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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이 알고 싶다

안인모/위즈덤하우스

by 자몽커피


"인상주의 시대 천재 음악가들의

가장 내밀한 이야기!"


"음악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을 위한 쉽고 명쾌한 해설!"


인상 시대, 음악이 빚은 빛과 색채의 순간들


스토리와 200여 개 명곡을 함께 즐기는 클래식 엔터테인먼트북



보통 책을 읽으면 마음이 허해지는 책이 있는가 하면 영혼까지 꽉 채워주는 책이 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에게는 보통 철학책이나 예술관련책이 후자에 속한다. 인상 카페 편 <클래식이 알고 싶다>는 나의 지적 허영심을 채워주면서 교양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기에 손색이 없었다. 내가 속한 독서모임에 발레를 취미로 하는 회원이 2명이 있는데 사부작사부작 몇 년째 발레 이야기를 듣다 보니 클래식 공부부터 시작해 볼까 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선물로 받은 책이 김주혜 작가의 <밤새들의 도시>였다. 발레리나인 나타샤의 이야기를 읽고 나서 <라 바야데르>, <지젤>, <백조의 호수> 등을 찾아보며 음악 공부를 하던 차에 인상카페 편 <클래식이 알고 싶다>를 만났으니 이보다 운명적일 수 있을까?

앞서 나온 <고전의 전당 편>과 <낭만 살롱 편>도 바로 읽을 계획이다.



인상카페 편에는 차이콥스키, 라흐마니노프, 말러, 드보르자크, 드뷔시, 라벨, 사티까지 총 7명의 음악가가 수록되어 있다. 클래식 책이어서 중간중간 음악을 검색해 봐야 하나 싶었는데 정말 기우였다. 친절하게도 해당하는 곡의 QR코드가 있어서 바로바로 음악을 들으면서 감상과 독서가 가능했다.

집안의 내력이며 어떤 부모들이었는지, 모범생이었는지 불량학생이었는지, 연애사, 결혼과정, 우정과 배신, 곡의 탄생배경, 암흑기와 전성기, 죽음에 이르기까지 지질한 인생사에서 위대한 예술가의 면모까지 볼 수 있는 그야말로 종합선물세트같은 구성으로 되어 있다.


진입장벽이 높은 책들을 읽을 때 답답했던 점이 어려운 용어들이다. 성격상 해결하고 넘어가야 다음 페이지가 읽히는 사람이라 불친절한 책들은 속도가 나지 않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 책은 학습서처럼 바로 해결해 준다. 노란색 바탕의 '래알꼭알'코너가 바로 부록이나 각주 같은 역할이다. 사실 너무 많은 정보들이 담겨있어서 모두 소화시키기에 버겁긴 했었다. 떠먹여 줘도 먹지 못하는 건 나의 몫이니까^^

두고두고 볼 책이어서 이런 알찬 정보들은 그저 감사할 뿐. 각 챕터가 끝날 때마다 해당 음악가들의 키워드를 10개씩 모아놓은 '클래식 대화가 가능해지는 키워드 10'이 있는데 이 부분을 먼저 읽고 본문을 읽으면 이해도가 더 높아지는 것 같다.

'꼭 들어야 할 추천 명곡 플레이 리스트'까지 있어서 그야말로 들고 다니는 클래식 엔터테인먼트북이 아닐 수 없다. 당연히 여기에도 QR코드가 있다. 한 명 한 명씩 도장 깨기 하는 마음으로 듣다 보면 내 집이 오페라 극장이 된 듯.


동성애자였던 차이콥스키, 첫 번째 교향곡 실패로 무려 12년의 슬럼프를 겪여야 했던 라흐마니노프, 장인의 사위사랑, 어디까지 받아봤나? 로댕이 두상제작을 했다는 말러, 달에 착륙하자마자 닐 암스트롱이 들었다는 <신세계 곡향곡>을 만든 드보르자크, 여성편력이 심한 바람둥이도 딸바보가 된 드뷔시, 공장 기계가 돌아가는 모습에서 영감을 얻어 <볼레로>를 만든 라벨, 부족한 이론을 채우려 마흔에 다시 학교로 돌아 간 사티의 이야기, 지금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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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I러시아의 슬픈 눈, 센티멘털 차이콥스키 1840~1893


'브람스는 무시해도 된다. 과대평가되었으니, 헨델은 삼류고, 베토벤의 <현악 4중주>는 혐오스럽다. 슈만을 존경하지만, 그의 비평 실력은 형편없다. 참! 바그너는 쓰레기다.'

오직 모차르트만이 그의 우상이자 사랑이었어요. 결론은 '모차르트 빼곤 다 쓰레기다.'였네요. p.23




백조의 호수로 유명한 차이콥스키! 당대의 음악가를 대하는 비평의 칼날이 엄청 매정하다. 이 책을 읽고 동성애자인 것을 감추려 위장 결혼까지 한 것을 알게 되었다. 맹목적인 사랑에 빠진 안토니아의 자살협박에 못 이겨 차이콥스키는 결혼을 승낙한다. 단 '부부간의 사랑'이 없는 '형제간의 사랑'만 허락된 조건으로. 아무리 팬심이 좋다 해도 이건 너무 한걸. 결혼생활을 참을 수 없었던 차이콥스키는 두 달 만 만에 결혼생활을 접고 떠나버린다. 그 후 안토니아는 아이를 셋 낳았는데 아버지가 모두 달랐다고 한다. 아이들은 고아원에 보내졌고 모두 죽었다고. 차이콥스키를 13년간 후원을 해준 메크 부인 이야기도 흥미롭다. 1200여 통의 편지를 주고받은 사이였지만 사석에서는 결코 아는 척을 하지 않았다고. 아마 이런 거리감을 유지했기 때문에 차이콥스키가 메크부인에게 기댈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차이콥스키의 마지막 사랑은 조카 다비도프였다. 물론 남자다. 전작품의 로열티 상속인이다. 사회적 편견과 정체성 사이에서 혼란스러웠을 차이콥스키. 마지막 교향곡인 '비창'도 조카에게 헌정했다고 한다.

차이콥스키가 사랑한 사람들의 말로는 비극으로 끝났다고 한다. 그의 음악들이 아름다우면서 슬픈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02 I 건반 위의 엘레지, 황금손 라흐마니노프 1873~1943


그는 단 한 번의 실패에 자신을 비판하고 자신의 능력을 의심했어요. 그의 작품은 대부분 비극과 슬픔을 담은 단조로 쓰여졌어요. 그는 자신이 장조를 다루지 못한다고 믿었고, 우울한 단조에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진노의 날>의 선율에 녹여 예술적으로 승화시켰습니다. p.103



4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우 라흐마니노프는 한 번 배운 노래는 음 하나도 틀리지 않고 정확히 연주했다고 한다. 학생 시절 라흐마니노프는 차이콥스키 앞에서 연주를 한 경험이 너무 좋아 작곡에 흥미를 가졌다고 한다. 그 첫 작품이 바로 <녹턴>. 승승장구할 것만 같은 그도 첫 번째 교향곡을 대차게 말아먹는다. 바로 리허설 부족, 음주 지휘자, 정치적인 이유 등이 원인이었는데 라흐마니노프는 깊은 수렁에 빠진다. 이때 톨스토이의 혹평도 한몫을 했다고. 심리학자인 니콜라이 달을 만나고 사촌동생인 나탈리아와 결혼하면서 다시 재개에 성공한다. 12년 후에야 두 번째 고향곡을 발표했으니 자신에게 얼마나 혹독했는지를 알 수 있다. <피아노 협주곡 3> 번은 악마의 협주곡이라고 불리는데 그 이유는 엄지와 약지까지의 길이가 30cm인 자신의 손에 맞게 작곡이 되었기 때문이다. 2022년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미국 반 클라이번 콩쿠르 본선에서 우승하면서 전 세계를 열광시켰다.

타고난 멋쟁이에 스피드 광이었던 라흐마니코프는 러시아에서 죽기를 바랐지만 미국 켄시코 묘지에 잠들었다.




03 I 사랑과 죽음의 아다지에토, 말러 1860~1911


말러가 알마에게 준 악보에는 사랑하는 알마에게 건네는 사랑의 유언이 써 있었어요. 뤼케르트의 시에서 이어진 말러의 고백은 너무나 애틋해서 가슴이 미어집니다. <교향곡 10번>의 1악장에서 트럼펫이 비명을 지르듯 'A(라)'를 일곱 마디 동안 길게 소리 냅니다. 어쩌면 'A'는 알마(Alma)로 인한 고통의 비명, 아니 사랑의 외침이 아닐까요? p.172




처가에 열등감을 가지고 있던 말러의 아버지는 어머니를 때리고 학대했다고 한다. 다리를 저는 엄마를 따라 하다 '절름발이 유대인'이라는 별명이 붙은 말러. 그런 와중에도 아이들은 왜 이렇게 많이 낳은 건지. 말러가 21살 될 때까지 13명의 동생 중 7명이 세상을 떠난다. 가족의 죽음은 말러를 허무하게 만들었고 쇼펜하우어, 니체 등과 접하면서 독일 철학은 그의 음악에 영향을 끼친다. 그렇게 탄생한 곡이 <탄식의 노래>. 지휘자였던 말로는 작곡에도 관심이 많았는데 오직 작곡을 위한 오두막을 지었다고 한다. 여름 석 달을 쉬는 동안 말러는 오두막에서 오로지 작곡에만 매진한다. 직접 곡을 설명하는 프로그램 노트를 썼는데 오늘날 음악회에서 볼 수 있는 '프로그램 노트'의 시초라고 할 수 있다.

작곡을 전공한 알마 쉰들러와 결혼하는데 작곡가의 꿈을 접고 사랑스러운 아내로 살라는 말을 한다. 이런 꼰대 같으니! 결국 알마는 우울증에 걸리고 젊고 잘생긴 건축가 발터 그로피우스와 바람을 피운다. 그로피우스가 알마의 작곡한 곡을 칭찬하자 바로 우울증이 나았다고 한다. 프로이트와 상담을 받은 말러가 그제야 알마에게 잘해주었다고.

말러의 장인은 화가 칼 몰인데 사위의 50살 생일에 맞춰 로댕에게 두상을 의뢰했다고 한다. 사위사랑은 장모라는데 장인의 사랑이 역대급이다.





04 I 기차 타고 프라하로, 음악의 신세계 드보르자크 1841~1904


그를 추모하는 문구는 아무리 봐도 생소합니다. 평범한 남편이자 아버지로서 행복하게 살았던 위대한 음악가를 찾기란 꽤 어렵거든요 <신세계로부터>를 수도 없이 들으면서도 우리는 정작 그의 삶에 대해서는 굳이 물음표를 달지 않습니다. 그의 음악에서 너무나 선명하게 드러나는 보헤미아의 유산이 그 자체로 듣는 이를 압도하기 때문이지요. p.223




체코를 대표하는 작곡가인 드보르자크는 대대로 여인숙을 운영하던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들의 재능을 눈치챈 아버지는 시골마을에서 프라하까지 여러 번의 이사를 하며 뒷바라지를 한다. 비올리스트였던 드보르자크는 무명생활이 14년 동안 이어졌지만 작곡에 대한 열정은 뜨거웠다.

사촌 여동생인 요제피나를 사랑했지만 결국 그녀의 동생인 안나와 백년가약을 맺는다. 요제피나를 향한 사랑은 그녀 남편의 들러리를 섰을 정도였다.

오스트리아 정부가 시행하는 문교부 예술장학금을 받으면서 차츰 작곡가로서의 명성을 얻게 된다. 특히 브람스가 드보르자크의 악보를 출판할 수 있도록 출판사와 연결을 해주고 빈으로 이사 올 것을 권유한다. 오스트리아 제국에서는 빈이 음악의 중심이었기 때문에 체코 출신인 드보르자크가 출세를 원했다면 빈으로 가는 것이 당연했다. 체코를 너무 사랑한 드로르자크는 브람스의 권유를 마다하고 민속선율에 기반한 음악을 만들어낸다.

자네트 서버 여사의 추천으로 드보르자크는 미국 국립음악원의 원장으로 재직한다. 보헤미안적 정취와 미국에서 받은 신선한 충격은 <신세계 교향곡>을 만들게 된다. 이 곡은 77년 후인 1969년 닐 암스트롱이 달에 착륙하자마자 틀었던 음악이다.




05 I 나만의 색, 나만의 길 클로드 드뷔시 1862~1918


드뷔시는 그렇게 자신의 삶을 자신만의 리듬대로 살았어요. 때로는 너무 자유롭게, 때로는 너무 제멋대로. 그 대가는 주변 사람들의 신뢰와 기대를 저버리는 일이었지요. 세상에 남은 건 그의 위대한 음악만이 아니었어요. 빚과 거짓말이 켜켜이 쌓인 민망한 이야기들도 함께였지요. p.259



실력은 있었지만 학교의 규율을 위반하는 바람에 음악원 졸업이 12년이나 걸린다. 특히 학교에서 가르치는 화성학이 너무 단조로워 자기 멋대로 연주했다고 한다. 당연히 교수들은 이런 드뷔시를 좋게 보지 않았다. 집안이 어려웠던 드뷔시는 차이콥스키를 후원했던 메크부인의 아이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치면서 유럽 곳곳을 여행한다. 로마대상을 수상하며 로마로 가는 국비장학생이 되지만 답답한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유부녀였던 마리에 빠져 유학을 중도에 포기한다.

파리 예술계에 입문한 드뷔시는 시인, 문인 화가들과 활발히 교류한다. 직업란에 정원사로 기재할 만큼 그의 기행은 유난했다. 로댕의 조수이자 애인이었던 카미유 클로델과도 연애를 했다고.

재봉사의 딸인 가브리엘 뒤퐁(가비)과 동거를 하는 와중에 소프라노였던 테레즈 로제와의 결혼을 발표한다. 가비가 권총으로 자살하는 사태가 벌어지자 결혼은 무산되지만 다시 가비의 친구인 마리-로잘리(릴리)와 바람을 피운다. 릴리와의 결혼식에 사티만이 유일한 하객이었다고. 드뷔시의 바람 편력은 끝이 없어서 로잘리와 결혼생활 중에 은행가의 아내인 엠마 바르닥과 다시 바람을 피운다. 충격받은 릴리의 선택은 권총자살. 목숨은 건졌지만 총알을 제거하지 못한 채 평생 살아간다. 릴리와 이혼하고 엠마와 결혼한 드뷔시의 사건은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고 명성은 크게 타격을 받는다. 그동안 돈이 없어 주변에 얼마씩 빌리며 살던 드뷔시는 엠마와 결혼을 하면서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그의 유일한 딸 슈슈가 태어나자 헌신적인 아버지의 모습을 보인다.

돈 문제로 다시 사이가 틀어진 엠마는 드뷔시가 이제는 딸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이 아닐까 걱정돼 이혼을 고려한다. 결국 그의 유일한 사랑이었던 딸 슈슈도 드뷔시가 죽은 다음 해에 디프테리아로 허망하게 죽는다.



06 I 사랑과 슬픔의 볼레로 모리스 라벨 1875~1937


"음악을 만드는 유일한 이유는 음악을 잘 만들기 위해서다."라고 말했듯, 라벨은 음악에 관한 한 완벽주의자였어요. 당연히 곡을 쓰는 속도도 느릴 수밖에 없었지요. 그는 자신이 만족할 만한 경지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결코 작품을 세상에 내놓지 않았어요. 그래서 '1년에 1곡 작곡하는 작곡가'라는 별명도 생겨요. 그에게 음악은 섬세한 계산과 감각의 집합체였어요. 그의 말은 그의 음악이 어떤 것이었는지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p.321



이름보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나 <볼레로>로 더 유명한 작곡가. 드뷔시와 평생 비교되는 인물이다. 평론가 피에르 랄로는 혹평으로 평생을 괴롭힌다. 라벨은 드뷔시의 복제판이라는 비난으로 마음고생이 심했지만 드뷔시의 음악에 깊이 빠져있었다. 재밌는 건 드뷔시, 라벨 둘 다 인상주의 음악가로 불리는 걸 원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인상주의 특유의 색채가 묻어 있는 것도 사실.

라벨은 스물다섯 살에 로마대상에 도전하는데 무려 6년 동안 5번 도전해 모두 실패한다. 부정 심사의혹이 불거지면서 음악계의 커다란 이슈가 된다. 보수적인 프랑스 음악계와 심사위원들에게 맞서듯 자신만의 혁신을 담은 피아노 모음곡 <거울>을 작곡한다.

157cm에 45kg이었던 라벨은 군 복무를 면제받았지만 41살에 포병연대의 운전병으로 입대하게 된다. 어머니, 친구들, 낯선 이들의 죽음의 상실을 피아노 모음곡 <쿠프랭의 무덤>에 담아낸다.

<볼레로>는 라벨의 작품 중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져 있는 작품으로, 당시 유명 안무가인 이다 루빈슈타인의 의뢰로 작곡된 발레음악이다. 공장 기계가 돌아가는 모습을 보고 영감을 받은 이 곡은 음악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만으로 작품을 만들었고 대성공을 거둔다

<볼레로>는 2016년 저작권이 만료되기 전까지 700억이 넘는 저작권 수입을 발생시켰다고 한다. 유일한 가족은 그의 동생인 에두아르뿐, 종양 수술을 받고 혼수상태에 빠져 62세의 나이로 죽음을 맞이한다.



07 I 음악의 피카소, 파리의 반항아 에리크 사티 1866~1925


"지금이 내 인생에서 중요한 전환점이다."

사티는 이렇게 선언하며 깊은 고민을 시작합니다. 이 곡을 기점으로 그는 이전의 엉뚱하고 유머러스한 실험 정신에서 한 걸음 물러나 음악의 기초와 형식에 대한 깊은 고민을 시작합니다. 이 시점의 변화는 음악가로서 자신을 다시 세우는 계기가 됩니다. 사티는 이렇게 말해요.

"나의 무지에서 오는 실수로 공격당하는 일에 신물이 난다." 이 한마디에 사티의 자조와 각성이 우러나옵니다. 그리고 결심해요. 다시 학교로 돌아가기로요. 그는 40살이었어요. p.366





파리지앵 하면 떠오르는 모습이 있는데 바로 빈곤만이 삶의 모토였던 파리의 작곡가 사티이야기다. 몽마르트의 보헤미안 라이프를 살았던 사티는 파리음악원의 경직된 분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연주력 부족으로 제명당한다. 군대도 마음에 들었을 리가. 일부러 감기에 걸리는 꼼수를 부려 급성 기관지염으로 일찍 제대한다. 몽마르트 카페를 드나들다 알게 된 드뷔시와는 오래도록 우정을 이어갔다고 한다. 둘 다 규율을 좋아하지 않았으니 영혼의 짝꿍을 만난 느낌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티의 명성이 점점 높아지자 균열이 생겼고 끝내 둘은 화해하지 못한 채 헤어진다.

사티의 마음을 사로잡은 여인은 무시스의 애인이었던 발라동. 그는 발라동에게 청혼을 하고 발라동은 그의 옆방으로 이사를 온다. 무시스는 애인이 많아서 그다지 신경을 안 썼다고 한다. 때때로 삼각데이트를 했다고 하니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세계가 아니다. 에릭 사티의 유일한 뮤즈가 화가 수잔 발라동이었다니! 그렇게 탄생한 음악이 바로 <봉주르, 비퀴>

결국 발라동은 사티를 떠나고 사티는 무려 30년 동안 보내지 못한 편지로 공허함을 달랬다고 한다.

사티는 음악 속 권위와 형식주의를 조롱하며 자신의 음악을 하나의 언어유희로 승화시킨다. <개를 위한 어리석은 전주곡>, <바싹 마른 태아>, <커다란 나무꾼의 스케치와 격분>, <끝에서 두 번째 생각>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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