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만 앓았을 뿐, 왜 편하지?
나는 2월 말에 확진 판정을 받은지라, 본의 아니게 온 가족이 집에서 격리 생활을 해야만 했다.
나는 안방 문 까지 걸어 잠그며, 일주일간 아예 안방 밖을 나서지 않겠노라 마음을 먹고,
안방 생활을 단단히 채비하기 시작했다.
세컨드 화장실이 좁은 편이라 정말 급한 용무를 제외하고는 사용한 적이 없는 곳인데
반 창고로 사용했던 안방의 화장실의 짐을 싹 빼는 작업을 했다.
아예 노트북, 탭, 더 필요한 것이 없을 정도로 물건을 챙기고 입실을 했다.
내 새끼들이 너무 보고 싶었던 첫날을 뒤로하고,
나는 점차, 홀로 안방 생활을 하는 것에 적응이 되기 시작했다.
한 이틀을 앓은 후, 그것도 종합감기약과 타이레놀로 잘 이겨 낼 수 있었다.
나는 정상 컨디션으로 차차 돌아오기 시작했는데
미비하게나 미각을 잠시 잃었을 뿐이었다.
그토록 좋아했던 사또밥의 맛이 느껴지지 않은 것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잠깐 미각을 잃는 경험을 하면서
나는 '아, 미각을 잃는 게 이런 거구나, 삶의 낙이라는 게 사실을 별거가 아니구나' 하며
어서 빨리 미각이 돌아오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 점만 제외하고는, 베란다를 통해 제때 밥을 넣어주는 신랑이 있었고,
나는 그것을 잘 먹고, 잘 정리해서 밖으로 빼두면 되었다.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그것도 밖으로 빼두면 되었고,
수건과 필요한 물품을 이야기하면 신랑이 안방 베란다로 챙겨 주었다.
이거 왜 괜찮지? 왜 좋지?
일단 집안일에서 벗어났다는 사실 만으로도 나는 이미 편했고,
방해 요소 없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뭔가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기까지 했다.
아이들을 보지는 못했지만 거실에서 뛰어다니고 노는 소리를 들으니, 그것도 나름 괜찮았다.
밖에서 고군분투하는 신랑에게는 미안했지만 나는 나쁘지 않았다.
그간 밀렸던 강의와 독서, 보고 싶었던 영화를 신나게 보니
하루라는 시간이 이렇게 짧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먹을 것을 잔뜩 해서 문 앞에 봐라 하며 전화를 건네주는 엄마도 계시고,
장을 한가득 봐서 문 앞에 걸어주고 가는 동생도,
커피 먹고 싶을 까 봐 배민으로 불러뒀어 하는 사촌 언니와
너도 먹고 애들도 먹이라고 현관 문고리에 간식을 넣어주고 가는 이웃집 언니 등등
많은 이들의 응원을 받으며 나는 따뜻한 확진 생활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