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빨래하는얼룩말 Jan 17. 2022

매운 바다에서 잡아오셨잖아

작은 삐약이의 생각

"엄마 할머니가 매운 꽃게 주시잖아

그거 진짜 맛있잖아."


양념게장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이다.


우리 엄마표만 먹는다 나는 

간장게장도 맛있는 거 모르겠고, 양념게장만 내 입맛에 똑 맞아 아주 좋아하는데

그것도 엄마가 해주시는 거 아니면 입에 대지도 않는 아주 환장할 입맛을 가졌다. 

감사하게도 엄마는 딸내미의 그 환장할 입맛을 잘 아시곤, 

기회만 되면 가득가득 싸주시기 바쁘다.  


냉장고에 고이 두고 있으면 그 자태에 넋이 나가

나도 모르게 쌀을 씻고 있다.

얼른 밥은 안친다.

양념게장은 별거 없다. 하이햔흰 쌀밥이 반찬이다..


밥을 먹으려고 게장을 꺼내는 게 아니라. 게장을 먹으려고 밥을 한다.

우선순위는 게장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작은 삐약이는 내가 빠알간 게장을 꺼내

새 하얀 반짝반짝 빛나는 밥에 몇 숟가락 퍼서 떠먹고 있으면


어느새 내 곁으로 와 아기 새 처럼 입을 벌리며 내게 게장 살을 달라 삐약 삐약 거린다.


다섯 살 아직 어리니 날것은 먹이지 말자고 신랑하고 이야기했는데

워낙 잘 먹는 모습에 자꾸 몰래몰래 주게 된다.


매운기 없는 게 저 안쪽 살을 발라 신랑이 보지 못하도록 얼른얼른 퍼서 먹여준다.

그럼 나를 보며 찡긋 하며 '엄마 진짜 맛있다 그렇지?' 하며 온갖 애교를 피우는데


초콜릿도 아니고 게장 애교라니 말 다 했다.

그러더니 한 날은,


"엄마, 할머니가 만든 매운 게장 먹고 싶다."


"그래? 그럼 우리 할머니한테 해달랄까?" 했더니 우리 삐약이,


"그럼 할머니 바다 가야 하잖아" 한다.


"그게 무슨 말이야?"


"할머니 그거 매운 바다에서 잡아오는 거야. 할머니가 만드는 게 아니고.

 엄마는 그것도 몰랐어?

 빨간 바다에 고춧가루가 뿌려져 있거든 꽃게들은 거기에서 놀고 있어

그럼 할머니가 그 게를 잡아서 죽여

그런 다음에 우리 주시는 거야. 엄마는 그것도 몰랐어?"


하며 호기롭게 내게 설명하는 당당한 모습은 솔직히 웃겼다.


"헤액?? 정말? 엄마는 하나도 몰랐지 , 진영이는 어떻게 알았어?" 하며 야단법석 요란하게 하니,

나의 리액션에 더욱 신이 났는지 나아가 꽃게 흉내까지 낸다.


"꽃게가 매운 바다에서 헤엄 지고 있거든 이렇게 모랫속에도 들어가"


양손을 머리 위로 번쩍 들고 손가락 가위 모양을 하고  입으로는 '집게 집게' 하면서

옆으로 뒤뚱 거리며 집을 돌아다닌다.


"모랫속에도 들어가.

 그렇게 놀다가 할머니한테 잡히는 거야."


나는 꽃게가 고춧가루 바다에서 놀면 진짜 따갑겠다 싶겠다가도

우리 엄마가 진짜 매운 바다에서 잡아온다면 어디 미안해 게장 해달라고 하겠나 싶었다.

나는 졸지에 할머니가 얼마나 힘들게 양념게장을 해주시는지도 모르는 못난 딸이 되어 있었다.



진영아 미안하지만


엄만 할머니가 매운 바다에서 힘드게 게를 잡아서 우리에게 매운 게를 주시는 거라고 해도

할머니가 잡아온 것만 먹을 거야


다른 건 맛없어.


매거진의 이전글 그래서 엄마가 하늘만 보게 되었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