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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래하는얼룩말 Jan 11. 2022

문어가 뭐?

[영화] 나의 문어 선생님 / My Octopus Teache


머리 좀 식히고 싶어 가벼운 애니메이션이나 하나 봐야지 하고

넷플릭스 키즈로 로그인을 했다.

이래저래 둘러보는데 그냥 제목에 끌렸다 해도 말 다 했다.

<나의 문어 선생님?> 뭐지? 영화를 선택하게 된 계기는 호기심이 전부였다.


문어를 소재로 하는 뭔가구나 싶었지 이렇게 교훈을 주고 내 삶에 대해 한 번쯤 되돌아보게 만드는

그런 깊음이 있는 다큐멘터리 영화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랬기에 내게 주는 울림이 되려 크지 않았을까?


현재 처한 현실에 대한 회의감, 무력감에 시달리던 주인공이

예전에 바다에서 맘껏 누비던 어린 날을 떠올리며

그때는 참 좋았는데, 자유로웠는데라는 생각에 미치자 본인을 위해 어릴 때 뛰놀던 그곳으로 가

마음의 위안을 삼으려 했다.

물속에서 노닐며 어릴 때 놀았던 그곳 해초 숲으로 간다.

영상으로만 접해도 웅장한 바닷속 풍경이 펼쳐진다.


수영을 못하는 나로서도 물속에서 뭔가 자유스러움을 만끽하는 주인공이 부럽기까지 했다.

그러던 중에 뭔가 특이한 생물체를 발견했고,

그것이 문어라는 걸 알게 된 순간 호기심이 강하게 일어 이 생물체를 계속해서 만나야겠다는 스스로의 다짐을 한다.



문어의 생활상이 영상으로 나오면서, 중간중간에 크레이크 포스터 (다큐멘터리 영화감독) 이 인터뷰하는 장면이 나온다.

인터뷰하는 그의 모습은 처음에 좀 의아했다.

그저 문어의 기억을 떠올려 이야기하는 것인데

눈을 감아 회상하기도 하고, 한숨을 쉬기도 하고, 상어에게 공격당한 문어를 이야기하면서

대화를 좀처럼 이어나가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왜 겨우 문어에 대해서 이야기하는데 그는 이렇게 감정이 흔들리는 걸까? 혼자 궁금했다.


거의 일 년여 간 문어를 만나러 바다로 간다.

점차 내가 알던 문어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그 문어가 신기하고 궁금해

닥치는 대로 논문을 읽었다는 크레이그, 그 덕에 그는 문어에 대해서 모르는 게 없을 정도였다.

나는 문어가 사람과 교류를 할 수 있을 거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다.

크레이그가 반가웠는지 경계를 풀었던 그 문어가 주인공에게 달려들듯이 안기는 걸 보고

괜한 마음 찡함을 느껴 이건 뭐지? 했다.

사람이라고 다 무서워 하기는커녕, 저와 신뢰를 쌓은 대상이라면 그렇게 마음을 놓을 수 있는 거구나 싶으니 사람과 동물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걸 느끼게 된다.

크레이그와 교류하는 문어의 모습, 강아지와 고양이를 연상시킨다




상어에게 다리가 뜯겨 며칠간 식음을 전폐하고 뜯어나간 자리에 새로운 다리를 재생하는데 온 힘을 쏟는 문어를 보고는 나도 마음이 아팠다.

하얗게 질려서는 눈도 작게 뜨고 굴에서 나오질 않았다.

며칠이 지나고 나서 아주 작게 보이는 재생된 문어의 다리를 보니, 절로 안심이 되고 참 잘했다 하며 칭찬하고 있었다.


상어에게 공격당해 온 힘을 쏟아 뜯어진 다리를 재생시키는 문어



물 안에서 만난 주인공이 반가워 쫓아 나오던 문어를 보니,

강아지인가 고양이 인가 싶어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다.

크레이그를 보고 쫓아다니는 문어



문어는 본래 변신의 귀재다.

워낙에 피부도 약한 연체동물이다 보니, 다른 생물체보다 본인을 보호하기 위해

더 강력한 무언가가 있어야 했다. 그것이 바로 변신술이다.

변신을 하고 있는 문어를 보고 있노라면 경이롭다는 말 밖에 나오질 않는다.


바닷속을 굴러다니는 해초를 따라 하는 문어



색상뿐 아니라 질감 모양까지도 흉내 내는 문어 / 각자 움직이는 2000개의 빨판을 이용해 조개껍질과 돌로 위장하기도 한다.



문어는 짝짓기 하는 그 순간만 제외하고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홀로 생활하는 동물이다.

그런 문어가 누가 알려주지도 않고 오롯이 그저 살아남기 위해 변신이라는 방법을 고안해 낸 것이라 생각하니, 그것 또한 짠했다.

그럴 리 없겠지만 문어는 외롭지 않았을까? 하며 나도 모르게 문어에게 감정이 이입되더라

짝짓기를 끝내고 난 뒤, 먹이사냥도 없이 오롯이 알 돌보기에만 전념하고 있는 문어를 보자니

같은 어미로서 마음이 아팠다.


아무리 자연의 섭리라고 할지라도 내 몸을 희생하며 새끼를 돌보는 그 마음은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

요즘 접하고 있는 뉴스들을 보고 있자면 인간보다 낫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문어는 그렇게 부화시기에 맞춰 생을 마감한다.

알 돌보기를 끝낸 문어는 핏기는 하나도 없고, 말 그대로 초췌해져서는 유령처럼 변한다.

흔들리는 바닷물에 이끌려 굴 밖으로 나오게 된 문어는


말 그대로 바다 동물들의 먹이가 되어 버리고 만다.

작은 물고기, 불가사리, 마지막에는 상어까지 한입에 물고 가버린다.

그 장면을 회상하며 크레이그는 이야기한다.

문어를 보고 가서 안아주고 싶었지만 참았습니다.

그도 알고 있었다. 이것이 자연이고 이것이 문어가 세상에 태어나 할 일이라고.


작은 물고기에 뜯기는 문어, 상어가 한입에 문어를 물고 떠난다.




문어는 아주 희박한 확률을 뚫고 성체가 된다.

수컷을 만나 짝짓기를 하고 알을 품어 부화시키는 건

문어가 탄생한 이래, 가장 큰 업무일 텐데 그것을 수행해 내었다는 것은

대견하다고 자랑스럽다고 이야기할 만하다.


둘은 결국 마지막 인사라는 것을 나누지도 못한 채 그렇게 이별을 하게 된다.

그래도 위안이 되었던 건, 문어가 무엇인가에 의해 사냥을 당한 것이 아니라,

제 할 일을 마치고 자연사했다는 거다.

물어뜯겨 죽진 않을까 늘 걱정했던 크레이그도 그것은 나와 같은 생각이 아닐까 싶다.

또, 아들과 바다로 나가 바닷속을 탐험하던 중, 아주아주 작은 문어를 발견했다는 거다.

발견 시기로 봤을 때, 이 문어는 그때의 그 암컷 문어가 부화시켰던 그 생명체가 맞을 거다.



자연에게 자신의 마음을 맡겨 치유하려 했던 크레이그는 목적 달성을 했고, 그것을 넘어서

자연의 경이로움,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까지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내게 닥친 고난이 역경이 문어의 다리가 뜯겨 나가는 것만큼 할까?

그저 그 상처를 돌보고 아물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주어야 회복이 된다는 것을

문어를 통해 깨닫게 되었다.

가볍게 시작했던 이 영화가 내게 주는 의미가 생각보다 커서, 나를 돌이켜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고마웠다. 이 영화를 제작해 준 크레이그에게,

또 고마웠다 크레이그에게 자극을 주어 그가, 내가 무언가를 깨달을 수 있게 해준 문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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