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자연이 너를 너답게 이끌 것이다

by 엠마

학회에 제출할 원고를 마치고 나니

여러 감정이 뒤섞인다.

그간 쏟아부은 에너지,

심지어 링거까지 맞아가며 버텨낸 시간이 종이 몇 장 위에 담겼다.

남들이 보면 작은 결과물일지 몰라도

나에겐 크고 묵직한 조각이다.

그냥 열심히 살았다.

살다 보니 어떻게든 살아졌고,

그러다 보니 언젠가부터 ‘나’는 없었다.

그 무명함의 시절에

자기 자비가 조용히 내게 다가왔다.

누구보다 날 먼저 알아봐 주고,

말없이 내 등에 등을 기대게 해 주던 존재.

그때 나는 처음 알았다.

“아, 휩쓸리지 않고도 살 수 있구나.”

무언가를 증명하려고,

결과를 만들려고,

삶을 끌고 가려던 손을 놓고 나니

비로소 나답게 숨 쉴 수 있었다.

지금 이 글을 제출하며 나는 안다.

결과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좋아서 썼고, 내가 나에게 진실했으면 그걸로 족하다.

오늘 밤은 그냥 자야겠다.

무척 부족했던 잠도, 마음도

조금은 회복할 시간이다.

내가 나를 밀어붙이지 않아도

삶은 알아서 흐르고,

자연은 결국 나를, 나답게 이끌 것이라는 믿음을 다시 떠올려본다.

“하지 않음으로써 모든 것을 이룬다.

억지로 인생을 끌고 가지 말고, 흐름을 따르라.

자연이 너를 너답게 이끌 것이다.”

— 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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