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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enis Kunwoo Kim Oct 19. 2022

3할타율과 1홈런, 출루률을 높이고 더 단순하게 바꾸다

위기의 순간을 벗어나 기회로 만들기까지, 비워내는데 모든것을 걸었다

3할타율과 1홈런, 출루률을 높이고 더 단순하게 바꾸다

위기의 순간을 벗어나 기회로 만들기까지, 비워내는데 모든것을 걸었다


인생을 3할 타율과 1 홈런을 모토로 살아왔다. 실패를 거듭해도 3번 정도 적당한 안타와 크게 터트릴 수 있는 한 방의 활동이 지속 가능성을 만들어 준다. 하지만 위기의 경우엔 모든 것을 걸어서 크게 뒤집을 만한 판을 만들려고 무모하게 덤벼들었다. 실패도 있었지만, 적절한 보상도 있었다. 그렇다고 이러한 도전이 성공으로 가는 길은 아니다. 지나고 보니 그것이 승부였구나 하는 수준이지 그럼에도 여전히 불확실성으로 인해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 그냥 도전자로서 생존자로서 적당히 가늘고 길게 이어가는 현재 삶의 형태를 만드는 중이다. 


3할 타율과 1 홈런을 위해서는 어떻게든 출루해야 한다. 나는 기회가 오면 일단 휘두르고 보는 편인데,  실패의 경험과 위험 때문에 몸을 사리거나 망설이지 않는다. 위기의 순간에도 되던 안되던 한 번뿐인 인생인데 일단 저질러보고 시작하는 편이다. 


도전정신으로 무장해서 찬사는 받을지언정, 이러한 나의 태도로 인해 가족과 동료를 고달프게 하고 힘들게 만들기도 했다. 서서히 나이가 들어가는 지금은 이젠 무모한 도전보다는 신중한 걸음마를 택하는 일이 많아졌다. 더군다나 과거의 낭만주의자처럼 사업하든 모습을 벗어나 지독한 현실주의자가 된 것은 츠타야 병 이후의 나의 모습이다.


사업을 한 이후 몇 가지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위기의 순간이 있다. 그 당시를 생각하면 엄청난 위기라고 느껴 매일 밤낮을 불면증과 피로감에 절어있었다. 사활을 걸고 준비했던 경쟁 공모에서 떨어졌을 때, 전에 다니던 회사 사장님이 이제 해당 사업에서 손을 떼라고 통보했을 때, 오랫동안 함께했던 클라이언트 사업 비딩에 실패했을 때, 자금줄이 다 말라 이번 달 월급을 지급하면 이후 자금 흐름을 장담할 수 없게 되었을 때, 모든 때가 나에겐 위기였고 위태로운 시기였다. 


위기의 순간에서 기회가 된 적도 있었다. 신규 인프라를 구축했지만, 고정 수익을 만들어냈던 대행사를 포기하고 콘텐츠 분야로 사업 모델을 전환했을 때, 사업 모델 검증 실패로 인해 유동성이 너무나 부족했다. 당장 다음 달에는 월급 줄 돈이 없었던 상황에서 미국을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한국전파진흥협회에서 주관한 크리에이터의 축제 ‘비드콘(VIDCON)’에 가게 된 것이다. 다음 달 일은 그때에 나에게 맡기고, 새로운 사업모델을 들고 미국을 방문했는데, 신규 서비스가 성과는 좋지 않았지만 모든 걸 걸고 간 만큼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한국에 돌아와 특강을 하게 되었는데 강연을 들었던 공공기관 담당자들이 사업 참여를 요청했고 기적적으로 우리 회사가 수주하게 되면서 위기를 벗어나 다음 단계로 이어갈 수 있었다.  


또 한 번은 자몽 서점으로 인해서 모든 자금이 블랙홀처럼 빠져나간 후 실제 유동성 위기가 크게 온 적이 있다. 타고 다니던 차도 팔고 카드깡과 마이너스 통장 대출로 너무나 힘들 때였다. 회사를 운영하기 조차 힘든 상황에서 동료들은 모두 퇴사를 하게 되었고 마지막으로 나 포함 세명이 남았다. 나는 모든 사업을 다시 점검하게 되었고 기존에 운영했던 사업 중에 다른 모델은 다 버리고 그동안 가장 잘해왔던 교육사업 모델 하나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그러고 나서 기적적으로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투자 유치는 더욱 극적이었는데, 제대로 된 수익모델이 없는 상태에서 기존의 경험했던 사업 모델 중 현금 창출과 경쟁력 있는 레퍼런스를 보유한 콘텐츠 교육 프로그램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 장황하게 기존에 사업들을 설명했지만, 투자자가 원하는 건 한 문장으로 정의할 수 있는 사업모델이었다. 멘토링과 피드백을 받고 사업모델을 정말 간단하게 개편했다. 사업은 단순하면서 고도화해야 한다는 진리를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해서 프라이머라는 국내 최고의 투자회사로부터 초기 투자를 유치했다. 그토록 어렵던 실마리가 풀리는 순간이었다.  


매력적인 사업 아이템이어도 내가 하기 어렵거나 여건상 어려운 사업모델은 포기했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 나는 더욱 신중하고 조심히 움직이게 되었다. 대행사 구조로 버틸 수 없을 것 같아 콘텐츠 크리에이터 사업, MCN 모델로 한국 최고가 되겠다는 목표로 일했다. 또한 그중에서도 1인 미디어 크리에이터 매니지먼트 사업에서 가능성과 체질에 맞지 않다는 판단으로 콘텐츠 교육을 시작했는데, 인정받고 투자까지 유치하게 되었다. 이러한 경험이 나에게 맞는 일과 경쟁력 있는 사업 모델을 찾는 계기가 되었다. 


교육학을 전공하고 선생님으로 일했던 경험과 겸임교수로 재직하면서 인정받은 자질, 콘텐츠 트렌드와 환경을 이해하고 있으면서 서울 곳곳에 스튜디오 인프라를 갖고 있는 상황에서 콘텐츠 교육 사업을 가장 잘할 수 있을 거란 믿음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좋아하는 일도 중요하나, 내가 잘할 수 있는 사업모델이 중요했다.


대행사 사업모델에서 1인 미디어 콘텐츠 비즈니스로 전환은 생각해보면 정말 위험했지만 가장 잘한 선택이었다. 나만의 오리지널리티 갖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대체 불가능한 제안을 할 수 있는 회사가 되고 싶었기에 내가 할 수 있는 일, 내가 잘하는 일, 나를 찾아야만 하는 일을 생각했다. 

모든 걸 걸고 미국을 다녀와서 교육사업을 시작한 일이나, 안정적인 대행사 사업구조를 버리고 오리지널리티를 위해 크리에이터 사업에 집중한 일 등 무모하게 도전했지만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했다.  


항상 무언가를 채우기 위해 노력했었다. 하지만 실패 후 내가 가장 크게 깨달은 것은 사업은 계속해서 비워내고 단순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의 넘치는 에너지는 호기심으로 연결되고, 정보와 지식이 되고, 그러한 활동으로 감당하지 못할 많은 일을 벌였지만 그 안에서 가능성을 발견했고 그 가능성 하나에 집중하게 되면서 투자유치까지 만들어 낼 수 있었다. 투자라는 건 목적이 아닌 수단이지만 처음으로 인정받은 계기가 되어 자신감이 생겼다. 


김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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