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자석으로 붙이세요
부모님 댁 냉장고에는 조카(누나의 자녀) 사진이 한가득 붙어있다. 부모님에게는 첫 손주이자 한동안 같이 살기도 했고, 지금은 외국에 있어 영상통화로만 얼굴을 보는 터라 항상 아쉬워하는 부모님을 위해 누나가 사진을 자석으로 된 액자에 넣어 여러 개 만들어 보냈다고 한다. 자석으로 된 액자를 신기해하는 나에게 엄마는 도은이 사진도 몇 장 저렇게 만들어달라고 했다. 알겠다고 한 것이 벌써 몇 달 전인데, 얼마 전 시골 가기 전에야 그게 떠올라 부랴부랴 자석액자를 사려고 보니 웬걸, 잘 팔지를 않았다.
냉장고에 사진을 붙여놓는 것도 문화 차이가 있어 그런 건지, 자석으로 된 액자는 검색어를 바꿔가며 아무리 찾아도 잘 나오지를 않았다. 몇 개 찾기는 했으나 마음에 들지 않았고, 도저히 시골 가기 전에 배송되기도 어려워 포기하려다가, 자석 사진으로 검색된 사이트에 들어가서 살펴보니 바로 주문하면 시간 내에 받아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기존 계획(자석으로 된 액자에 인화된 사진을 낄 생각)과는 달리 아예 판으로 된 자석 위에 사진이 인화되어있는 형태여서 망설여졌는데, 그마저도 안 하면 아예 아무것도 못하게 될 것 같아서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주문을 했다.
빨리빨리의 나라답게, 다음 날 바로 배송이 되었고 결과물은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시골에 가져가니 부모님도 좋아하셨다. 그래서 이 작은 사진들 덕분에 모두 모두 행복했다는 이야기로 마무리되면 될 일이지만, 사실 이건 오늘 일기에 맞는 내용이 아니다. 시골에 다녀온 건 며칠 전이고, 지금까지의 내용은 오늘 있었던 일이 전혀 아니기 때문이다. 오늘 일기는 이제부터다.
자석액자가 아닌 자석 사진으로 주문했다고 아내에게 말했을 때, 아내는 탐탁지 않아했다. 자석으로 된 액자를 좀 더 찾아보라고 하여, 일단 이건 이거대로 주문해보고 그러겠라고 답했었다. 그런데 자석 사진을 받아보니, 이게 아내가 보기에도 생각보다 훨씬 괜찮았나 보다. 이거보다 예쁜 사진이 얼마나 많은데 왜 니 맘대로 사진을 골랐냐, 로 시작해 자기가 사진 뽑아서 줄 테니 더 주문해줘라, 처가댁에도 가져다주게 더 만들어라, 이왕 만드는 거 처가댁 가족사진도 몇 개 해줘라 등등 후속 지시사항을 하달하기 시작하셨다. 고개를 조아리며 분부만 내려달라고 말씀드렸더니, 빨리빨리의 나라 국민답게 아내는 얼마 지나지 않아 약 70장의 사진을 소인에게 전송하셨다. 다행히 나도 한국사람이어서, 빨리빨리 주문을 넣었더랬다.
그리고 오늘, 사진이 도착했다. 아내는 아내대로 신났는데, 재밌는 건 도은이도 사진을 보고 너무 즐거워했다. 본인 사진보다도 양가 부모님들(도은이에게 할머니, 할아버지)이 나온 사진을 보며 “함미! 하빠!”를 몇 번이나 외쳤는지 모른다. 신나 하는 아내와 도은이를 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살면서 특별하지 않은 일상 속에서 문득 행복을 느꼈던 순간들이 아주 간혹 있었는데, 사진을 늘어놓고 신나 하는 아내와 도은이를 바라보는 순간이 그런 순간들 중 하나가 되었다는 생각. 그 순간을 박제해 언젠가 또 자석 사진으로 만들어 붙여놔야지, 생각하며 그런 둘의 사진을 찍었다.
한참을 신나 하며 사진을 보던 아내가 말했다. “나 이번에 빠트린 사진이 더 있는데, 또 해줄 거야?”
생각보다 더 금방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오늘의 도은
- 아빠를 상심하게 만든 도은 : 사실 오늘 도은이에게 빈정이 상했다. 아침에 잠을 깨우는데, 내 얼굴을 보자마자 “아빠 아냐!”라고 몇 번을 반복해 소리쳤다. 그러고는 아내가 오자마자 바로 쏙 안겨버리더라. 물론 이런 찬밥 대접이 하루 이틀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연차까지 하면 휴직 생활이 한 달이 다 되어가는 데다가 나름대로 도은이와 훨씬 가까워졌다고 생각했는데도 그러니 정말로 마음이 좀 상했다. 그런데 별 수 있나. 도은이의 마음을 사기 위해 더 노력이 필요할 뿐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