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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enis Kunwoo Kim Oct 14. 2022

자본 없이 사업을 시작했지만, 자존감은 바닥을 쳤다

대행사 모델의 한계를 느꼈지만, 먹고살려니 어쩔 수 없었다 

자본 없이 사업을 시작했지만, 자존감은 바닥을 쳤다

대행사 모델의 한계를 느꼈지만, 먹고살려니 어쩔 수 없었다 


자본 없이 가장 빠르게 수익을 만들어 내는 방법은 무엇일까 생각했다. 여러 가지 사업 모델을 검토했다. 물건을 떼다가 파는 유통, 만들어서 파는 커머스, 광고나 홍보를 대신하는 에이전시 등이었다. 


일단 내가 선택한 건 대행사였다. 2008년 여름, 첫 사업으로 대행사를 시작했다. 자본 없이 가장 쉽게 시작할 수 있고 개인의 재능에 기대어 할 수 있는 사업이라 생각했다. IT기업에서 마케터로 사회생활도 시작했고, 브랜드 마케팅 회사 경험과 홍보대행사에서 일했던 경험이 모두 활용할 수 있었다. 대행사가 좋았던 건, 재능과 관계의 영역이어서 큰 자본이 필요 없었다. 그리고 혼자 움직여도 되기에 사무실은 집으로 해놓고 필요할 경우 후배에게 부탁하여 업무를 처리했다. 


초기에 프로젝트는 이벤트 홈페이지 만들어 주는 일이었다. 개발자 친구 한 명을 고용하여 시작했다. 실력이 좋은 친구여서 웹페이지도 빠르게 만들었고, 고객 반응도 좋아 계속 일이 들어왔다. 그렇게 일이 조금씩 늘어 디자인 외주, 이벤트, 광고 홍보 대행을 수행하면서 조금씩 돈을 벌기 시작했다.  


광고, 홍보대행사는 지식과 경험만 있어도 시작할 수 있다. 광고나 홍보를 대신해 주는 전문가의 영역에서 트래픽이나 구매 전환 효과를 높이는 일인데, 디자인 감각과 카피라이팅, 데이터 분석 능력을 겸비하면 가능한 일이다. 처음 직장생활을 디시인사이드에서 자사 마케팅 업무를 수행했고, 영업부터 광고 집행까지 해본 적 있기에 대행 일은 다른 일보다 쉽게 시작할 수 있었다. 거기다 적당히 운도 따랐는데, 당시 내가 속해 있던 대행사에서 경쟁업체 홍보가 금지되어 내가 맡으면서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광고대행사 일은 나름 순조로웠다. 직장생활의 1/3 업무량으로도 그 이상의 돈을 벌어들이는 구조를 경험하니 매일매일 신나게 일했다. 당시 유행하는 통합마케팅 커뮤니케이션 IMC와 바이럴 마케팅을 필두로 영업도 열심히 했다. 친구와 후배랑 하던 작은 팀이 순식간에 5~6명을 고용하며 조직의 구조를 갖추게 되었다. 


하지만 고충도 커져만 갔다. 대행사 구조로 일하면서 자꾸만 클라이언트의 부당한 요구사항을 들어줘야 하거나 기존 계약보다 더 많은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 생겼다. 페이백을 당당히 요구하기도 하고 퇴근 시간에 수정 요청하고 다음 날 보내달라는 일도 예사였다. 조직이 조금씩 커질 때마다 추가로 부담해야 하는 돈은 늘어났다. 월급과 월세, 그리고 세금으로 야금야금 새어나갔다. 어음으로 돈을 받는 경우도 있었는데 자금 회전이 안 돼서 다른 데서 돈을 구해 급여나 지출을 충당한 적도 많았다. 


가장 큰 문제는 자존감 저하였다. 대행사 업무를 계속하면서 자존감이 바닥을 쳤다. 조직에서는 당당했지만, 클라이언트 앞에서는 꽤 쪼그라진 상태에서 커뮤니케이션하니 갈수록 지쳤다. 나는 나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사업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냥 남의 일을 대신해 주는 사람이 되어가는 느낌이었다. 혹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역할과 업무의 롤은 전문가로서 당당하게 해야 한다고 하지만, 돈을 주는 사람의 상황을 맞춰가며 형성된 갑을 관계에서는 쉽지 않았다. 


더군다나 계속해서 영업을 해야 했다. 우리 회사가 어떤 일을 하는지 밝히고 직접 영업을 해서 일을 가져와야 하는 구조가 계속되다 보니, 예전에 관계했던 선후배, 친구 간의 관계 속에서 영업하는 사람이라는 낙인이 찍힌 것만 같았다. 매번 부탁하거나 만나자고 얘기해야 하는 상황이 지속되다 보니 스스로 고립되어감을 느꼈다. 끝없이 직접 영업을 해야 하는 상황이 지속될 것 만 같았다. 부탁하는 체질이 아님에도 자존심을 내려놓고 열심히 회사 사업모델을 설명해야 하는 상황이 이어지다 보니 어느 순간 현기증이 왔다. 


대기업 다니는 친한 형을 찾아갔던 적이 있었는데, 회사소개서를 보면서 대기업 입장으로 질책하는 이야기를 듣다 보니 갑자기 화를 낸 적이 있다. 사실 무조건 내가 잘못하고 미숙했던 탓이지만, 친한 형까지 너무나 질책하는 상황이 싫었고 야속하게 느껴졌다. 아마 자존감이 바닥을 치고 있던 상황이었을 것이다. 이후 사과는 했지만 그때부터 방향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이러한 구조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그 원인을 찾아보니 두 가지였다. 하나는 비즈니스 모델의 경쟁력이 약했던 것, 두 번째는 전문성 결여에 있었다. 대행사 비즈니스 모델은 시작은 쉬우나 경쟁이 치열하다. 그리고 단가 부분에서 차별화가 없으면 금방 치킨게임으로 치닫는다. 클라이언트와의 신뢰 관계도 중요한데, 관계 유지를 위해 뼈와 살을 내어 주는 경우도 허다했다. 물론 실력도 부족했고, 대응이 빠르지 않을 수 있어서 성공하지 못헀겠지만, 체질적으로 잘 맞지 않았던 것도 있다. 더군다나 대행사에서 차별화를 만들어 내려면 기술 기반의 설루션 및 서비스가 갖춰졌거나 자체 운영하는 트래픽 높은 미디어 채널이 있어야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데, 나는 두 가지 모두 갖추지 못했기에 경쟁력이 없었다.


또한 전문성 역시 대기업 출신, 광고 전문기업 출신 등의 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초라한 경험과 경력밖에 없었기에 배경이 중요한 담당자의 역할이 부족했다. 실제 요즘에도 사업을 하면서 출신과 배경이 도드라지지 않아 경쟁력이 약하다는 생각이 여전히 든다. 그러나 돌이켜보니 더 큰 문제는 광고대행사의 경쟁력이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자신감 부족과 광고대행사로서 전문성을 위해 노력하지 않은 것에 있었다. 


경쟁력을 갖춘다는 명목 하에 새로운 프로젝트를 벌리기 좋아했다. 물론 지금 그러한 시도가 연결 효과가 되어 지금 사업모델을 만들어 냈지만, 광고 마케팅 경쟁력을 위해 많은 것을 시도했다. 자몽의 시작인 대학생 공모전 사이트도 그러했고, 크리에이터 기반의 MCN 사업모델도 시도한 일 중 하나였다. 


나는 대행사 사업 모델에 갈수록 부정적으로 되었다. 창의성과 빠른 설루션을 갖춰 나갔지만, 갈수록 새로운 사업모델에 갈증이 생겼다. 나는 과연 누구를 위해 일을 하고 있는가? 그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온전히 나를 대표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어디선가 나를 말할 때 기술적 전문가가 아니라 산업에 대한 전문가가 되고 싶었다. 대행사에 종사하는 분들에게는 실례되는 이야기지만, 나는 스스로 대행사 역할이 맞지 않는 옷이었다. 창의성을 발휘해도 나를 위한 일이 아니라 생각했다. 나는 누굴 위해 일하냐는 생각이 들었다. 더군다나 인건비 중심의 수익구조도 못마땅했다. 대행사는 한 사람의 몫이 많아야 단위당 수익성이 높아지는 구조다. 즉 한 사람이 여러 클라이언트를 관리하고 일을 많이 해야 같은 값에 ROI가 좋아지는 구조다. 그러니 사람을 도구로 보게 되고, 전문성을 갖췄다 해도 클라이언트가 없으면, 아무리 유능한 인재라 해도 필요 없는 사람이 되어 버리는 상황이 된다. B2B 구조야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오랫동안 호흡을 맞추고 관계를 다지며 성장하는 조직이 필요했다. 그런 조직을 위해서 계속해서 딴 주머니 차듯 다른 프로젝트를 쥐어짤 수밖에 없었다. 


대행사 구조는 뻔하다. 연간 계약을 통해 리테이너 서비스를 이용한 고객이 우리에게 채널 운영이나 커뮤니케이션 대행을 맡기고, 우리는 견적서를 전달하고, 인보이스와 세금계산서를 발행해서 입금받는 구조다. 일은 먼저 하지만 항상 돈은 늦게 들어오는 구조다. 그나마 괜찮은 기업과 클라이언트는 선금(계약금)과 잔금을 나누어 주는데 대행 구조에서는 많지 않다.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명목으로 돈도 많이 썼다. 기본적으로 인건비 베이스다 보니 사람 한 명 채용할 때마다 필요한 기자재와 급여와 보험 가입 등의 여러 유지비용, 사무공간 부족으로 인한 사무 공간 확장이 필요했다. 게다가 당시에는 공유 오피스도 없었다. 사무실을 운영해야 하는 모든 제반 비용은 모두 갖추어 운영해야 했다. 서비스나 설루션, 채널 성장을 위해 R&D 명목으로 운영한 사이트 개발, 콘텐츠 제작, 대학생 마케터 운영 등이 그러했다. 수익이 전혀 나오지 않는 데도 경쟁력 강화라는 측면으로 프로젝트를 벌린 셈이다. 여러 장비와 이미지 소스 구매 등 소모 비용이 계속 이어지면서, 매출은 생기는 데 사장 급여는 전혀 못 가져가는 상황이 몇 년간 지속되었다.  


경쟁은 치열하고 수익성은 계속해서 낮아졌다. 경쟁력을 갖춘다는 명목으로 내 월급은 받지 못하고 일만 했다. 자금난에 시달리면서 궁여지책이 나오기 시작했고, 나를 위한 급여가 없으니 계속 외부 일만 겉도는 일이 잦아졌다. 강연, 심사위원 등 외부 활동으로 근근이 개인 생활비를 충당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조직 구조는 신경 쓰지 못했고 계속 직원들의 퇴사와 입사가 반복되었다. 


조직 시스템이라는 게 전무한 상태에서 스타트업 정신만 외치는 기업을 누가 좋아하고 누가 이해해 줄까? 당시 사업 모델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B2B 사업자로서 개인의 이해만 바라면서 개선되는 일은 거의 없는 상태로 시간만 흘렀다. 친밀했던 관계도 갈수록 갈등이 생겼고, 회사 평판은 바닥을 쳤고, 사장은 사업 놀이만 한다는 식의 비아냥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직원들의 회사에 대한 불만도 갈수록 커져만 갔다. 


뾰족한 사업 모델이 나오지 않은 상태로 용역과 대행사 사업 구조 속에서 관련 업무만 계속 이어가다 보니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더군다나 고정 수입은 한계가 있는 상태로 고정비를 아끼기 위해서 추울 땐 추운 곳에서 더울 땐 더운 곳에서 일하는 상황이 계속되었다. 한 마디로 모든 것이 최악인 상태가 되어가는 중이었다. 


대행사 구조를 벗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한 번 사업 모델이 정착된 상태에서 다른 업으로 전환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었다. 더군다나 조직원 모두 대행사 구조에 익숙해져 있다면 인하우스 비즈니스 구조를 이해하기도 어려울뿐더러 적극적으로 나서서 무언가를 새로 만드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다 보니 대행사가 싫지만 계속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고, 발전 없는 미래라고 생각해 실패한 사업, 실패한 인생이라 생각했다.


김건우. 


*여러분의 응원과 지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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