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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래하는얼룩말 Dec 03. 2021

기다려봐, 꼭 완성 시켜 줄게!

달고나로 보여준 부모님의 끈기 

축하해

아주 조심 조심히 뜯더니 성공했다! 암! 축하할 일이고 말고~


이게 뭐라고 아침에 깨우지도 않았는데 번뜩 일어나 어제 만들었던 하트 달고나를 찾는다. 

내일 아침에 잘 굳으면 떼어낼 거라고 잘 챙기라고 신신당부를 하더니, 

눈뜨자마자 찾아댄다. 눈곱도 떼지 않고 하트 모양을 뽑기 시작한다. 


작은 삐약이것이 보이질 않아 어디 있나 찾아봤더니, 

왜 냉동실에 있는 거니? ㅋㅋㅋㅋㅋㅋ

그래도 저 나름대로 청결을 유지한다고 랩까지 깔았더랬다. 

그 모습이 귀엽고 앙증맞아 사진을 찍었는데 냉동실의 향이 달고나에 베지 않았을까 염려된다. 


몇 번의 시도 끝에 하트 모양이라고 나왔더니 환호하고 난리다. 

아놔 밤 열한 시 이십 분이다. 

장장 한 시간 반을 달고나에 매달렸다. 애들 재울 생각은 하지도 않고 

몇 번을 시도했는지도 모르겠다. 생각보다 모양은 나오지 않고, 

모양은 둘째치고 잘 눌러지기라도 하면 좋겠구먼 눌어붙고 으스러지고 난리도 아니다. 


"엄마 그거 아니잖아요" "이렇게 이렇게 " 하며 만드는 시늉을 하는 둘째 녀석이 얄미워 지기까지 했다. 

그래도 그 와중에 우리 큰 삐약이는 

"엄마, 아빠도 연습하셔야지, 좀 기다려"라고 해주는 덕에 힘을 얻어 다시 해볼 만했다. 


달고나 만들기가 이렇게 어려운 거였던가? 하며 한 번만 더! 한 번만 더!를 외치고 있었다. 

신랑이랑 나는 이젠 아이들을 위한 것도 아니다. 

각자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다. 


내가 "이리 줘봐 내가 해볼게" 하며 도구들을 뺏아 들어 열심히 녹이고 

소다까지 야무지게 뿌렸는데 

성급했던 탓일까, 휘젓고 있던 나무젓가락을 놓쳤다. 그대로 내 발가락 위로 떨어졌고, 

나는 "으악!" 하며 화장실로 뛰어갔다. 

생각지도 못했다. 설탕 녹인 물이 그렇게도 뜨거운지 알지 못했다. 

기껏해야 글루건 정도의 뜨거움 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무슨 난리냐. 나는 그 와중에도 신랑에게 녹인 설탕물을 건네며 무슨 적진에 뛰어드는 장군마냥 

"난 괜찮아, 따라나서지 마, 어서 그걸 완성시켜줘" 하며 찬물을 끼얹으러 떠났다. 

"그래, 걱정 마, 어서 찬물에 담가" 하며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일을 했다. 


다행히 부상투혼으로 일궈낸 달고나는 비록 모양은 찌그러졌지만 

그래도 하트라고 부를 만하게 모양이 나왔고, 

연이어 두 개까지 성공했다. 


그래, 이쯤이면 되었어. 

아이들과의 약속도 지켰고 나의 자존심도 지켰으니 이쯤이면 되었다. 

비록 발가락에 물집이 잡혀 나의 고통이 좀 있긴 했지만 

어차피 한 번은 만들고 가야 할 달고나였다. 


오밤중에 달고나로 시트콤을 찍고, 아이들에게 엄마 아빠의 끈기를 보여준 아주 좋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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