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데미안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Wenis Kunwoo Kim Feb 12. 2020

다리가 부러진 하류민의 상류전환기

기택의 집에 공감하는 건 그 집이 한때 나의 집이었다. 

유난히 장마철이 길어지면 습한 기운과 함께 불안감이 엄습했다. 방안으로 철철철 넘쳐 흘러들어오는 빗물 때문에 새벽에도 엄마는 나와 동생을 깨워서 계단 위로 올라가게 하였다. 


동네는 산이 높은 관악산 언저리였기에, 다행히 아랫동네에 비해 물이 허리까지 차오르거나 역류하는 문제는 피할 수 있었으나, 발목쯤 잠기거나 첨벙거리는 방안을 치우는 일은 몇 번 정도는 경험했던 것 같다. 

나는 태어나서 딱 두 번의 반지하를 경험했다. 한 번은 초등학교에 막 올라갈 무렵, 단칸방에 살던 우리는 아버지가 직장에서 자리 잡은 시점에 무려 방 3개인 넓디넓은 반지하 연립주택으로 이사를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20평도 안 되는 집이었지만, 국민학교 1학년인 나와 갓 태어난 동생에게는 그 전 집에 비해 대궐 같은 집이었다. 유난히 여름철 빗물이 흘러들어와 장판 밑이 젖고 습했지만, 따스한 햇살이 방안을 가득 매웠던 터라 유독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은 집이다. 


아버지가 사업을 시작하시고 우리는 몇 년간 중산층 다운 삶을 경험했다. 아파트 2층으로 이사를 갔고 베란다도 터서 그 전 집보다 넓었던 집이었다. 관악산이 바로 옆에 위치해 일요일이면 등산에 갔다가 목욕탕을 다녀왔고, 문방구와 학교가 가까웠으며 친구가 유독 많았던 그 동네에 유년시절은 여전히 꿈만 같다. 

하지만 IMF 시절이 다 그랬듯 우리 가족은 내가 중학교에 올라가던 무렵 늘 지나다니던 국민학교 옆 반지하 집으로 이사를 갔다. 방문을 닫으면 빛이 하나도 들어오지 않아 너무나 어둡고 컴컴한 그런 집이었다. 

소독차는 매번 집안을 가득 메웠으며, 길가 집이라 도둑도 빈번하게 들었다. 없는 살림에 사준 자전거를 2번이나 도둑맞아 언제나 속상했던 그런 청소년 시절이었다. 


방황도 많았고 엇나가기도 했다. 성적은 떨어졌고 인생은 암울했다. 외고를 생각했을 정도로 흥미 있었던 영어는 이내 멀어졌으며, 어느덧 하위권 학생이 되어버린 상황에서 상고나 공고냐 를 두고 결정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렇게 떨어진 하류의 삶은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기초가 부족한 탓에 겨우 인문계 고등학교에 갔지만 여전히 성적은 제자리였다. 공부를 한다고 해도 따라잡기 어려운 상황을 경험하니 이내 다른 것이 눈에 들어왔다. 미래를 알 수 없었고, 허무와 갑갑함이 채워졌다. 

큰 수술을 두 번 했었는데, 두 번째 수술이 바로 고3 때였다. 다리도 다친 터라 외부활동은 어차피 하지 못한 터였고, 할 수 없이 공부에만 전념하게 되었다. 첫 번째 전환기였다. 


영화 기생충은 큰 울림이었다. 상류층은 경험하지 못했지만, 하류층의 그 삶은 단박에 떠올랐다. 몸으로 먼저 기억되는 추억이었다. 부모님의 노력 덕분에 지하로 떨어지지 않은 것만이 불행 중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건 아주 나중의 일이다. 부실한 삶의 태도는 언제나 인생을 나락으로, 하류로 밀어 넣을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영화가 주는 인생을 표현하는 방식은 때로는 너무 잔인하다. 


여전히 상류를 꿈꾸지만, 그 위치는 경험해본 적이 없다. 간접적으로나마 가끔 멋진 곳에 초대를 받거나 참석하게 되면 느껴보지만 그 삶의 방식과 태도는 어떠한 것인지 경험하지 못했다. 그래서 동경의 대상이자 전환기를 위해 여전히 현재에 집중하며 일을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동기부여의 원천은 어쩌면 어릴 적부터 쌓아왔던 문화자본의 힘이 아닐까 생각한다. 부모님은 없는 삶이었지만 항상 책을 사주었고, 읽게 했다. 서점을 가는 것을 좋아해, 동네서점에서 하루 종일 혼나면서도 책을 읽었고, 책을 읽기 위해 친구도 없는데 놀러 갔던 기억이 있다. 무언가 공부하는 게 아닌, 배우는 것이 아닌 계속해서 읽게 했던 것들이 지금에서야 전환기를 위한 동기부여로 작용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도 해봤다. 


하지만 여전히 다리가 부러진 체 살아가고 있다. 간신히 벗어난 하류에서 난 다리가 부러진 것이다. 회복을 위해 더디게 움직이고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회복하게 될 때 조금 더 좋은 기회를 맞이하지 않을까 암시한다. 헛된 희망일 수도, 나약한 변명일 수도 있다. 


영화 기생충의 아카데미 수상은 많은 사람들이 그랬듯 나에게도 특별하게 다가왔다. 상상이라는 산물은 오롯이 나만의 것이고, 독창적이다. 그리고 그걸 어떻게 표현하는지에 따라 과거에 기억은 특별한 콘텐츠가 될 수도 공감대를 자아내는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항상 졸리고 피곤하고 몸이 붓는 와중에도 계속해서 늦은 시간 자고 일찍 일어나 움직인다. 특별한 주말과 휴식은 없이 살아가고 있다. 그것이 회복이라 믿는다. 


여하튼 나만의 것이 가장 독창적인 것이라는 것에 깊이 공감한다. 그리고 돈을 좇는 삶이 아닌 나만의 것을 찾는 삶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하며, 오늘 하루를 보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