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빨래하는얼룩말 Apr 17. 2022

라이스페이퍼가 어디로 갔지?

내 머릿속의 지우개

정신이 나갔는지, 그냥 바보가 된 건지 알 수가 없다. 


오랜만에 월남쌈이나 해 먹을까 하며, 

제부가 선물해 주신 소중한 샤부샤부 밀키트를 준비하고, 

집에 있는 각종 야채 잘게 채 썰어다가 가지런히 준비해 두었다. 

벌써 군침이 돌고 기분이 좋아졌다. 


코로나를 앓고 있던 우리 집 큰 삐약이는 잠이 들어, 

(뭐 이미, 작은 삐약이를 시작으로 우리는 한 명씩 한 명씩 확진받기 시작했다)

아이가 먹을 것만 조금 덜어 두고, 

열심히 쌈을 싸 먹는데, 

오랜만에 먹어서 그런가, 너무 맛이 있어서 뭐 정신 못 차리고 계속 먹고 있었다. 

먹는 중에 라이스페이퍼가 똑 떨어져 마트도 한번 다녀오고, 

아무튼, 그만큼 맛이 있어서 열심히 먹었다.


신나게 한바탕 먹고 난 뒤에, 

좀 치워두고, 나중에 큰 삐약이가 깨어나면 다시 차려줄 생각에 

남은 라이스페이퍼는 지퍼팩에 넣어 잘 보관하고, 

나머지 식기류를 정리 하기 시작했다. 


한 열 시쯤 되니, 기운을 차렸는지 

큰 삐약이가 기상했다. 

'엄마, 나 월남쌈 먹고 싶어요.' 하길래, 그래 하며 얼른 일어나 아까 챙겨 두었던 

야채들과 닭가슴살을 막 준비하고 있는데, 

그때, 바로 그 찰나, 

안 보인다. 안 보인다. 라이스페이퍼가 안 보인다. 

웬 낭패냐. 이거 


우리 큰 삐약이 먹고 싶은 거 챙겨 줘야 하는데, 

어디로 갔니 

찬장과 라면 보관하는 곳, 냉장고, 냉동실 온갖 수납공간은 다 열어재꼈는데 

없다. 없다. 안 보인다. 


혹시 몰라 분리수거하는 곳까지, 휴지통까지 다 뒤졌는데, 

없다. 

같은 곳을 최소 세 번씩은 다 뒤졌는데 없다. 


이제 슬슬 기분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라이스페이퍼를 새로 사면 되지 라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게 뭔데 기억이 나질 않는다는 말이냐. 

지퍼팩을 야무지게 똑똑 소리 나게 밀폐시킨 기억까지 나는데, 

행방이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우리 큰 삐약이는 결국 월남쌈을 먹지 못했고, 

나는 기분이 처졌다.

우리 신랑까지 가세해 열심히 뒤져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럴 수도 있어, 괜찮아 라며 위로하는 신랑의 말은 들리지 않았다. 

정신없다 없다 하기로서니,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내일이면 생각날 거야 하며 내 마음을 달랬지만 

예상을 빗 나갔고, 

일주일 후에 찬장을 뒤지다가 나타났다. 

내 라이스페이퍼 

아 억울하다 나와 내 신랑이 저곳만 열번 넘게 열어 살펴보았는데, 


매거진의 이전글 왜 편하지? 왜 좋지? (코로나 2월 27일의 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