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은이의 효도를 기다리며
어제는 어버이날이었다. 나도 이제 어엿한 어버이니까 도은이가 카네이션도 주고 대접 좀 해주나 했지만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한 듯하여 우리 엄마, 아빠한테나 가기로 했다. 마침 할아버지 제사이기도 하여, 겸사겸사 시골에 내려갔다. 언제나 장거리 운전은 이도은 선생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 수 있어 두려웠으나, 선생의 협조와 아내의 노고로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어린이날부터 시작된 연휴의 마지막 날이라 그런지 동맥경화마냥 꽉 막힌 반대편 차선을 보며, 다시 한번 휴직을 잘했다 자축도 했다.
부모님은 강원도 홍천에서 소를 키우신다. 덕분에 나는 좀 빈티지한 스타일로 인생을 살았다. 부모님은 소를 팔아 나를 공부시켜 대학에 보냈고, 결혼도 시켰다. 안 좋은 의미로 쓰이는 ‘우골탑’을 쌓은 불효자가 바로 나였던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건 그게 아니고, 그래서 도은이는 할아버지를 음머하비, 할머니를 멈머함미라고 부른다. 가는 날부터 음머, 멈머를 수없이 말하더니 도착하자마자 음머를 보러 가겠노라며 제 어미를 보챘다. 그러고는 막상 소 앞에 데려가면 무서운지 꼭 안기기만 했다. 아직 영농후계자가 되기에는 담력이 부족하다.
이번 방문은 도은이에게는 두 번째다. 한 달 전 첫 방문 때는 좀 낯선지 할아버지, 할머니에게도 어느 정도 거리를 두었는데, 이번에는 금방 낯가림을 풀고 잘 보냈다. 무엇보다도 소를 보러 가는 것이 너무 신이 나는지, 한참을 보고 돌아와서는 오자마자 다시 보러 가자며 찡얼거렸다. 그래서 네 어른들은 번갈아가며 도은이를 데리고 산책을 반복했다. 덕분에 도은이도 신나고, 부모님도 많이 웃었다. 우골탑만 쌓던 불효자가 결혼하고서야 효도를 하는 기분이 들었다. 아내에게 다시 한번 감사하다.
부모님은 내가 중학교 때 귀농을 하셨는데, 한때는 그게 부끄러웠던 시절이 있었다. 주말이면 친구들은 어디를 놀러 간다는데, 우리 가족은 다 같이 아빠 혼자 있던 홍천 시골에 내려가 소밥을 주고 똥을 치워야 했으니, 그때는 그게 참 싫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 들수록, 시골이 있다는 게 나쁘지 않다. 도은이와 함께 가니 더 그런 생각이 든다. 소똥 위에 철퍼덕 앉아서 만지작거리고, 밭에 난 상추를 다 뜯어버리는 도은이를 보면서, 건강하게 크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참 금방 큰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과 한 달 전 처음 홍천에 갔을 때와 이번은 많이 달랐다. 낯선 환경에 훨씬 잘 적응하고, 쉽게 다가가는 도은이를 보며 부모님도 한 달 새 많이 컸다는 말을 반복하셨다. 어버이날이라 그런가, 도은이가 금방 큰다는 생각이 부모님은 금방 늙으실 거란 생각으로 이어졌다. 도은이 재롱을 보며 참 많이도 웃으셨던 두 분의 얼굴이, 도은이의 얼굴에 자꾸 겹친다.
카네이션 한 송이로 얼버무려지지 않는 이런 마음은, 나도 어느새 어버이가 되었기 때문인가 싶다.
오늘의 도은
- 잘 먹고 잘 놀고 잘 싼 3잘 도은 : 도은이에게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하는 시간은 엄마, 아빠와 있는 시간들보다 훨씬 자유도가 높다. 먹고 싶고, 하고 싶고, 놀고 싶은 것들을 더 많이 누릴 수 있다. 덕분에 이도은 선생은 평소에는 절대 먹지 못할 간이 좀 있는 음식들과 과자를 맛보시고, 온 집안을 휘저으며 신나게 노셨다. 그래서인지 잘 싸고 잘 놀다가 잘 잤다. 물론 집에 돌아와서는 한 시간을 버티다가 느지막이 잠드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