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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

문미순/ 나무 옆 의자

by 자몽커피


-이 밤에 전화 돌릴 손가락 힘이라도 있으면 달밤에 나가 체조라도 하지 그래? 그래야 혈액순환이 돼서 안 서는 좆에 피가 돌 거 아냐. 야, 이 개새끼야. 한 번만 더 전화해서 그 더러운 주둥이를 놀렸다간 경찰에 신고해서 혀뿌리, 좆뿌리가 다 썩도록 콩밥을 먹여줄 테니까 어디 한번 또 걸어봐, 씨발. 이 병아리 좆만큼도 안 되는 새끼야!

명주가 한바탕 쏟아내고 있는데 귓가에 뚜뚜뚜 하는 신호음이 들렸다. 전화는 어느새 끊겨 있었다. 명주는 가슴을 들썩이며 씩씩거렸다.

-감히 나를 건드려?

명주는 지금까지 자신을 욕받이로 만들었던 온갖 진상들을 향해 실컷 욕을 퍼부은 기분이었다. 담배를 피우며 분노를 삭이는 건 제 몸만 태울 뿐이었다. 건물 옥상에 올라 떨어져 죽어도 회사는 눈도 깜박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소변 보러 갈 시간조차 감시하며 하루 백 통의 콜을 소화하라 쪼아대는 이들이었으니. 회사가 보호해주지 않는다면 스스로 강해지는 수밖에 없었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 명주는 이제야말로 진상들을 퇴치하는 확실한 매뉴얼을 얻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p.150



엄마를 미라로 만들어놓고 연금으로 사는 50세 여자 명주가 있습니다. 신의 장난처럼 어머니가 돌아가신 날 기초연금과 유족연금을 합쳐 1,005,500이 들어왔다는 엄마의 핸드폰 문자를 보게 된 명주는 이런 결정을 내립니다. 현행법상 유족이 사망신고를 하지 않으면 공공기관에 자동으로 사망등록이 되지 않는 법망을 빠져나갈 수 있기 때문이죠.

13평 임대아파트에 홀로 사는 엄마에게 얹혀살던 명주는 사체은닉과 연금 부정 수령이 죄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죄를 저지르는 명주의 선택에 독자들은 얼마나 공감할까요?


친절하게도 작가는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가 쓴 <체체파리의 비법>에서 다음의 문장을 차용합니다.


"한 남자가 아내를 죽이면 살인이라고 부르지만, 충분히 많은 수가 같은 행동을 하면 생활 방식이라고 부른다." p.18



즉 사체은닉과 연금부정수령이 개인의 문제가 아닐 수 있다는 말이죠. 2018년 개봉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어느 가족>도 부모의 사망신고를 하지 않고 연금을 부정으로 받아 생활하던 한 가족의 실제 사건이 모티브가 된 영화입니다. 일본에서 사라진 고령노인들을 전수조사가 들어갔고 2주 사이에 300건이나 드러나면서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준 사건이기도 합니다.

작가는 명주의 딱한 사정을 계속 이야기합니다. 그녀의 상황은 그럴 수밖에 없음을 독자에게 주입시키는 것 같아요. 명주의 아버지는 자린고비에 수전노처럼 아껴 돈을 모았지만 친구의 탄광 사업에 투자해 전 재산을 잃었고, 남동생은 대학 입학을 앞두고 피자집 알바를 하다 오토바이 사고로 죽습니다.

딸의 양육권을 갖는 대신 빈 몸으로 이혼한 그녀는 백화점에서 판매직으로 일을 합니다. 하지만 매출액을 채우느라 그녀는 2천만 원의 빚이 생기고 설상가상으로 유부남을 꼬신 딸 때문에 합의금으로 또다시 2천만 원을 주게 생겼죠. 전세금을 빼서 해결하고 보니 그녀는 갈 데가 없어요. 그래서 임대아파트에 홀로 살고 있는 친정어머니의 집에 들어가 살게 됩니다.

백화점을 나와 자동차 급식 조리원으로 일을 했는데 거기서 화상사고를 당합니다. 화상치료는 끝났지만 그녀는 진통제 없이는 살 수가 없어요. 원인도 병명도 알 수 없는 통증 때문인데요. 있는 돈으로 병원치료비로 다 쓰고 몸은 아파 일도 할 수 없고, 아프다는 걸 증명해야 하는데 의사들은 원인을 알 수 없다면 해주지 않아 기초수급자도 될 수 없어요.

97만 원의 보험금이 연체가 된 그녀는 병원진료도 받을 수가 없어요. 그런 그녀에게 엄마의 연금은 유일한 생명줄이죠.


엄마의 시체를 나무관에 넣고 생활하는 명주에게 이제 그녀의 엄마를 알았던 주변인들의 간섭이 시작됩니다.

어느 순간 보이지 않게 된 엄마의 안부를 묻기 시작합니다. 바로 옆집에 살던 준성은 꽤 살가운 청년이었나 봅니다. 반찬도 얻어먹고 김장도 같이 했던 썰을 풀며 할머니를 찾습니다.

길 잃고 헤매던 엄마를 집으로 모셔왔다며 엄마의 소식을 묻는 마트 점장 때문에 마트 가는 것도 힘들어요. 명절 때마다 먹을 걸 챙겨줬다며 엄마의 안부를 묻는 경비원도 있어요. '니 죄를 알고 있다'는 장난전화도 걸려와요. 설상가상으로 엄마의 남자 친구까지 등장합니다. 일명 '진천할배'는 집까지 찾아와 엄마의 안부를 묻고 홍시를 가져다줍니다.

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거짓말로 순간순간을 모면하던 명주에게 진천할배는 엄마와 제주도 여행을 위해 얼추 이백만 원을 모아두었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몸도 안 좋은 엄마가 여행이라니! 두 분 사이가 보통은 아니라는 생각에 아찔하기만 합니다. 돈을 찾아 할아버지에게 백만 원을 돌려주고 싶은데 집안 어디에서도 돈은 나오지 않아요.

이혼 후 딸과 함께 집을 나왔지만 다시 아빠 집으로 돌아간 철없는 딸 은진도 복병입니다. 대학 졸업을 앞둔 딸에게 엄마노릇 좀 하겠다며 밥 사준 걸 계기로 남자 친구를 소개한다며 미슐랭 밥집에서 거금을 쓰게 하질 않나, 백만 원만 빌려달라고 하질 않나, 심지어 집을 나와 할머니 집에 와서 같이 살면 안 되냐고 묻습니다.


그녀는 겨울 초입에 에어컨과 공기청정기를 구입합니다. 방부처리를 했지만 엄마의 시신은 썩고 있으니까요. 옆집 사는 청년 준성은 엄마와 친분이 있던 사이였습니다. 본인 사는 것도 힘겨운데 겨울에 에어컨이 돌아가는 걸 눈치채는 청년입니다. 알코올성 치매 아버지를 돌보며 대리기사를 뛰는 26세 청년 준성의 사정도 딱한 건 매 한 가지입니다. 엄마는 난소암 수술 중 사망했고, 하나 있는 형은 빚만 남기도 집을 나간 상태입니다. 낮에는 아버지의 병간호를 하느라 직장도 잡지 못하고 그래서 밤에 대리기사로 약 백만 원의 돈을 벌어요.

그런 그에게도 고난이 켜켜이 쌓입니다. 집에 불이 났다는 전화를 받고 달려가보니 아버지가 가스사고로 화상을 당한 겁니다. 하루에 10만 원이 넘는 간병비를 해결하지 못해 그는 아버지를 급히 퇴원시키고 말아요.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친 그에게 외제차 벤틀리를 주차하다가 범퍼하고 문짝이 긁히는 사고까지 터집니다.

매달 14만 원씩 내던 보험료를 내고 있던 준성은 사고가 나면 그 안에서 해결되리라고 믿었어요. 하지만 대리업체에서 보험료를 착복하고 있었다는 기막힌 사실만 드러납니다. 이쯤 되면 현대판 <운수 좋은 날>이 아닌가 싶어요.


준성은 갑자기 일어난 해일에 휩쓸려 망망대해에 홀로 떠있는 기분이었다. 병원비로 통장의 돈은 바닥났고 비상금으로 모았던 적금을 해약해 쪼개 쓰고 있는 형편이었다. 아버지가 매달 받는 연금 60여만원은 공과금을 내고 마트에 몇 번 다녀오면 없어졌다. 대출로 가득 찬 깡통집도 재산이라는 이유로 아버지는 기초수급 대상자로 되지 못한다. p.186




명주는 생전에 엄마가 주었던 금반지를 팔아 백만 원을 마련합니다. 진천할아버지에게 돈을 돌려주기 위해서죠. 그런데 뜬금없이 할아버지의 부고문자를 받게 됩니다. 일말의 양심은 있었는지 그녀는 자신의 거짓말 때문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게 아닌가 자책을 하죠. 백만 원을 들고 장례식장에 가서 엄마이름으로 십만 원을 무명으로 90만 원을 내고 옵니다. 사실 돈 한 푼이 아쉬운 그녀의 선택이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아요.

아마도 그렇게라도 자신의 죄책감을 덜기 위한 행동이었을까요?


천장 누수로 거실에 내놓은 나무관을 옮기려는 데 은진이 찾아옵니다. 당황한 명주는 나무관을 작은방에 어찌어찌 밀어 넣습니다. 그 바람에 장판이 밀린 자리에서 그동안 찾지 못했던 200만 원이 나옵니다. 그걸 딸 은진이가 몽땅 가져가버립니다. 그리고 엄마의 이름으로 충북 증평에 땅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은진은 지금 살고 있는 집 보증금 천만 원을 해달라며 은근히 엄마를 협박합니다. 혹시 그 나무관에 할머니가 있는 게 아닌가 하면서요.


-뭐, 그건 나하곤 상관없고, 월세라도 보증금은 있을 거 아냐. 천만원만 해주면 다시는 손 안 벌릴게. 내가 독립하는데 엄마가 그 정도는 해줘야 하는 거 아냐? p.195



또 한 명의 주인공은 바로 은빛 요양원에서 매일 탈출하는 할머니입니다. 사람들만 보면 쫓아 달려가 '나 좀 데려가'라고 말하는 딱한 할머니입니다. 아들이 주식 빚 갚으려고 할머니가 사는 집을 팔고 요양원에 넣었다는 소문의 주인공이죠. 요양원의 경비가 이렇게 허술할 수가 있나요? 이 소설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은빛요양원 할머니를 기억해 주세요.


목욕을 시키려다 준성은 아버지를 놓치게 되고 그 바람에 아버지가 세면대와 변기에 머리를 부딪히면서 바닥으로 쓰러집니다. 머리에서 피가 나오고 아버지는 사망하죠. 119를 불러달라던 준성에게 명주는 사망경위에 대해 경찰조사가 나올 것이고 사고사라 판명이 난다 해도 긴 법적절차를 치러야 한다며 아버지의 죽음을 비밀로 하자고 제안합니다.


준성 역시 자신과 같은 방법으로 살아가라고 말하는 건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법에 어긋나는 일이라며 펄쩍 뛸 게 뻔했다. 하지만 준성이 이 상태로 아버지 장례를 치르고, 경찰의 조사를 받고, 어떤 판결을 받든 죄책감을 안은 채 우울하게 살아가리란 건 너무도 뻔한 일이었다. p.201



어머니에게 했던 방식으로 준성의 아버지도 방부처리를 하고 나무관에 보관합니다. 그리고 명주는 집을 팔아 보증금을 딸 은진에게 보내고 한적한 시골마을 증평으로 이사를 가기로 합니다. 모든 비밀은 자신이 안고 가겠다고 말이죠.

준성이 트럭을 빌려오고 두 나무관을 옷장처럼 위장해서 간신히 실어나릅니다. 아파트를 출발하려는 순간 '트럭 안에 할머니가 있다'고 같은 말을 반복하는 단발머리 여학생 때문에 준성은 머리칼이 쭈뼛섭니다. 이쯤 되면 이건 스릴러 장르라고 해도 무방해요. 과연 이들은 탈출할 수 있을까요? 하늘에서는 눈이 내리고 아파트를 빠져나갈 때 경찰차가 들어옵니다.


한참을 달리는 사이에 차벽을 쳐대는 소리가 들려 차를 세우고 천막을 치우니 은빛요양원 할머니가 앉아있습니다. 요양원에서 툭하면 탈출하던 할머니, 기억나시죠?

둘은 잠깐 당황하지만 명주는 엄마로 삼겠다며 할머니를 앞칸에 태우고 다시 달립니다. 눈 속을 달리는 트럭한대가 눈앞에 펼쳐지네요. 준성, 요양원 할머니, 명주는 각각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요?


할머니의 가늘게 코 고는 소리가 차 안에 울려 퍼지고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도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준성은 문득 아버지를 차에 싣고 태워준 일도 태어나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도로가 눈으로 뒤덮이고 차가 엉금엉금 기어 다 늦은 밤에 도착한다 해도 그리 늦었다 생각되지 않을 것 같았다. p.248




이 소설은 여기에서 끝이 납니다. 그 후의 이야기는 독자들의 몫으로 남겨두었어요. 저는 하늘에서 내리는 눈이 어쩌면 영원히 이들의 죄가 드러나지 않길 바라는 작가의 선물이자,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명주와 준성은 실정법에서는 범법자가 됩니다. 부모의 사체를 은닉했고, 사망신고를 하지 않아 연금을 부정으로 수령했기 때문이죠. 물론 이후에 준성이 아버지의 국민연금을 수령했는지는 나와있지 않지만 명주가 이사한 증평땅에서 아무도 모르게 장례를 치른다면 그렇게 살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해요.


강지나 선생님이 쓴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에서는 빈곤대물림의 문제를 두 가지 관점에서 소개하고 있어요. 하나는 인류학자 오스카 루이스의 빈곤문화론인데, 경제나 사회구조의 문제가 아닌 집단내에 뿌린 내린 하위문화의 특징 때문이라는 견해입니다. 하위문화의 특징은 운명주의, 무력감, 의존심, 열등감 등이 있는데 빈곤층의 문제행동과 습속을 묘사할 때 근거가 되는 이론입니다. 성실하게 일해서 저축하고 배우는 일을 하기보다는 게으르고 무기력해서 열심히 살지 않으며 술을 마시거나 노름을 한다는 것이죠. 반면 경제학자인 아마티아센은 빈곤은 단순히 재화의 부족이 아니라 자유로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려는 역량의 박탈이라고 정의 내립니다. 빈곤 상태로 인해 건강한 관계 형성과 욕구 발현의 기회가 수없이 죄절되고 박탈되면 사람들은 누구나 문제행동을 보인다는 것이죠. 빈곤 대물림은 이런 박탈의 경험이 대를 이어 축적되고 불평등한 사회구조로 고착되는 과정이라고 설명합니다.

준성의 빈곤 대물림은 누구의 책임일까요? 경제적인 뒷받침을 받았다면 물리치료사 자격증도 빨리 땄을 테고 평범한 다른 청년들처럼 자신의 꿈도 꿀 수 있었을 거예요.

몸이 아파 일을 할 수 없음에도 병원에서 증명할 수 없다는 이유로, 깡통이나마 집이 있다는 이유로 명주와 준성은 국가의 도움을 받을 수가 없어요. 대리기사로 백여만 원을 버다는 이유로 가족을 부양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회시스템이 정상인지 묻고 싶어 집니다.

경제활동을 하는 부모나 자녀가 있는 경우 이들에게 '부양의무'를 부과해 기초생활보장급여를 지급하지 않는 제도가 바로 부양의무제입니다. 가족 돌봄이 일차적으로 배우자나 자녀에게 책임을 묻는 한국사회에서 그 부담이 과도한 것도 사실입니다.


준성의 형이나 명주의 딸이 '효'라는 가치에 사로잡히지 않고 욕은 먹을지언정 현명한 삶을 살고 있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효라는 이름에 갇혀 자신의 꿈을 펼치지 못하는 준성이 오히려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내내 불편했던 점은 명주나 준성의 딜레마에 이입하지 못했던 것이 아니라 명주의 뻔뻔한 태도였어요. 작가가 주제의식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소설을 개인적으로 별로라고 생각하고 있어서 인지도 모르겠네요. 책을 읽는 독자들은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건 사회문제야, 국가가 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일을 하는 거야라는 답 또한 독자의 몫이라고 생각해요. 주인공의 입을 통해 계속 이런 포지션을 갖고 가는 게 거슬렸다는 표현이 더 정확한 것 같네요.


연금은 아버지가 준성 씨에게 남긴 선물이라고 생각하면 돼. 떳떳이 물리치료사가 돼 병원에 근무하면서 아버지 앞에 보란 듯이 잘 살면 되잖아. 어차피 나라에서 보살펴줬어야 하는 거, 우리 스스로 챙겨 받는 것뿐이야. p.203


-어차피 사람은 다 죽어. 땅에 묻고 안 묻고 그 차이가 죄가 된다면 그건 어쩔 수 없지. 법이 그렇다니까. 우린 우리 식으로 잘 염해서 보내드리면 되지. 폐가긴 하지만 엄마가 사놓은 고향집이 있어. 언젠가 기회를 봐서 잘 묻어드리면 돼. 그래도 결정은 준성 씨가 해. 난 이런 선택지도 있다는 걸 알려주는 거니까. p.209




추운 겨울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미 우리는 겨울의 한가운데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뜬금없는 계엄령으로 시끌했던 하루가 지나가고 있습니다. 마음을 나눌 수 없었던 준성과 명주가 그들만의 방식으로 연대할 수밖에 없었던 현실이 씁쓸하면서 한 편으론 위로가 되네요. 현대판 운수좋은 날 <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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