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네이밍에 너무 많은 의미를 집어넣었다. 자본도 없는데
자몽은 스스로 자(自)에 꿈 몽(夢)이라는 한자를 조합한 단어다. 물론 과일 자몽이라는 뜻도 있다. 왜 자몽으로 이름을 지었냐는 말을 많이 하는데, 사실 단순하다. 과일 이름은 잘 안 망할 것 같아서였다.
이름을 지은 시기는 2010년도다. 창업하기 전이다. 새로운 사업이나 서비스를 시작할 때 이름부터 지어놓고 틀을 만드는 습관이 있는데, 당시에도 재창업을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은 터라, 어떤 사업을 할까 고민하다 지은 게 ‘자몽’이었다. 그 당시 이미 슈퍼 브랜드였던 애플, 막 떠오르는 카카오, 음악 서비스의 대표주자 멜론 등 과일 이름 상표를 보면서 그럴싸해 보였다. 나도 과일 이름이 좋겠다 싶어서 포도, 사과, 수박 등 단어를 조합해 봤지만 적절 한 게 없었다. 그러다가 딱 떠오른 과일이 자몽이었고, 한자 단어를 조합하여 나온 것이 회사명이 되었다.
어떠한 일을 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회사명부터 지었는데, 마침 뜻이 스스로 꿈을 이루어주는 일이라는 근사한 속뜻까지 만들었다. 남들이 보면 웃을지 모른다. 하지만 사람도 회사도 이름대로 산다고 지금은 스스로 꿈을 이룰 수 있게 도와주는 일을 사업으로 하고 있는 셈이다.
자몽이란 이름을 필두로 사업마다 자몽을 붙였다. 나름 공부 좀 했다고 패밀리 브랜드 전략을 세워야 한다는 생각에 브랜드 확장을 해왔는데, 자몽서점도 그러한 의미에서 만들어진 이름이다. 자몽이란 이름은 여러 가지 수식어로 확장해도 꽤나 근사한 결과물이 나왔다. 서점도 자몽서점으로 이름 붙인 후에 츠타야서점을 모방해서 한자를 그대로 쓰는 걸로 브랜드 로고를 만들었다.
한국의 츠타야서점을 표방하는 자몽서점은 내가 봐도 너무 멋지다고 생각했다. 지금 와서 고백하지만, 당시 서점을 시작할 무렵에는 마냥 기분이 좋았다. 날마다 멋진 서점을 가졌다는 생각에 밤잠을 설친 적도 있었고, 좋아하는 공간을 만든다는 설렘에 공사장에 찾아가서 밤새 이것저것 만들기도 했다.
처음부터 모방만 한건 아니었다. 브랜드는 이름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바로 체험과 경험에서 주는 브랜드 상기다. 나는 이러한 점에서 자몽서점은 단순히 츠타야서점을 따라한 것에 그치지 않고, 나아가 서점을 필두로 콘텐츠 베이스 플랫폼으로 완성하고 싶었다. 기술과 플랫폼에 대한 이해는 충분했다고 판단했고 이는 많은 매거진 출판사를 모으는 데 있어서 충분히 역할을 했다. 그렇기에 나는 자몽서점 브랜드의 핵심가치를 ‘아주 멋진 공간’이라고 규정했고, 누구나 찾아와서 ‘멋지게 공간을 경험하는 것’을 1차 목표로 삼았다.
공간에 대한 평가는 매우 좋았다. CGV 담당자부터 관계자 모두 매우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영화를 보러 오거나 끝나고 나가는 사람들 모두 공간을 주목하는 것에 매우 기뻤다. 하나씩 브랜드를 쌓아가는 것이라 생각했고 실제로 이러한 공간의 힘은 출판사를 모으거나 제안하는 데 있어서 매우 좋은 영향을 준 것은 사실이다. 나는 이를 콘텐츠를 파는 사업은 무형의 매개체지만, 이에 걸맞은 공간이 있다면 이는 정말 탁월한 콘텐츠 브랜딩이라 생각한다.
그렇기에 나는 콘텐츠 시대에 더욱 오프라인이 주는 힘에 주목해야 한다고 봤다. 앞으로 우리는 더욱더 비대면의 시대를 살아갈 것이고, 인간의 숨결과 손길이 닿는 것에 대해서 망설일 것이라 본다. 더군다나 모객 된 사람들 간의 관계는 이제 더욱 보이지 않는 벽이 자리할 것이고 그런 의미해서 찾아오게 만들 수 있는 공간의 힘이 필요하다. 제3의 공간은 여전히 이 사회에서 고독한 섬을 탈출할 수 있는 플랫폼이기 때문이다.
자몽서점은 그러한 의미에서 나름대로 역할을 했다고 본다. 작지만 힘 있는 인테리어와 모방에서 주는 적절한 포지셔닝은 내가 시작한 자몽서점의 모든 브랜딩이라고 판단했다. 그리고 우리는 잡지 전문 서점을 표방하며, 독립잡지를 중심으로 소비지향적인 글의 대표주자인 잡지에 주목했다. 제품 구성 역시 독특한 물건으로 큐레이션 했다. 가령 병뚜껑을 대신하여, 빈병의 공간감으로 소리를 채워주는 스피커라던가, 크리에이터의 굿즈, 트래블코드와 함께했던 팝업스토어 등이 그러했다. 더불어 잡지를 베이스로 한 콘텐츠도 채워놓았다. 매거진 회사의 토크콘서트를 용산 CGV에서 개최했으며, 인디 음악공연도 시도했다. 매 순간 자몽서점은 단순한 서점이 아니라 큐레이션과 취향을 저격하는 책이 있는 공간이라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자몽서점의 서점으로써 차별화를 위해 내가 택한 선택은 잡지였다. 나는 잡지를 너무나 좋아하는 잡지광이자 실제로 정기 구독하는 잡지도 있을 만큼 집안에 잡지가 한가득이었던 적도 있었다. 잡지는 나의 상식의 자양분 역할을 해왔다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잡지는 매달 새로이 생산되고 소비가 일어나고 인문학적인 출판과 대중 지향적 출판의 경계에 있는 상업 콘텐츠 영역이기에 더할 나위 없이 공간 성향에 잘 어울리는 잡지를 전문으로 파는 서점을 택했는데, 출판시장에 대한 배경지식과 경험이 없어도, 무작정 잘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잡지의 텍스트와 스토리를 오디오와 영상으로 활용한다면 매우 좋은 베이스 콘텐츠가 되고 그것을 기반으로 다양한 콘텐츠로 OSMU 할 수 있는 사례가 만들어지면 현재 침체되어 있는 잡지시장도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할 것이라 여겼다. 더욱이 영상의 시대에서도 대중문화의 원천소스로서 잡지의 역할과 위상은 줄지 않을 것으로 보았다. 나는 이를 자몽다운 발상이라고 생각한다. 스스로 꿈을 꿀 수 있는 계기를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자몽의 브랜드 가치였다.
하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도 못했다. 그나마 이제 와서 돌이켜볼 때 나에게 남은 건 브랜드에 대한 경험과 소비자를 이해하는 방법이었다. 그리고 브랜드가 지향하는 미래를 더 잘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이 내가 경험한 가장 큰 자산이 되었다.
나는 흔들리지 않는 브랜딩 전략은 복잡한 시대에 가장 중요한 지침서이자 방향을 제안할 수 있는 힘이 있다고 믿는다. 물론 전술적으로 실패할 수 있지만, 전략적으로는 승리할 수 있는 좋은 길이라 생각한다. 비록 당시 나는 크게 실패했지만, 브랜드가 더욱 단단해지는 계기가 되었다고 자평한다.
김건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