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티 미술관에서

by 엠마


오늘은 사촌 언니와 함께 LA의 명소 중 하나인 게티 미술관에 다녀왔다.

미국에 오면 누구나 한 번쯤은 들른다는 이곳은, 이름 그대로 부호 J. 폴 게티의 수집품으로 시작되었다. 그는 철도 사업으로 거대한 부를 쌓은 뒤, 미술품이라면 종류를 가리지 않고 사들였다. 그 양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지자, 결국 이를 보관하고 전시하기 위해 지금의 미술관을 세운 것이다.


게티 미술관의 규모는 압도적이었다. 하루 만에 모두 둘러본다는 건 불가능해 보일 만큼 넓었고, 그 자체가 하나의 예술작품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트램을 타고 미술관 언덕 위로 올랐다. 이 트램에도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다. 미술관 건립 당시, 맞은편의 부촌 주민들이 자동차 매연을 우려해 트램 설치를 요구했고, 흰색 건물이 싫다는 의견에 따라 외벽 색상도 아이보리 빛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멀리서도 눈에 띄는 건물은 전부 이탈리아에서 들여온 대리석으로 지어졌다. 벽돌 하나하나의 크기까지 인체공학적으로 설계되어, 사람이 가장 편안함을 느끼는 사이즈로 제작되었다고 한다. 호기심 많은 우리 딸이 직접 손으로 재어보니, 가로 세로가 네 뼘 정도였다.


미술관은 크게 전시관, 연구동, 그리고 정원으로 나눌 수 있다. 정원에는 현대적인 양철 화단에 심어진 다양한 꽃들이 계절마다 피어나고, 가운데에는 미로처럼 설계된 화단이 인상적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전시관에는 고흐의 아이리스를 비롯해 시대별로 유명 화가들의 작품, 화병, 조각, 스테인드글라스 등 다양한 예술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특히 가운데 동에서는 특별전시가 열리는데, 우리가 갔을 때는 성 소수자 문화를 주제로 한 전시가 진행 중이었다.


언니는 “게티 미술관에 오기 전에 게티의 일화를 다룬 영화를 먼저 보고 오면 훨씬 재미있다”고 귀띔해 주었다. 실제로 게티는 건축에 있어서도 단순함 속에 인체공학적 철학을 담았지만, 가족에게는 냉혹했다. 손자가 유괴당했을 때도 몸값을 지불하지 않아, 결국 손자가 귀 한쪽을 잃는 사건이 벌어졌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그의 성격과 선택에는 여러 논란이 있지만, 이방인인 나조차 그의 수집품과 건축 철학이 담긴 공간 속에서 예술과 자연을 함께 즐기는 혜택을 누릴 수 있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게티의 삶과 철학, 그리고 그가 남긴 미술관은 오늘 나에게 오래도록 기억될 한 장면을 선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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