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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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AMBY




엄마는 집으로 돌아왔다.


아빠와 나는 며칠의 휴가를 마치고 회사로 돌아갔다.


우리가 없는 동안 엄마는 홀로 소파에 누워 하루를 보낸다.

아직은 편안히 걸을 수 없어 휠체어를 타고 화장실을 가거나

이동 보조기구를 이용해 느리게 몸을 옮긴다.

그녀의 하루가 어떠한 생각으로 흘러가는지 알 길이 없다.


매일의 출근과 퇴근이 전보다 일정해지고,

퇴근 후의 생활은 집안일을 정리하고 식사를 마련하는 것으로 채워진다.

순간순간이 급하고, 중간중간 끼어드는 생각들이 지겨워

나의 하루는 삭제되듯 흘러간다.

수정의 인사도, 팀장님의 지친 하소연도,

가득 쌓인 엑셀과 한글파일들이

그저 스팸메일 함에 쌓여가는 광고처럼 느껴진다.


나는 죽음이라는 거인 앞에서 매일 엎드려 빈다.

투병이라는 말보다 죽음이라는 단어를 선택한 나는

희망, 의지, 미래 같은 개념을 생각하지 못한다.


이런 때는 은정이 필요하다.

아빠를 10년 전에 먼저 보낸,

엄마의 남자친구를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사람.


은정과 매운 족발을 뜯으며 나란히 TV쇼를 본다.

나를 위한 수면제와 엄마를 위한 항암식품을 함께 소개하는

은정의 목소리를 들으며 매운 기운을 달랜다.

그녀의 연애는 시들하게 마무리되었고 예지의 전남친이었던 남자는

지방으로 갔다고 했다.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서.


은정은 전남편이 이혼 직후에 싸이월드에 올렸던 기념일 케이크를 언급하며

너에게 2달 만에 여자가 생긴 것은 이해해 줄만 하다는 변론을 한다.


서글프지만 경험자의 위로는 효과가 좋다.

어린아이들을 두고 시한부를 사는 젊은 여자,

각고의 어려움을 딛고 겨우 성공의 길에 접어들었으나 사망선고를 받는 남자.

이런 사연들을 찾아 읽으며 상대적 위안을 느낀다.

상대적 안도감이란 참 볼품이 없다.

비겁하고 염치없는 나는 은정의 가식 없는 삶을 보며 위로받는다.


은정은 족발을 잡았던 손가락을 빨면서 말한다.

“야, 그래도 넌 이혼은 아니잖아. 엄마도 아직 안 죽었고.”

은정은 옆에 놓인 맥주를 한 모금 마신 후

다시 TV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캔에 아직 물방울이 남아있다.


그녀를 가만히 바라본다.

은정이 TV에 눈을 고정한 채 웃는다.

소리 내어 깔깔깔.

“야 저것 좀 봐.”

그녀는 손등을 위로 향하도록 펼쳐 손가락 다섯 개를 위아래로 팔랑 인다.

“그냥 생각하지 마. 먹고 웃어. 네가 그런다고 아무것도 안 바껴.”

그리고는 다시 족발을 집어든다.


그런다고 안 바껴.

그래

나는 지금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고작 내일 점심메뉴를 바꾸는 정도.


고개를 돌려 화면을 본다.

엉성한 남자들이 엉성한 이야기를 한다.

때로 우습고 때로 안쓰러운 그들의 이야기는

결국 삶에 대한 이야기다.

뭔가 잘 안 되는 이야기.

그럼에도 살아내려는 자의 자세로

그들은 은정을 웃게 한다.


살아보려는 자들이 만든 웃음은 은정을 거쳐 나에게로 전해진다.

은정의 웃음소리가 거실에 울린다.


듣기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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