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시누이를 따라 포틀랜드 근교의 한 **푸드팜(Food Farm)**에 다녀왔다.
얼마 전 남편을 먼저 보낸 시누이는, 주변 지인의 소개로 이곳을 알게 되었고
그 후로는 거의 식료품을 사지 않고,
2주에 한 번 이 푸드팜을 찾아 생활에 필요한 음식과 생필품을 받아오고 있다.
은퇴 이후 수입이 줄어든 시누이에게는
더없이 실용적인 도움처였다.
놀라웠던 건, 이곳이 조건 없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는 점이었다.
이름과 주소만 적으면 신청서에 체크한 물품 대부분을
무상으로 받아갈 수 있다.
이렇게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는 방식이 가능하다는 사실이
감동적이었다.
포틀랜드는 은퇴자들에게 ‘천국’이라 불릴 만큼
소비세가 없고, 의료보험 가입자에게는
3개월마다 정기적으로 약을 다 갈 수 있는 제도까지 갖추고 있다.
그날 나는 이 푸드팜에서 특별한 한 사람을 만났다.
그녀의 이름은 알렉스.
알렉스는 사회복지사로 일하고 있었고,
어릴 적 한국에서 입양되어 지금은
양부모님과 딸과 함께 이곳 포틀랜드에서 살고 있다.
처음에는 조용히 봉사활동을 하던 그녀였지만,
내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고는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저… 한국말은 못 하지만, 조금 읽을 수는 있어요.”
그녀는 한국어를 배우고 싶다며 눈을 반짝였다.
딸도 케이팝을 좋아해서 한국에 대한 관심이 많다고 했다.
그녀는 자신의 뿌리를 찾기 위해 한국을 세 번이나 방문했다고 한다.
비록 부모님을 직접 만나진 못했지만,
자신을 기억하는 사람을 만났다고 했다.
그리고 언젠가는 부모님을 꼭 만나게 되기를 바란다고,
그날의 소망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알렉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해외 입양인의 고단한 내면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그들에게 한국은,
자신을 떠난 나라이자,
언제나 그리운 고향이다.
분노와 애틋함, 그 이중적인 감정의 틈새에서
그들은 여전히 뿌리를 찾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간절히 바랐다.
언젠가는 알렉스가 진짜 부모님을 만나
자신이 ‘버려진 아이’가 아닌,
‘기억된 아이’였음을 느낄 수 있기를.
그녀의 눈빛은 그렇게,
포틀랜드의 흐린 하늘 아래서도
아주 깊고 따뜻하게 빛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