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의 LA 마지막 밤

― 이방인의 시간, 그리고 자비명상의 위로

by 엠마


LA에서의 마지막 밤, 가까운 친지들과의 저녁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각자의 길로 향하기로 했다. 나는 딸과 함께 샌프란시스코로, 시누이와 조카는 샌디에이고로 향하는 길. 잠시 헤어지기 전, 사촌조카티파니와 나는 로톤도 비치 인근의 숙소를 예약해 마지막 하룻밤을 보내기로 했다.


짐을 정리하고 나른한 피로가 몸에 스며들 무렵, 티파니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숙모, 저 자비명상 한번 해보고 싶어요.”


티파니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미국에서 유학 생활을 해왔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긴 이국 생활이 그녀를 외롭고 단단하게 만들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조용히 음악을 틀고 간단한 호흡 명상을 함께했다. 그녀는 금세 따라왔고, 명상이 끝난 후 “마음이 따뜻해졌어요”라고 말했다. 그 말 한마디가 얼마나 소중했던지.


그러나 밤은 그렇게 평온하게 지나가지 않았다.


우리가 잠자리에 들려던 찰나, 옆방에서 요란한 음악 소리와 사람들의 고성이 들려왔다. 처음엔 단순한 파티인가 싶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소란은 점점 심해졌다. 은주는 “하룻밤이니 참을 수 있어요”라고 말했지만, 고모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을 이었다.

“저렇게 시끄럽고 마리화나 냄새까지 나는데, 혹시 담배꽁초를 던져 화재라도 나면 어쩌려고…”


환기구를 통해 은은하게 퍼져오는 마리화나의 냄새는 점점 더 진해졌다. 고모는 혹시 몰라 비상구가 어디 있는지 확인하며 ‘대비’를 했다.

“후기 보고 예약했는데 이렇게 무서울 줄은 몰랐네…”

그 말에 나도 속이 상했다. 미국에서의 좋은 추억으로 남길 바랐던 LA의 마지막 밤이, 이렇게 공포로 덮여가고 있었다.


결국 모두 자리에 누웠지만, 누구 하나 깊이 잠들 수 없었다.


그때였다.

복도에서 조용히 들려오던 발걸음 소리, 누군가 프런트에 항의한 듯 옆방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open the door.”

그리고 이어진 낮고 격앙된 목소리,

“I’m sorry… I’m really sorry…”


누군가의 울음 섞인 사과가 벽을 타고 들려왔다.

누군가 우리를 대신해 용기를 내주었다. 새벽 4시가 넘어서야 모든 소란이 가라앉았다.


그 밤, 우리는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한국이라면 단호하게 항의했을지도 모를 일이, 이곳에서는 그저 조용히 숨을 죽이고 버텨야 하는 시간이 되었다. 이국의 땅에서 느낀 낯선 긴장감, 그리고 나를 보호해 주는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을 때의 무력감.


그러나 동시에 나는 생각했다.

한국이라는 나라가, 내가 살아온 그 땅이 얼마나 안전하고 따뜻한지를 새삼 느끼게 된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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