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에 대하여

by 엠마


얼마 전, 학회지에 논문을 투고했다가 적잖이 당황스러운 일을 겪었다.

심사는 블라인드로 진행되었고, 결과는 ‘게재 불가’.

그 자체만으로도 연구자로서는 충분히 아픈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가슴을 아프게 했던 건,

심사 과정에서 꼭 하지 않아도 될 말들,

심장을 정통으로 찌르는 표현들이 던져졌다는 사실이다.

비판이 아닌 비난, 조언이 아닌 조롱.

심사라는 이름 아래,

자신의 지위를 과시하는 듯한 언행들이 버젓이 자리하고 있었다.


학문적 심사의 본질은 평가 이전에 양질의 피드백을 통한 성장과 상호 존중에 있다.

우리는 단지 논문을 심사받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을 통해 연구자로서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싶어

심사비를 지불하고, 시간과 노력을 바쳐 그 문을 두드리는 것이다.


그렇기에 심사는 단순한 통과 여부를 떠나

‘격’ 있는 태도와 언어를 통해 서로를 성장시키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진짜 교육이고,

프로페셔널 세계가 갖춰야 할 최소한의 품격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의견의 차이는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표현의 방식에는 늘 선택이 따른다.

날카롭되 예의 있게,

단호하되 존중이 담긴 말은

비판의 기능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사람의 마음을 무너뜨리지 않는다.


되짚어보면,

이런 경험은 단지 학문 공동체만의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지위’는 권한으로 착각되고, ‘권위’는 우위로 소비되며,

진정한 **격(格)**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진짜 격은 높은 자리에 앉았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보다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을 대하는 말과 태도에서 드러나는 법이다.

그리고 그런 격 있는 태도는

사회를 더 건강하게, 학문을 더 진지하게,

사람을 더 사람답게 만든다.


나는 여전히 연구자로 성장하고 싶은 사람이고,

나 역시 누군가의 글을 마주하게 될 때

그 사람을 살리는 말, 존중이 깃든 피드백을 전하는 사람이고 싶다.


격은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쌓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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