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지나/돌베개
미래를 생각하면 정말 어두워요. _우울을 견디는 삶, 소희
좋은 아빠가 되고 싶어요._바르고 성실한 청년, 영성
제 경험을 활용하는 게 제 강점이에요._슈퍼 긍정의 에너지, 지현
나중에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요?_우울한 청춘의 그늘, 연우
여기서 밀리면 끝이에요._빈곤의 늪, 수정
오토바이를 타면 답답한 기분이 풀려요._말 그대로 질풍노도, 현석
돈이 없으면 불안해요._미래 사업가, 우빈
사람들 시선이 싫어요._눈에 띄지만 시선이 무서운, 혜주
가난한 아이들은 어떤 어른이 될까? 현직 교사인 저자는 8명의 아이들을 십여 년간 추적조사해 글을 썼다. 우연히 학교에 나오지 않는 아이가 있어 가정방문을 해 사정을 알게 되었지만 교사로서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고 보호도 해줄 수 없다는 사실이 매우 충격적이었다고 한다. 그 후 학교사회복지사 공부를 시작했고 지역 아동센터에 자원봉사를 나갔다.
2010년부터 박사논문을 시작하면서 이십여 명의 청소년과 가족을 만나게 되었고 어른이 된 후 이후의 삶을 계속 따라가면서 책을 쓰기로 마음먹는다. 6명의 청소년이 흔쾌히 참여 의사를 밝혔고 '특성화고 현장실습과 진로'를 추가하면서 연우, 우빈까지 8명의 청소년의 이야기가 책에 담기게 되었다.
대부분 가난은 윗대 그 윗대부터 대물림되는 경우가 많았고 그에 따른 가족해체, 가정불화, 알코올중독, 우울, 폭력, 무기력, 무관심에 아이들은 노출된다.
사회복지라는 울타리에 들어온 아이들은 그나마 도움을 받아 대학에도 가고 취업도 할 수 있었지만 여전히 관계 맺기에는 어려움을 호소한다.
가장 먼저 다룬 논제는 가난을 다룬 서술이 자칫 '빈곤 포르노'로 흐르는 경향에 대한 이야기였다. 청소년의 목소리를 전면에 드러낸 후, 구조적 문제를 분석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유도 이런 논란을 피해 가려는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 3, 4년에 한 번씩 만나 이루어진 인터뷰를 어디까지 신뢰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제기도 있었지만 현장에서 실제로 이런 아이들에게 관심을 갖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에는 모두 동의하는 분위기였다.
2023년 1쇄를 찍은 지 20여 일 만에 2쇄를 찍자 저자도 놀랐다고 한다. 과연 이런 책을 읽을까 걱정했다고. 많이 팔리기도 하고 많이 읽혔음에도 왜 우리는 여전히 답답할까. 아마도 정말 이 책이 필요한 대상은 시간이 없어서 읽을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학교나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친 경험이 있거나 지인, 남편이 교사인 분도 있어서 심층적인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사립학교 같은 경우 기간제 교사가 50프로에 육박하는 현실에서 스승이 아닌 딱 교사로서의 역할만 하기에도 버겁다는 것이다. '내가 왜 그 일까지 해야 하는가'라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어서 일을 시키기도 어렵다고. 어떤 정부가 들어서냐에 따라서 교육정책이 휙휙 바뀌는 것도 문제라면 문제다. 미국은 학교에 한 명씩 학교사회복지사가 있다는 사실도 놀라웠지만 우리나라는 특정 지역에 겨우 한두 명이니 앞으로 갈길이 멀다 싶었다.
빈곤의 문제를 사회구조적인 문제로 볼 것인지 개인의 문제로 볼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도 뜨거웠다. 대부분 사회구조적인 문제로 보았지만 개인의 문제도 아예 없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복지제도의 빈틈을 역으로 이용해 남용하는 사례들도 있어서 보편적 복지를 불편하게 보는 시선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체의 크기가 커질수록 체의 구멍이 넓어질수록 당연히 제도를 악용하는 사례들도 있을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나중에 잡아내서 벌을 주면 된다. 그 몇몇 때문에 정말 필요한 사람들까지 끌어안지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것은 막아야 하지 않을까?
소희네 가족에게서 보듯이 문제행동이 하나의 습속으로 전수되는 양상이 현실에서 실제로 관찰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소희네 가족들이 보여주는 문제행동도 이런 빈곤문화에서 비롯된 것이고 결국 문화적으로 전수되는 습속일까? 문화로 전수된 것이기 때문에 결국 벗어나기는 어려울까? 아니라면, 소희가 여전히 힘들어하고 문제행동을 반복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p.36
여전히 빈곤이 그들의 하위문화에서 비롯된 게으름, 체념, 운명주의, 무력감, 의존심, 열등감 등의 문제 행동이지 사회 구조적인 문제는 아니라는 시선도 존재한다.
이번에 국가가 실행한 전 국민 민생회복 지원금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 특히 청년들에게 지원금을 주는 것에 노골적으로 반발심을 드러내는 어르신들을 심심찮게 보게 된다.
그런 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물론 나의 말은 아니고 성숙한 어느 상담사분의 말이다.
"어르신, 그건 목숨값이에요. 살아있어서 고맙다고 국가에서 주는 돈이에요. "
그나마 여기에 소개된 아이들은 사회복지사, 지역아동센터, 종교단체, 교사 등의 도움으로 사회에 잘 안착된 케이스들이다. 여전히 가족과 갈등을 빚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맺는 것에 힘들어하지만 직업을 갖고 가정을 이루고 있다. 여기에서도 정보력의 유무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해주는 사례가 바로 지현의 경우이다. 지현의 어머니는 지역사회 자원을 잘 알아보고 활용을 한다. 주민센터 사회복지과를 자주 방문해 정부 지원과 관련된 각종 정보를 얻고 근처 교회의 도움을 받았으며 사회단체나 지역단체를 통해서 후원을 받았다. 교육서비스는 지역아동센터(공부방)에서 도움을 받았다. 자신의 환경을 가장 잘 활용한 지현은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따고 임용고시 준비를 하고 있다.
저소득층이나 소외계층을 도와주는 대부분의 인프라는 종교시설, 개인 독지가에 의한 사회복지시설, 사회단체 등이 담당하고 있다. 이렇게 공공부분보다 민간부분이 많다 보니 사회복지는 보편적이고 제도적인 시스템이라기보다는 가난한 사람들을 선별해서 '시혜적' 시선을 담아 도와준다는 의미가 강하다. 이런 구조는 빈곤층이 직접 가난을 증명하고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 사회풍토를 만든다. p.94
1인가족, 한부모가정, 조손가정, 소년소녀가정, 장애가족, 재결합가족, 다문화가족, 동성가족 등등 현대사회는 다양한 가족 형태가 존재한다. 이들은 정상가족에 비해 각종 결핍이나 질병, 문제행동 등 많은 어려움을 중첩해서 겪고 있을 가능성이 높은데 정책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있다. 예를 들어 출산 지원 정책을 보면, 가장 열악한 상황에 처한 미혼모에 대한 지원 정책은 매년 줄어들고 있다. 출생률이 낮다고 많은 예산을 들여 출생을 장려한다지만, 실제로는 정상가족의 테두리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일인 셈이다. p.64
이들이 바라는 소원은 화목하고 평범한 가정이다. 무너진 가족 안에서 재건할 힘을 찾는 것이 아니라 정상가족만 된다면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을 거라는 것에 희망을 건다. 다양한 가족 구성원을 품어가는 사회인 듯 보이다가도 여전히 우리는 정상가족의 프레임에 갇혀 산다고 해야 하나.
저자는 수많은 청소년 인터뷰이 중에서 성공적으로 가난에서 벗어난 친구들에게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점을 성찰의 유무로 보았다. 성찰은 사회적 정신적으로 성숙해지고, 독립적인 인간이 되기 위해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이지만 우리의 교육체계는 청소년에게 이 성찰하는 힘을 어떻게 길러야 하는지 교육과정 안에서 중요하게 다루지 않고 있다. 요즘 유행하는 밈 중 하나가 낯선 상황에서 질문이 훅 들어왔을 때 아무 말도 못 하고 눈만 동그랗게 뜨고 있는 z세대들의 영상이라고 한다. 질문에 대답하는 힘도 없을 정도로 우리 아이들이 이렇게나 나약했던가.
사색하는 시간은 모든 연령에게 필요하다. 아무것도 안 하고 버리는 시간처럼 보이는 멍 때리는 시간이 꼭 필요하다고 한다. 성장하면서 겪는 경험의 질, 직면하고 대처해 본 어려움, 접해본 사람들의 다양성, 자신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 자신을 둘러싼 환경이 주는 자극등을 소화하는 시간이 바로 사색이다.
과연 우리는 청소년들에게 목적 없는 허송세월을 허락하고 있는지 의문스럽다.
디딤돌이 없는 삶도 버거운데 가난한 청소년들은 자신들이 버는 돈의 상당 부분을 자신을 위해 쓰는 것이 아니라 부모에게 주고 있었다. 울타리이면서 착취가 동시에 이루어진다. 이들은 끝내 가족과 연을 끊기도 한다. 자기 계발이라는 먼 미래보다는 당장의 돈을 벌어야 하는 현실도 씁쓸했다. 학교를 휴학하면 당장 생계비가 끊기는 상황이라 휴학도 할 수 없다니.
기초생활비로 백만 원을 지원받는다고 할 때 아르바이트를 해서 백만 원을 더 벌어서 생활할 수 있으면 더 좋으련만 그렇게 되면 지원금이 끊기는 구조여서 일을 할 수 있음에도 하지 않는 모순에 빠지기도 하다.
수정이 꿈꾸는 미래의 삶은 자신을 실현할 수 있는 생활과 그것이 보장되는 여유였다. 빈곤은 "단순히 낮은 소득이 아니라 기본적 역량의 박탈로 규정해야 한다." 여기서 역량은 "개인이 가치 있게 여기는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실질적인 자유"이다. p.146
촉법청소년에 대한 언론의 선정적인 기사 부분을 다룬 부분도 주목할 만하다. 소위 "잘 팔리는 기사"에 우리가 너무 낚인 것이 아닌가 하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왔다. 사실 이런 기사를 볼 때마다 빨리 나이를 낮춰야 한다는 여론에 나도 동조했던 것이 사실이다. 어쨌든 저자는 촉법소년과 관련이 없는 기사들도 여론에 언급되는 순간들과 처벌만 강화한다고 예방하거나 재발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얘기한다.
사건의 실체나 아이들의 상황보다는 선정적인 기사에 휘둘린 것은 아닌지 뒤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나아가며
자기 살기도 바쁜 요즘 세상에 소외된 아이들 이야기를 세상밖으로 끄집어낸 저자에게 감사의 마음을 보낸다. 교사는 많지만 존경할 만한 참 스승은 점점 찾기 힘든 세상이어서 그럴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가 교육열이 높고 학원가가 많은 동네여서 일하는 청소년을 접할 기회가 적은 것은 사실이다. 제도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단 한 사람의 어른만 있어도 양지로 나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가난한 청소년에서 촉법소년, 특성화학교나 도제학교의 문제점도 다시 한번 되짚을 수 있어서 좋았다. 값싼 노동력이 필요한 기업과 지원금이 필요한 학교, 고졸취업자 확대라는 성과가 필요했던 정부까지 3박자의 고리를 이제는 끊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청소년 각자가 지닌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우리 기성세대가 할 일이 아닐까 생각하며
저자가 말한 성찰하는 힘, 사색하는 시간을 기르는 데에 가장 좋은 것은 역시 독서일 것이다.
아쉬웠던 점은 아무래도 대안. 처음부터 끝까지 가난한 청소년들에 초점을 두고 이야기가 펼쳐지다 갑자기 일반론이 대안으로 나온다. 특수한 상황에 처해있는 아이들에 맞는 대안법이 아니라 이건 너무 뜬금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학교 생활을 포함해서 다양한 활동과 경험을 많이 할수록, 부모 특히 아버지와 개방적인 대화를 많이 할수록, 부모, 교사, 친구 등의 사회적 지지와 교육적 관여가 많을수록, 청소년 자신이 진로에 관한 자율적 결정을 많이 할수록, 진로효능감과 결정 수준은 높아진다. p.270
과연 이것이 한부모가정이나 결손가정, 조손가정, 이혼가정, 재혼가정에 노출된 청소년들 맞춤 대안법일까?
일반적인 청소년 논문이었다면 정답일 것이다. 그만큼 이 아이들이 일반적인 범주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을 더 반증하는 것이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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