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곤 실레에게 플러팅 당하다

by 엠마


어느 날, 우연히 마주친 한 남자의 그림.

그는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눈빛이 묘하게 깊었다. 비어 있으면서도, 무언가를 건네는 듯했다.

그림 아래 이름을 봤다. 에곤 실레(Egon Schiele).


그날 이후, 나는 그의 그림을 찾아보고, 그의 삶을 뒤쫓기 시작했다.

처음엔 화려한 색도, 정교한 기교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나 곧 알게 되었다.

그의 작업은 절규처럼 조용했고,

벗어냄으로써 더 깊이 존재를 드러내는 그림들이었다는 걸.


그는 거침없이 자신을 그렸다.

헐벗은 육체, 구불구불한 선, 왜곡된 자세.

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노출이 아니었다.

그 안에는 인간의 무상함과 욕망, 그리고 자기 존재에 대한 절실한 물음이 있었다.


그의 그림은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색채를 썼지만,

그 무심한 색 위로 흐르는 감정의 결은 너무도 선명했다.

그는 더 칠하지 않아도 될 자리를 정확히 알고 있었고,

때론 그 여백이 말보다 많은 것을 전했다.


상담자로 살아온 나에게, 실레의 삶은 묘한 울림으로 다가왔다.

그의 어린 시절, 결핍된 가족애, 그리고 치열하게 자신을 표현하려 했던 시간들.

그의 그림을 통해 나는 다시 한번 질문하게 된다.

내가 겪은 상실과 돌봄의 경험들이 지금의 나를 어떻게 만들었는가.


무엇보다, 나는 실레의 자기 사랑의 시선에 끌렸다.

그는 누구보다 자신을 응시했고,

지독하게 외롭고도 아름답게 자신을 끌어안았다.


아마도 그 눈빛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의 초상 하나가

나 역시 나를 이렇게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용기를 주었다.


어쩌면, 나는 실레에게

잠시 플러팅을 당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의 그림이 나를 데려다 놓은 자리는

타인의 눈에 비친 내가 아닌,

내가 나를 바라보는 가장 솔직한 자리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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