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배를 지나 다시, 나에게로

— 템플스테이에서 만난 나의 쉼

by 엠마


복잡한 마음을 덜어내고자

친구와 함께 경기 인근 템플스테이를 다녀왔다.


사실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예전 보성 대원사에서의 좋은 기억 덕분에,

우리는 고민 없이 이번 여행지도 대광사 템플스테이로 정했다.


다만 하나,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108배.

이건 조금 무리다 싶어

미리 말씀드리고 건너뛸 요량으로 등록했다.


하지만, 막상 도착하자마자

웅장한 대웅전의 숭고한 분위기에 압도되고 말았다.

맑은 날씨와 고요한 공기,

현대식 북카페 ‘가비지안’의 여유로운 분위기,

대광사 소개와 명상 이론 강의까지—

마음은 점점 ‘쉼’이라는 감각에 젖어들기 시작했다.


스님과 함께 차를 나눈 후,

우리는 대웅전 앞 계단에 앉아 노을을 기다렸다.

비록 노을은 끝내 만나지 못했지만,

기다리는 그 시간이 그대로 쉼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그 고요한 순간.


그리고 마침내,

피하고 싶던 108배의 시간이 찾아왔다.


진행 선생님의 능숙한 안내와

내 앞에 선 고등학생들의 리드미컬한 절 수행에

나도 모르게 빠져들어 따라 하다 보니,

어느새 108배를 마쳤다.


“이게 바로 집단의 힘이구나.”


다 마친 후엔 계단을 내려오며

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마치 중풍 환자처럼 천천히 발을 내딛었다.

그만큼 내 몸도 마음도,

그 시간 속에 함께 들어 있었던 것이다.


이튿날 새벽예불, 동작 명상 등

프로그램을 차례로 마치고 나니

머릿속에 꽉 차 있던 생각들이

지우개처럼 사라져 있었다.


성과도, 결과도 없는 여행.

하지만 그 안에서

나는 가장 나다운 쉼을 만났다.

비워낸 것보다,

비워낸 후의 고요가 더 진하게 남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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