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휴직일기

220530

엄마의 서랍장과 책장

by 잘코사니

오늘은 장거리 운전을 뛰었다. 목적지는 처가댁(대전)이었고, 오전에 출발해 점심쯤 도착한 후 간단히 식사를 하고 다시 돌아오는 왕복 300km 정도의 여정이었다. 목적은 운송이었다. 운송 품목은 30년이 다 된 아내의 서랍장과 책장이다.


아내는 도은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처가댁에 갈 때마다 본인이 어렸을 때 쓰던 가구들을 가져오고 싶어 했다. 여전히 예뻐 보여서 잘 쓸 수 있을 것 같고, 요새는 구하기 어려운 통원목 가구라서 오래오래 잘 쓸 수 있을 것 같단다(이미 오래되었지만). 무엇보다도 본인이 어린 시절 쓰던 가구들을 아이가 쓰면 너무 좋을 것 같단다. 그리고 마침내 오늘, 아내의 소망을 이루기 위해 홀로 여정을 떠났던 것이다.


도착하니 이미 어머니, 아버지는 서랍장과 책장을 깨끗이 닦아놓으셨고, 서랍장은 서랍을 모두 빼고 정말 나르기만 하면 되게 준비를 완료해놓으셨다. 그 덕에 밥을 먹고, 짐을 나르고 모든 준비를 마쳤음에도 채 한 시간이 흐르지 않았다. 그렇게 다시 운전석에 앉아 졸음을 참으며 두 시간을 달려 집에 와서, 아버지와 힘을 합쳐 가구들을 올려놓았다. 누구 딸 아니랄까 봐, 이미 서랍장과 책장에 들어갈 물건들을 분류해 정리해놓으신 아내는 가구가 들어오자마자 물건들을 채워 넣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거의 창고처럼 쓰던 방 하나가 도은이 놀이방으로 재탄생했다. 사실 가구를 가져올 타이밍이 지금인 것도 이제 도은이 놀이방을 만들어 줄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제법 감정표현과 의사소통에 능숙해지고 있는 도은이를 보며 책과 장난감들을 대폭 구비할 준비가 필요했다. 탈바꿈한 방을 보여주며 도은이에게 ‘이제 여기가 도은이 놀이방’이라고 알려주었더니, 신나게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구경하는 모습이 아주 보기 좋았다.


엄마가 쓰던 서랍장을 쓰게 된 도은이


도은이보다 아내는 더 신이 났다. 너무 잘 가져왔다며, 마치 처음 이사를 온 것처럼 설렌다고 했다. 그런 아내가 참 예뻤다. 오래된 가구에도 저렇게 행복하고 즐거워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게 참 예뻤고, 그게 내 아내라서 기분이 좋았다. 이런 감정을 느낄 수 있게, 아내의 오래된 가구들을 고이 잘 간직해주신 어머니, 아버지도 감사하다. 하긴, 그런 마음과 태도를 아내가 어디서 배웠겠나.


도은이도 만약 나중에 아이를 가지게 된다면, 꼭 본인이 쓰던 물건을 물려주는 게 아니더라도 이건 아는 사람이길 바란다. 오래될수록 더 아름다워지는 것들도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오늘의 도은

- 요즘 부쩍 일찍 잠드는 도은 : 항상 잠으로 고생시키던 도은이의 취침시간이 조금 빨라지긴 했지만 그래도 10시 이후였다. 그런데 이틀 전부터 10시 전에 잠이 든다. 그것도 제 발로 침대에 가서 누워서 잘 준비를 한다. 어린이집 때문에 피곤한 건지, 이제는 자고 일어나야 내일이 오고 다시 놀 수 있다는 걸 깨달아가고 있는 건지. 뭐든 간에 일찍 잠들어주는 것은 무조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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