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원하는 타당성과 숫자만 편식했다. 어짜피 답정너 였는데
“이번에는 이런 일 해볼까 하는데, 이대리 생각은 어때요?”
“저는 잘 모르겠는데요.”
“그럼 일단 이러한 일에 대해서 시장조사 한번 해보겠어요? 타당성 검토 좀 하고 싶은데.”
“대표님, 이 일은 이러이러한 상황이고 결과적으로 우리가 하기에는 좀 어려운 일이 될 것 같은 데요?”
“그렇다면 거기서 가능한 것은 무엇이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어떤 거예요?”
"... 네 찾아보겠습니다"
보통 우리 회사 내에 이루어졌던 신규 사업에 대한 대화다. 실제로 신규 사업 및 아이디어 도출을 위해서 이러한 상황을 맞이했고, 나는 보통 자료 조사를 지시하는 편이다. 그리고 진짜 해야 할 일이나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부정적인 의견이 있어도 최소한의 가능성을 만들고 싶었다. 그러나 가능성을 쪼개고 쪼개도 안 보인다면, 진행을 중단시키거나, 바로 철수했다.
실제로 직원에게 시장조사는 매우 유용하게 작용했다. 우선 시장조사를 시작으로 시장에 대한 범위와 가능성 확인이 첫 번째이며, 시장조사를 시작으로 일의 전반적인 진행 방향, 각 담당자의 역할, 조사자의 지식 습득이 두 번째다. 마지막으로 시장조사에 참여를 시작으로 일이 진행된다면 조사 담당자가 가장 먼저 일의 가능성과 포부 등이 설득되어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데 훨씬 수월하다. 물론 일이 안 될 것 같은데 무리하게 성공 요인을 들먹이면서 일을 진행한다면 역효과가 나지만, 때로는 신규 사업 전 시장조사, 트렌드 연구와 같은 방법이 꽤 유용하다.
대표의 독단적 판단이 회사를 위기로 몰고 간 것은 어제오늘, 동서고금, 대기업부터 스타트업 모두에게 해당할 것이다. 추진력도 강하고 성공한 경험이 있는 대표들은 실제로 자신의 성공 경험을 바탕으로 실제 사업을 성사하기 위한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는데, 모든 것이 성공하진 못해도 실제 10개 중 3~4개 정도 성공하면 다음 단계를 이어간다.
그러한 경험들은 성공사례가 되어 다시 대표의 독단적 판단을 만들어 내는데, 디테일을 모른 체 실제 일이 되게 만드는 일로 쪼아대는 상황에 유의해야 한다. 회사는 결코 민주적인 집단이 아니다. 다수의 사공이 일을 그르치는 경우도 많지만, 일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그 일이 왜 시작되었고 개개인은 어떠한 역할을 맡으며 이에 대한 발전과 성과 그리고 보상은 어떠한지 철저하게 사전 논의가 필요하다.
조직에 모인 직원이라 하더라도 모두 개인의 독립적 개체이자 가능성이다. 실제 대표의 비전을 보고 참여했더라도,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모습과 작금의 현실이 괴리감이 느껴진다면, 어느 순간 동기부여도 떨어지고 조직에서 마음이 뜨거나 이탈할 수 있다. 결국 어떠한 일이 주거나 새롭게 시작된다면, 이에 대한 구성원 간의 이해와 동의 그리고 설득이 필요하다.
이러한 논의 과정은 울퉁불퉁한 사업을 더욱 매끄럽게 할 수도 있으며, 구성원을 참여시킴으로써 역할과 명분을 주어지게 하여 자신이 담당했던 일에 개입 효과를 가지고 온다. 그리고 진행 과정에서 참여는 사업이나 프로젝트에 오너 마인드를 주어 실제로 좀 더 책임감 있는 모델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보통 나는 여기서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때 모두에게 의견을 구해보는 편이지만, 때로는 구성원들의 반대에도 밀어붙일 때가 많았다. 직원들의 반대 혹은 부정적 입장이어도 혼자서 이루어낸 성과에 힘입어 스스로 반발하여 일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모두의 동의가 없는 사업은 대부분 실패를 했었던 것 같다.
한편으로는 답정너의 방식대로 움직인 경향도 있다. 이미 머릿속에는 하고 싶은 일에 대해서 쉽게 생각하고 이미 깔려있는 로드맵대로 움직여야 하는 과정에서, 직원의 설득을 위해서 혹은 생각한 것을 끼워 맞추기 위해 자료조사를 유리하게 풀어간 것도 있다.
가령, 서점을 하고 싶은데 내부 설득은 필요하니 출판시장 규모 조사해보자 라는 식으로 던져놓은 후, 시장성장세가 조금이라도 높은 수치가 나오거나, 시장 사이즈가 크다고 판단되거나 등의 유리한 숫자만 골라서 편식한 것이다. 실제 나의 사업은 그것과 동떨어져있거나 목적이 따로 있어도, 도전정신 하나로 밀어붙이기도 했다. 출판시장은 점차 규모가 감소하지만, 전자책과 오디오북 등이 흥행하면서 전체 볼륨이 커 보이는 효과 등을 보면서 유리한 숫자만 취하는 태도도 문제가 있었다.
이해관계자들의 설득은 내부나 외부 할 것 없이 중요하다. 더군다나 대중성에 기반한 모델이면 개인에게 축적된 경험을 가장 먼저 확인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직원들의 입장이다. 그러한 활동은 마치 FGI(Focus Group Interview)를 떠올릴 수 있는데, 내부 커뮤니케이션은 작은 조직일수록 더욱 중요해지는 중이다. 그렇기에 앞서서 말한 것처럼 일을 시작하기 전에 최대한 자료조사를 하고 PM을 지정해서 맡겨보는 것도 좋은 선택이다. 결국 책임감과 성과에 대한 가능성 등을 기반으로 새로운 일의 추진을 통해 성장의 변곡점을 맞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을 알면서도 서점 사업모델은 처음부터 준비 없이 쉽게 시작해서 일이 커진 상황이다. 공간을 갖고 있으니, 책을 쌓아두고 팔면 되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이 문제였다. 결국 내가 못 챙긴 디테일과 복잡한 대외 커뮤니케이션으로 인해 모든 것이 설득이 안 된 상태로 일이 진행되었다. 불만이 쌓일 대로 쌓인 직원 일부는 퇴사를 결정하기도 하고 새롭게 뽑은 사람은 입사하자마자 얼마 안 되어 나가기도 했다. 결국 사필귀정으로 잘못된 선택의 결과였다.
물론 이렇게 독단적인 결정이 무지막지한 결과만 만드는 건 아니다. 나 역시 사실 모두가 반대했던 일들 중에서도 결국 독자적 판단으로 일을 결정해서 기반을 닦고 장기적으로 봤을 때 성과를 만든 것도 있다. 이는 당장 내일이 아니라 멀리 내다볼 수 있는 대표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1인 미디어 사업을 시작한 것도, 스튜디오를 만든 것도 잘 안될 것 같다는 의견이 지배적인 상황에서 이루어낸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뿌려놓은 씨앗이 새로운 사업모델로 전환되거나 수익이 되거나 했던 것이다.
정답은 없다. 그러나 하고 싶다는 일을 추진할 때는 자신이 처해있는 상황에 대해 엄중하게 판단해야 할 것이다. 꼭 돈이 되어야만 사업을 해야 한다는 건 아니어도, 적어도 현실 파악 못하고 원하는 숫자만 편식하면서 낭만을 외친다면 그리 좋은 결과로 이이지지 못하는 것을 크게 느꼈다.
김건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