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한국을 사랑하는 이유 8
철수야 놀자.
영희야 놀자.
미국에서 만난 미국인을 포함한 외국인들에게 한국어를 알려줄 때
나는 특별히 더 고무된다.
세종대왕님부터 BTS와 한강까지.
우리말과 글이 가지는 매력을 전하고 싶어
자음. 모음. 조사. 부사. 명사. 의성어. 의태어. 같은 단어들을 열심히 외운다.
한글 창제 의의와 원리
소복소복, 보슬보슬 같은 소리와 모양이 동시에 느껴지는 단어.
이런 것을 설명할 때
각국에서 온 영어 사용자들은 눈이 동그래져서는
질문을 한다.
ㄱ이라는 글자가 혀가 목구멍을 부딪히는 모양을 본뜬 거라고?
그럼 ㅗ는? ㅏ나 ㅓ 는? ㅍ 는?
훈민정음 해례를 읽어줘야 할 판이다.
누가 만든 지 모르는 비슷한 알파벳을 사용하는 외국이 들에게
한글은 상대적으로 젊은 글자이고
백성을 위해 만든 글자라 하니 또한 아주 스위트한 문자이기도 하다.
그들은
사랑해.라는 고백이 명령문으로 되어있다는 점이나
만나거나 헤어질 때 모두 같은 ‘안녕'을 쓴다거나
존대어가 따로 있어서 말끝에 - 세요? - 세요. - 시죠. 같은 다른 어미가 붙는다는 것.
그리고 언니나 오빠라는 호칭.
그런 것들을 흥미로워했다.
미국인 아이들이 언니를 발음할 때
어닝~ 어닝~ 하는 모습이 귀여워서 웃음을 참은 적도 있다.
대부분의 언어들이 그러하듯
우리말과 글도 고유의 역사와 문화를 반영하고 있어서
우리만의 맛과 재미가 있다.
그중에 미국에 와서 가장 특색 있는 말이
00야.이다.
영희야. 철수야. 함께 놀자.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집 다오.
멍멍아. 야옹아. 다투지 마라.
누구를 부르던 따라붙는 아와 야.
딸아이가 동생을 부를 때
00야.라고 부르는 걸 종종 듣는 미국인 친구가.
우리 둘째의 퍼스트 네임이. 00야.인 줄 알고
웨얼이즈 00야?
하우즈 고잉 00야?
캔 아이 톡 투 00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이 친구는
한국아이들의 이름이 도스도 옙-스키나 차이콥-스키처럼
죄다 00아 00야 로 끝나는 줄 알고 있다고 했다.
음.. 합리적 추론이다.
그래서 딸아이가 그건 이름에 붙는 Hey. 같은 단어라고 설명을 했다는데
그래. Hey, 영희. Hey, 맘. Hey, Doggy. Hey, Toad.
영어에선 앞에 붙지만. 우리말에선 뒤에 붙어
더없이 다른 느낌을 주는 야 와 아.
Hey, Sophie. 와 소피야. 의 차이는
한국인만 느낄 수 있는
가을과 봄의 차이 같은 것 아닐까.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와
엄마. 누나. 강변 살자 가
반짝이는 금모래톱에 살자는 것인지
강변 이 편한 세상에 살자는 것인지
우리는 그 뉘앙스를 구별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 문학의 애틋한 정서를
얘네가 이해하지 못하는 거다.
누군가 나지막이
00야.라고 불러줄 때
우리가 비로소 그에게로 가 꽃이 된다는 사실을.
참말로 우리는
섬세한 언어의 민족이다.
그래서 오늘날에 이렇게 다양한 감정을 표현하게 된 걸지도 모른다.
그리고 다양한 층위의 모순된 감정을 느끼고 사는지도.
이 작고 다정한 한마디를
하루에 수십 번씩 들으며 사는 우리.
00아. 너는 좋은 사람이야.
00야. 잘하고 있어.
00야. 보고 싶어.
00야. 사랑해.
그 하나.
이름에 들러붙은 호격조사 아. 가 만들어내는 마법을
오늘도 우리는 기다린다.
누군가 나의 이름을 따뜻하게 불러주기를.
그리하여
내일 다시 일어날 힘을 불어넣어주기를.
갈 잎의 노래가 들려오는 금모래빛을 받으며
엄마야 누나야를 부르는 소년이 되어
오늘도 우리는 사랑하는 이의 이름을 부른다.
독자님들‘아’.
미국 수난기 1편이 끝났습니다.
또 쓸 수 있을까요.
그랬으면 좋겠어요.
감사했어요.
또 만나요.
나의 브런치‘여’.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