 10시 반쯤 오전 외출을 나섰다가 12시 정도에 귀가해 30분 안에 낮잠을 잔다. 두 시간 정도 낮잠을 잔 후에 15시 정도에 점심을 먹고 오후 외출을 나간다. 18시 안팎으로 집에 돌아와 잠깐 침대에 누웠다가 19시 조금 넘어서부터 저녁을 먹고, 이후 22시-23시 사이에 잠자리에 든다. 물론 이건 도은이가 아주 협조적으로 나와주었을 때의 평탄한 일과다.


오늘은 안타깝게도 아주 긴 하루였다. 오전 일과는 그런대로 평탄하게 흘러갔다. 하지만 갑자기 도은이는 강인한 정신력을 발휘하며 낮잠을 격렬하게 거부했다. 오후 2시가 넘어가면서 재우기를 포기하고 먼저 점심을 주었고, 점심을 간단히 해치운 후에도 도은이는 잘 생각이 없어 보여 바로 오후 외출을 진행했다. 당연히 평소보다 긴 외출이 되었고, 외출시간 내내 유난히 짜증을 내던 도은이는 결국 귀가하는 차 안에서 숙면에 빠져들고 말았던 것이다.


일어나라 용사여!


이미 오후 6시를 넘긴 시각, 여기서 길게 잠들게 되면 오늘 밤은 이 밤의 끝을 잡고 하염없이 뜬 눈으로 지새워야 될 판이었다. 6시 반, 1차 기상나팔을 울렸으나 강력한 저항에 조금만 더 재우기로 하고 후퇴했다. 조금 후, 2차 기상나팔이 울리자 도은이는 세상이 떠나가라 울며 온갖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얼마나 서럽게 울었던지, 간식으로 먹은 것들을 게워내기까지 했다. 나팔을 숨기고 다시 후퇴하기를 반복하는 동안, 시간은 어느덧 8시에 가까워졌고 그제야 도은이는 나팔소리에 맞춰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와 아내는 보통 도은이가 낮잠을 잘 때 점심을 먹고, 밤잠을 재운 후 저녁을 먹는다. 그런데 오늘은 낮잠이 생략되어 점심을 건너뛴대다가 평소보다 긴 외출시간 동안 도은이의 짜증을 받아냈고, 돌아와서는 토사물까지 받아냈다. 그리고 11시에야 도은이가 밤잠에 들었고, 11시 반이 다되어서야 오늘의 첫 끼니를 먹었던 것이다. 그런데 아내는 이미 이런 생활이 오래되었고, 나 역시도 이런 하루가 더 이상 유난하지 않게 느껴졌다. 도은이와 함께 하는 하루는 언제 어디서든 돌발상황이 벌어지기에, 오늘은 이렇게 될 거다, 라는 예측 따위는 사치일 뿐이다. 그저 도은이의 기분과 상태에 따라 그때그때 일과와 시간이 정해지는 것이고, 오늘은 도은이의 상태가 조금 남달라 이런 하루가 되었을 뿐이다.


내일은 또 평소 같으면서도 새로운 하루가 펼쳐지겠지. 덕분에 매일 비슷하게 반복되는 하루하루지만 결코 지루하지가 않다. 물론 힘들기도 하지만, 도은이 덕분에 조금씩 변화하는 일상을 경험하는 재미가 있다. 다만 그저, 밥은 좀 맘 편히 먹게 해주셨으면 합니다, 도은 선생님.



오늘의 도은

- 아빠 품에서 잠든 도은 : 안 그래도 엄마 껌딱지인 도은이는 짜증 나거나 졸릴 때는 무조건 엄마만 찾는다. 그래서 두 돌이 다 되어가는 도은이가 내 품에서 잠든 건 손에 꼽는다. 그런데 오늘은 너무 피곤한 나머지, 내가 안아도 아무 미동도 없이 잘 자더라. 내 품에서 잠든 아이의 온기는, 내가 아빠가 맞긴 하구나, 라는 묘한 감상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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