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좋은 것도 많다 4
우리 아이들은 밥을 잘 먹는다.
먹성이 좋은 편이다.
가리는 음식도 별로 없거니와
먹는 양도 적지 않다.
나는 학교 때 마비혀, 로 불렸다
무슨 음식을 주어도 음. 맛있네?라고 하는.
혀가 마비되어 독을 먹여도 음. 맛있네? 할 거라는 추론.
마비된 혀를 가진 엄마의 먹성 좋은 아이들.
뭐. 한국에서는 이건 미덕이다.
잘 먹고, 많이 먹고, 더 먹고. 싹 비우기.
적당한 체중. 지방과 근육의 조화로운 균형.
한국에서 청소년기 이하의 여자아이들에게 이런 무난한 먹성과 신체밸런스는
어른들에게 찬양의 대상이 된다.
어머. 순이는 어쩜 저렇게 밥을 잘 먹나요
아이코, 우리 영이는 밥도 잘 먹네. 쑥쑥 크거라. 옹냐옹냐.
할머니고 이웃 엄마들이고 모두 기특하다며 칭찬했다.
나는 마비혀를 가진 요리 못하는 엄마였지만
그런 미덕(?)이 아이들이 가리는 것 없이 잘 먹을 수 있게 밑거름이 되었다고 자부했다.
그런데 미국에 오고 보니
잘 먹는 것은 불편한 일이 되었다.
미국의 아이들은 생일파티에서도 음식에 관심이 별로 없다.
식어 빠진 피자를 먹고, 시판 애플 주스를 마시고,
동네 슈퍼마켓에 파는 색색깔 아이싱이 가득 올려진 그냥 그런 컵케익을 먹는다.
그렇게 먹어도 불만이 없고, 그마저도 남긴다.
초등학교에서 런치타임도 20여 분 안에 마무리된다.
대부분 대화를 나누는데 시간을 할애하고 먹는 것은 그저 덤이다.
미국의 대학도 크게 다르지 않다.
치즈와 햄이 끼워진 샌드위치. 혹은 포테이토칩 한 봉지로 끼니를 때운다.
저녁에 많이 먹는지 들여다보지 않아서 모르지만
이들은 아마 먹는 행위에 소울이 없는 듯하다.
그런 식문화, 음식에 대한 인식 그런 차이는 괜찮다.
얼마든지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
문제는 팁이다.
그 팁이라는 놈이 참 보통 아니다.
보통 기본값으로 제시되는 팁은 식사비용 + 세금의 20% 다.
만약 내가 100불어치 밥을 먹고
10%의 세금(불행히도 세금은 연방 세와 주세를 합쳐 통상 10%를 넘는다)을 합쳐
110불을 청구받으면,
거기에 팁 22불을 더해서 132불을 지불하게 된다.
밥은 100불어치를 먹었지만
실제로 132불을 내야 하는 상황.
언페어, 언리저너블. 인새인!!!! 오 크레이지!!!
라고 외치고 싶지만. 나는 품격 있는 사우스 코리안이므로,
소심하게 팁을 12~3% 정도로 지불한다.
그렇게 해서 120불을 지불한다.
물론 나의 서버는 내 앞에 팁을 쓰는
영수증을 따로 두고 다른 테이블로 떠난다.
서버가 내가 팁을 안 주는지,
5%를 주는지. 통 크게 20%를 주는지 지켜보고 있지는 않기에
그나마 나는 눈치를 보며, 12달러를 아낄 수 있다.
때로는 팁이 자동으로 부과되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땐 멋모르고 팁을 두 번 낸 적도 있으니
집으로 돌아가서 영수증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자면,
그것 참 난감하다.
그런 실수를 한 내 존재를 부정하고 싶은 순간에.
죽느냐 사느냐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서비스 제공자를 식당으로 보느냐. 서버로 보느냐.
이 철학적인 질문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내 테이블에서 상큼한 미소로 주문을 받고. 빈 물 잔을 채워주며,
떠난 후에 빈 접시를 치우기도 하는
친절과 인내. 에 대한 책임을 누가 지는가.
한국은 "손님이 왕"인 사회다.
"고객이 만족할 때까지"를 슬로건으로 내거는 나라다.
손님의 감정이 상하면 직원부터 사장까지 달려 나와 고개를 숙이고
말도 안 되는 민원을 넣고 X진상을 부려도
서비스를 제공하는 편에서는
고객님. 죄송합니다. 를 무한반복한다.
그리고 팁 같은 건 없다.
왜냐하면 식당에서의 서비스는 식당의 몫이기 때문이다.
미슐랭이 평가하듯이.
습기하나 남지 않는 화장실을 포함한
정갈한 서비스도 그 식당의 가치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좀 다르다.
서버는 마치 공유주방에서 영업하는 사장님처럼.
자신의 서비스에 대한 평가를 고객의 팁을 통해 받는다.
그래서 그들의 임금은 때로 매우 낮게 책정된다.
그 갭을 손님이 매워주니까.
팁을 안 주고 나오면 그날 저녁 내내
그 서버의 살림살이에 누를 끼쳤다는 죄책감에 시달려야 한다는 말이다.
미국에서 생활하다 보면
손님이 왕.이라는 표현이 서구사회에서 먼저 만들어진 표현이 맞나 싶다.
손님은 기다리고.
손님은 정중해야 하고.
손님은 팁도 줘야 한다.
기다린다. 미국의 손님들은.
그들의 고객과 회사의 관계는
정서적인 만족이 아니라
계약기반으로 만들어진 교환의 개념이 적용되는 듯하다.
이건 아니잖아요. 하면
계약서 가져오세요.
뭐. 이런 느낌.
그래서 어딜 가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자들이
당당하고 가끔은 덜 친절하다 느껴진다.
공항이나 비행기 안에서 가장 극명하게 느껴진다.
적당히 상냥하고 때로 냉정해 보이는 승무원들를 보고 있으면
선녀 같은 얼굴로 눈높이를 맞추어 승객과 대화하는
대한항공 승무원들의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절로 허리가 숙여진다.
미국인들에게 감정노동이란
자신의 감정을 조절, 해야 하는 일이라고 한다면
우리 한국인들에게 그것은
상대의 감정을 다 견뎌내야 하는 일, 로 여겨진다.
감정노동이라는 개념을 미국에서 처음 만들었다 하지만
이 나라의 감정노동종사자들은 단호하게
"안돼요." "고만하세요." "기다리세요."
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들이 정색하면
상대가 금세 기가 죽는 장면을 종종 보게 된다.
이들은 끝없는 감정의 억제와 감정의 수용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그 주변의 고객이 만족한다.
아무 불만도 안 느끼는 평범한 상태의 고객들.
특별히 불편한 고객도 그 이유가 타당하면 받아들여 지므로 역시나 만족한다.
(다만 많이, 오래, 끈기 있게 기다려야 한다.)
학교에서, 콜센터에서, 쇼핑몰에서, 식당에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종사자들은
최선을 다해야 하는 부분과 안 해도 되는 부분을 제법 잘 구분하는 것 같다.
그래서 대체로 고객의 입장이 되는 나는
한국에서에 비해서 열불이 날 때가 많다.
왜 이렇게 느려.
도대체 되긴 되는 거야.
여긴 고객이 왕이 아닌 거 같아.
이런 불평을 한다. 종종.
그리고 때로 썩 만족스럽지 않은 서비스에도
팁을 쓰라는 영수증을 마주한다.
그리고 매번 갈등한다.
10%? 20%? 아니면 쌩?
미국의 팁 문화가 팁플레이션을 조장한다는 비난이 거세다.
미국도 유럽처럼 식당 주인이 서비스를 책임져야 한다는 주장이 일리 있다.
특별히 밥을 많이 먹는 아이들을 둔 엄마에게
비율로 책정되는 팁은 더더욱 부담이므로
나도 어서 서버의 임금은 사장님이 부담하셨으면
바란다.
그러면서도
팁 앞에 비굴하지 않은 서버들의 태도를 보며
와. 진짜 부럽다.
싶은 마음이 든다.
내 서비스 품질은 내가 책임진다니까.
너는 돈으로 표현해.
니 변덕스러운 감정까지 내가 돌볼 의무는 없다고.
손님은 왕이 아니라
내 파트너니까.
그래.
왕도 선왕이 있고 폭군이 있으니
가려가며 응대하라고 계약서에 써두면 된다.
팁 영수증 앞에서 투덜대다가
대한민국의 감정노동을 떠올리다니
역시 나는 한국 아줌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