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요즘은 선 안 봐?”
함께 저녁을 먹던 네가 무심한 듯 묻는다.
“응? 그건 왜?”
들고 있던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되묻는다.
“선보면 괜찮은 남자들도 나올 거잖아. 직업이나 외모나.”
너는 큰 냄비 속에 얇게 저민 쇠고기를 넣는다.
“뭐. 가끔은 그런 경우도 있지.”
의도를 모르는 나는 사실만을 말하게 된다.
“...........”
너는 입이 넓은 국자로 냄비 속에 끓고 있는 고기며 채소 따위를 그릇에 덜어낸다.
“그런 건 왜 물어봐.”
네 기분을 살핀다.
“네가 나를 만나는 게 너한테 시간 낭비일지도 모르겠다.”
“그게 무슨 말이야? ”
“아니다.”
급한 마무리.
“내가 선을 보는 건 어디까지나 부모님께 우리 관계를 들키지 않기 위해서야.”
나의 변이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연기 위로 흩어진다.
너는 미간을 찌푸린다.
“알아.”
“내가 그런 자리에 나가서 한 시간 만에 일어날 때 기분이 어떤지 알아?
혹시 내 이런 태도가 엄마 귀에 들어가면 어쩌나.
걱정하면서, 또 한편으로 너한테 죄책감을 느끼는 게.”
가스 위에서 끓고 있는 국물이 졸아든다.
자박자박한 바닥에 크게 거품이 만들어진다.
너는 말이 없다.
“힘들어. 나도.”
네가 이 상황을 힘겨워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지,
나는.이 아니라 나도.를 선택한다.
그리고 마침내 내 안에 웅크리고 있던 그녀를 꺼낸다.
“메일에 그 여자는 누구야?”
너는 졸아드는 냄비 바닥에서 시선을 거두고 나를 본다.
“무슨 여자?”
“그 여자. 엉망이 된 여자.”
너의 표정이 굳는다.
네 시선은 테이블에 고정된 채 움직임이 없다.
너는 대답 대신 질문을 던진다.
“메일을 읽은 거야?”
나는 물러설 생각이 없다.
이 상황이 온당치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너의 메일을 몰래 읽었고
메일을 보낸 여자는 현재의 여자도 아니다.
네 모든 과거에 대한 변명을 내가 들을 필요도 없다.
하지만 모든 걸 엉망으로 만들 만큼
네가 대단한 존재였다는 것이 나를 견딜 수 없게 한다.
이 말을 해야 하지만. 나는 너의 답이 올 때까지 버틴다.
“호주에서 잠시 만났던 사람이야.”
나는 물러서지 않는다.
“그 여자는 모든 게 엉망이래.”
“그렇지 않아.”
“그럼 뭐야? 그 여자는 왜 그런 거야?”
나는 목소리를 높인다.
“내 모든 과거를 네가 알아야 해?”
너의 눈이 차갑다.
나는 할 말을 잃는다.
“호주에서 만났고 잠깐이었어.”
“나는....모르겠어....”
너의 쉼 없는 연애가 그때의 너를 위로했겠지만,
지금은 너를 곤경에 빠뜨린다.
그리고 그 연인들 중에 한 명일거라는 생각이
나를 참기 힘들게 한다.
“우리는 이미 힘든 관계야.”
내가 오늘 우리의 대화를 종결한다.
뭐 하러 다시 왔냐고,
왜 잘 살고 있는 나에게 와서
날 곤란하게 하느냐고 너를 흔들고 싶다.
너는 결혼도 해봤는데 나는 선보면 안 되는지,
네 결혼을 내가 강요한 게 아닌데,
나는 왜 그 결혼의 에필로그가 되어 매일 결핍을 느껴야 하는지.
그리고 왜 너의 지난 연애를 들여다보게 했냐고,
너를 비난하고 싶다.
너의 침묵이 너무 길어
나는 하고 싶은 말들을 머릿속에서 만들다 만다.
차라리 세차게 부딪혀 깨어졌으면.
내 안에 불안과 원망을 소리 내어 말하고 싶다.
큰 소리로 엉엉 울며, 안아달라고 매달리는 아이가 되고 싶다.
한마디만 해줬으면.
“내가 그리워한 여자는 너 하나야. 그 여자는 외로움 때문에 잠시 만났어. 하지만 별일은 없었어.”
거짓이라도 좋으니 말해주면.
우리는 상대가 원하는 것을 알고도
그것을 주지 못하는 연인이 되어버렸다.
너도 알고, 나도 안다.
우리는 상대가 원하는 것을 주지 못한다.
탁. 가스를 끄며 말한다.
“너는 지금도 선을 보는데 나는 지나간 여자 때문에 이래야 하는 거야?”
계산대로 향하는 너의 뒷모습을 본다.
너는 따뜻하게 안아줄 수 없다.
처음부터 네게는 안아줄 여유가 없었다.
우리의 첫 이별도 그런 이유였음이리라.
그리고 그걸 알아서,
아직은 너를 시험할 수가 없다.
딸랑딸랑.
네가 문을 열고 나가는 소리가 나를 가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