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좋은 것도 많다.3
주말을 끼워 아이들과 여행을 다녀왔다.
소도시 여행이었다.
미국은 뉴욕. LA. 시카고. 시애틀. 같은 대도시들도 멋지고 볼거리가 많지만
진짜 찐 매력은 소도시에 가면 느낄 수 있다.
아무래도 광대한 땅에 제각각의 기후와 토양을 누리면서
행정적으로는 주정부가 각자 역사와 개성을 지향하다 보니
작은 도시에 가면 저마다의 분위기와 자부심이 남달라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번 여행은 단풍이 예쁘다는 동네로 향했는데
도착한 시간이 이미 늦은 오후라 산이나 들로는 못가고
짐을 풀고 곧장 다운타운으로 향했다.
현지인 맛집으로 추천받은 햄버거 가게에서
두툼한 버거와 프렌치프라이로
주린 배를 채우고
어슬렁거리며 동네를 배회했다.
동네 사람들이 다 모인다는 공원 근처에 다다랐을 때
거대한 인파와 마주했다.
사람들이 조금씩 모여든다는 느낌을 받긴 했지만
순식간에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거리를 메우고
행진을 했다.
저마다 손에 직접 쓴 것처럼 보이는 피켓을 들고
다 함께 노래에 가까운 구호를 외치며
웃고 떠들며 길을 걸었다.
아이들도 있었고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있었다.
모두가 노래를 부르듯 구호를 외치며 거리를 가득 메웠다.
"No Kings since 1776"
화난 차량들은 요란한 경적소리를 울려댔고
소음과 인파에 짜증을 내며 지나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처음에 아이들은 작년 여름 런던 시내에서 만났던
채식주의 집회라고 주장했다.
치킨 분장을 한 인형들이 무리 속에 있었기 때문이다.
노을이 내려앉는 작은 도시의 중심가에
치킨과 멍멍이. 어른과 아이.
얼굴 여러 곳에 구멍을 뚫은 젊은이와 단정한 할머니가
하나의 구호를 외치며 걷는 모습은
외국인 여행자의 눈에 작은 페스티벌처럼 보였다.
외신들이 그 추운 겨울에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온
한국의 가족들을 취재할 때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을까 싶었다.
자유가 무엇인가.
근본적인 질문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민주주의가 뭐길래.
남녀노소, 어른아이 할 것 없이
기꺼이 거리로 불러내는 건가.
인간의 선함은 어떤 제도 위에서 극대화될 수 있는가.
우르르 몰려가 죄지은 자에게 돌을 던지고
나보다 잘 나가는 놈에게는 부두인형 만들어 저주를 퍼붓고
나와 다르면 다 나쁜 놈이라 손가락질하는 우리에게도.
가끔은
연민과 관용이 있음을 깨닫게 할 수 있는,
그런 환경이 있긴 한 건가.
배도 좀 부르고
내일에 대한 걱정도 안 들고
내걸 좀 나눠줘도 덜 아까운
그런 최적의 순간이 있긴 한 걸까.
그런 파레토 최적의 순간이 되어야
우리 인간은 비로소
관용이니 포용이니 미래와 통합 같은 소리를 해댈 수 있는 걸까.
아이들과 거리 행렬에 묻혀 걸으면서
나는 외국인인데 여기서 연행되면 추방되는 거 아냐?
이런 생각을 해대던 한국인 아줌마는
그날 밤 반성문을 썼다.
미국인들에게 민주주의는 어쩌면
산소처럼 자연스럽게 주어진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운 좋게도 제임스 매디슨 할아버지가 첨부터 헌법을 잘 만들어 줘서.
민주주의 역사가 긴 영국 같은 나라의 식민지였기에.
조지 워싱컨. 토머스 제퍼슨 할아버지가 독립전쟁도 이겨주시고. 선언문도 멋들어지게 작성해 주셔서.
노예제 덕분에 한없는 풍요 위에 지어진 자본주의의 천국이니까.
지정학적으로도 신의 은총을 몰빵으로 받은 금수저들이라서.
그들의 자유와 평등은 참으로 쉬운 것이라 여겼던 거 같다.
굶주리고 빼앗기고
애원하고 유린당한 역사 위에
또다시 피 흘리고 즈려 밟혀가며 얻어낸
내 나라의 자유와 평등과
그들의 그것은 무게와 밀도가 너무나 다르다고,
내심 폄하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아직도 그들의 밝고 명랑한 시위행렬을 보며
우리의 진지하고 절박한 촛불집회를 비교평가 하기도 한다.
하지만 가끔은 금수저의 민주주의에 고개를 숙일 때가 있다.
국회도서관의 문화 해설사 할머니를 만나서.
보스턴 커먼의 어느 가이드 아저씨와 대화할 때.
아이들과 함께 집회에 참석한 어떤 아빠의 피켓을 읽을 때.
이들이 얼마나 진지한지.
그리고 쿨한 조상들이 남긴 민주주의라는 유산에 얼마나 큰 자부심을 느끼는지.
학교에서 배운대로 살아보려 애쓰려는 모습이 어여삐 보여.
비웃던 입꼬리가 슬그머니 아래로 내려간다.
니 코가 석자야.
뜬 구름 잡는 소리 좀 그만해!
지금 경쟁자가 바로 꽁무니까지 쫓아왔다고.
아니 어쩌면 우리 이미 2등이야.
너 지금 그러고 있을 때가 아니라고.
도대체 뭐가 되려고 그러니.
네가 지금 그러고 있을 때야?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들.
내 머릿속에도 종종 맴도는 대사들.
그래도 뜬구름은 잡아야 한다고.
꿈도 꾸고 배 좀 고파도 된다고.
그렇게 외쳐대는 사람들이 내 이웃에 살고 있다.
몇 달 전 미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이 불안이 최고조에 달 했을 때
한통의 메일을 받았다.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가 속한 교육청에서 보낸 메일이었다.
"우리는 언제나 당신들의 아이를 지킬 것입니다."
그 짧은 한 문장이 얼마나 많은 부모들의 등을 토닥여 주었을까.
전쟁과 테러.
살육과 폭력.
차별과 증오.
배타와 고립.
나름의 이유 있는 그 많은 비극들 앞에서도
인간은 천국을 꿈꾼다.
그래서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겠다고 큰소리를 친다.
역사를 돌아보면
뜬 구름 잡는 소리 하던 아저씨들이
노예해방도 하고 달로 우주선도 보냈다.
뭐.
뒤에서는 자기 나라 이익 챙기려고 애썼겠지만
겉보기엔 적어도 K드라마 주인공처럼 달콤했다..
우리는 인간이다.
밥 말고도 중요한 게 많아서
아직 우리가 자멸하지 않고 견뎌온 거 아닐까.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톨스토이 할아버지가 오늘도 질문을 던진다.
미국인들이 집착에 가까우리만큼
부르짖는 자유와 책임이라는 가치는
국민이 왕인 세상에서 구현되는 것인가 싶다.
국민의. 국민에 의힌 국민을 위한.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